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조남숙의 소설집 『환승』은 인간의 극단적인 상실감과 고독감의 서사, 그리움과 기다림의 소설적 형상, 소통의 상대역 또는 긍정적 타자 등을 다채롭게 조명하고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이를 회복할 수 없을 때, 그 상실감은 잃어버린 대상이 되는 무엇이 소중한 것일수록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움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발생하는 심정이다. 아니면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돌이켜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적극적인 행위를 보이기보다는 주로 멀리서 바라보거나 기다린다. 그것이 노력과 수고로 대신할 수 없는 운명에 있기에 그렇다. 소설 『환승』 그런 삶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이다.
목차
환승 / 7
그날, 하루 / 31
설매재 그곳 / 57
숨을 쉴 수만 있다면 / 81
그는 나에게 아무나가 아니었다 / 107
아내의 방 / 133
기획자 차동호 / 157
해설
비극적 세계관의 새로운 길 찾기_김종회 / 185
작가의 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표제작인 「환승」은 극단적인 고독감이 주제이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예정도 없이 친정 동네였던 답십리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 뜬금없는 행위의 배면에는 남편과의 소통 부재라는 원인행위가 잠복해 있다. 편의점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는 ‘나’와 어떤