책소개
향긋한 흙내 나는 이야기로 우리의 황폐화된 미각을 돌아보게 하는 요리 에세이의 명저. 누계 판매량 1억 권의 대기록을 세운 요리 만화의 바이블 『맛의 달인』에서 주인공 야마오카 지로가 “지금, 유일하게 읽을 가치가 있는 음식 책”이라고 극찬한 도서다. 초판이 발행(1978)된 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사라져 가는 삶의 방식과 오랜 밥상을 떠올리게 하며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준다.
아홉 살에 교토의 선종 사원에 맡겨져 생활하며 자연스레 요리를 배운 중년의 소설가가 가루이자와의 산장에서 직접 농사짓고 살며 십대 때 배운 요리를 재연한 열두 달의 기록. 밭에서 기른 제철 식재료를 정성껏 조리해 계절의 맛을 담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상을 차리는 게 핵심이다. 요리 이야기의 행간에는 인생의 고비를 넘기며 깨달은 삶과 음식에 대한 철학, 즉 요리도 삶도 힘써 나아가는[精進]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차분하면서도 품격 있는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박찬일 요리사는 이 책을 읽으며 “당장 저자가 살았던 마을에 가고 싶어 구글 지도로 검색”하고, 저자만의 제철 재료 요리법을 “읽으며 메모”했다고 한다. 초봄에는 두릅 새순, 아카시아꽃, 으름덩굴 같은 산나물을 먹고, “지구의 부스럼처럼” 떼 지어 돋아나는 죽순은 오월에 즐기고, 매실의 계절 유월에는 두고두고 먹을 절임을 해둔다…. 자연의 속도에 감응해 즐기는 맛의 세계.
목차
일월, 토란 한 알을 꺼내는 마음
이월, 된장을 즐기다
삼월, 겨울 밥상에 더한 푸른색
사월, 땅의 노래를 듣다
오월, 죽순의 계절
유월, 매실 절임에 담긴 인생
칠월, 여름 요리의 문
팔월, 대두(大豆)의 공덕
구월, 산(山)의 향을 먹다
시월, 열매와 시간이 선물한 맛
십일월, 밤과 차의 선율
십이월, 흙도 잠들다
옮긴이 후기
추천의 글(박찬일)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저자의 말과 음식이 죽비처럼 마음에 쏟아져 내렸다”
-박찬일(요리사, 칼럼니스트)
“유일하게 읽을 가치가 있는 음식 책”
- 『맛의 달인』의 주인공 야마오카 지로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발견이 있는 명저”
-아마존재팬 서평
1.
“요리를 배운 나날은 내게 흙을 먹는 나날이었다”
땅과도, 풀과도 무연해진 현대인의 미각을
향긋한 흙내 나는 이야기로 깨운 요리 에세이의 명저
누계 판매량 1억 권의 대기록을 세운 요리 만화의 바이블 『맛의 달인』에서 주인공 야마오카 지로가 “지금, 유일하게 읽을 가치가 있는 음식 책”이라고 극찬한 요리 에세이. 초판이 발행(1978년)된 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온라인 서점에 꾸준히 서평이 올라오고, 최근 〈열두 달, 흙을 먹다〉(나카에 유지 감독, 2022)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니 야마오카의 상찬이 과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전후(戰後)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미즈카미 쓰토무. 동네 사람에게도 천대받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던 그는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아홉 살에 절에 맡겨져 십대 후반까지 교토의 선종 사원에서 생활했다. 이때 부엌에서 살며 정진요리(精進料理, 일본의 사찰요리)를 배웠다. 중학생 때는 주지스님의 식사를 준비하고 시중을 드는 전좌(典座) 역할을 하면서 요리가 중요한 수행의 방법이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소설가로 성공한 예순 즈음 그는 고원지대 가루이자와의 산장에서 직접 농사짓고 살며 독서의 나날을 보낸다. 밭에서 기른 제철 식재료를 정성껏 조리해 먹고 손님도 대접한다. 요리의 기본은 십대 때 절에서 익힌 정진요리. 계절의 맛을 담아 검소하고 소박하게 차리는 게 핵심이다. 그가 전좌일 때 절 또한 무척 궁핍해서 수행의 측면이기도 했지만 쥐어짜내듯 요리를 해야 했다. 그러니 계절에 따라 야생의 풍족한 맛을 선사한 밭[흙]이 고마울밖에. ‘끼니’를 준비하는 중대한 일[大事]을 위해 매번 밭에 의지해 상차림을 했기에 그에게 “요리는 곧 흙을 먹는 일”과 같았다. 이 책은 향긋한 흙내를 잃어버린 우리의 황폐화된 미각을 돌아보게 하는 요리 에세이로, 저자가 산장 부엌에서 흙을 먹는 나날을 직접 실천하며 어린 시절 배운 요리를 재연한 열두 달의 기록이다.
2.
“절밥 얘기인데, 아니다. 음식 얘기인데 또 아니다.
사는 방식에 대한 노련하고 소박한 진술이 가득하다.” (박찬일)
인생의 고비를 넘긴 중년에 이르러
요리도, 삶도 힘써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차분하면서도 기품 있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산문
이 책은 중년의 작가가 인생의 고비를 넘기며 깨달은 삶과 음식에 대한 철학을 담담하고도 품격 있는 문장으로 서술한 산문이다. 미각은 “한 사람의 삶에 숨어 있는 정신사”(216쪽)를 품고 있다. 지난날의 요리를 재연해 입에 넣고 맛을 보면 피부 아래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피어난다. 저자 또한 어린 날 배운 요리를 하다 풀 한 포기라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주지스님의 가르침, 엄격한 수행생활에서 터득한 자연과 맛의 상성(相性), 가난했지만 자연이 선사한 진미를 즐겼던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힘써 나아감’을 뜻하는 정진(精進)의 근본을 요리에 적용하자면 “재료의 진정한 가치를 끌어내 하찮아 보이는 풀 한 포기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일본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시금치 뿌리 일화가 대표적이다.(〈이월, 된장을 즐기다〉) 중학생이었던 저자가 아무 생각 없이 시금치를 손질하면서 뿌리를 잘라내 버리자, 지켜보던 노스님이 버려진 뿌리를 주워 건네며 “나물에다 넣어라” 할 뿐이다. 어떤 것도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그제야 아이는 파란 잎사귀 위에 꽃처럼 얹힌 빨간 시금치 뿌리의 단맛을 깨닫는다.
〈유월, 매실절임에 담긴 인생〉 편은 매실절임과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엮여 저릿한 감동을 준다. 저자는 동자승으로 들어갔던 즈이슌인(瑞春院)에서 주지스님 부부가 낳은 갓난아이를 돌보는 등 어린아이로서 혹독한 절 생활이 힘겨워 열세 살 때 도망친다. 이후 다른 절에서 생활하다 십대 후반 환속한 뒤에는 옷 행상을 하는 등 40여 년 동안 36개의 직업을 전전한다. 그렇게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오십대 후반이 된 그가 즈이슌인의 모녀를 찾는다. 딸 요코 씨가 주지스님이 남긴 매실절임을 전해 주자, 어떤 회한도, 서러웠던 기억도 꺼내지 않은 채 53년 된 매실절임 한 알을 먹으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3.
초봄에는 두릅 새순, 아카시아꽃, 으름덩굴 같은 산나물을 먹고,
“지구의 부스럼처럼” 떼 지어 돋아나는 죽순은 오월에 즐기고,
매실의 계절 유월에는 두고두고 먹을 절임을 해둔다….
자연의 속도에 감응해 즐기는 맛의 세계
밭과 의논해 그때그때의 상차림을 정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땅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초봄에는 두릅 새순, 아카시아꽃, 으름덩굴, 쑥 같은 산나물을 먹고, “지구의 부스럼처럼” 떼 지어 돋아나는 죽순은 오월에 즐기고, 매실의 계절 유월에는 두고두고 먹을 절임을 해둔다. 여름의 문을 여는 칠월에는 가지, 여름 무, 양하, 산초 같은 풍성한 식재료로 축제를 열고, 팔월에는 각종 두부요리로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한다. 가을 미각의 으뜸인 송이를 캐는 구월부터 산에는 열매가 난다. 한여름의 흥성거림이 물러난 시월의 고요한 산에서 그 열매를 채취해 과실주를 담근다. 십일월에는 기나긴 겨울을 위해 황밤을 만들어두고, 흙도 잠드는 겨울에는 건조식품과 저장채소로 상차림을 궁리한다.
박찬일 요리사는 이 책을 읽으며 “당장 저자가 살았던 마을에 가고 싶어 구글 지도로 검색”하고, 저자만의 제철 재료 요리법을 “읽으며 메모”했다고 한다. 쇠귀나물 덩이줄기 구이, 다종다양한 된장, 산초조림, 꼬치와 데리야키, 아카시아꽃튀김, 죽순미역맑은장국, 죽순생강볶음, 매실절임, 각종 가지와 두부 요리, 송이구이, 산열매담금주, 황밤…. 자연의 속도에 감응해 즐기는 요리를 살펴보는 재미는 물론, 재료에 관한 해박한 지식, 맛있게 먹는 방법, 그리고 식재료를 “밥상 한자리에서 빛나는 맛”이 되도록 만드는 저자의 정진(精進)이 읽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이 책의 근저에는 선 수행에서 식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도겐(道元, 1200~1253) 선사의 가르침이자 일본 정진요리 발전에 초석이 된 『전좌교훈(典座敎訓)』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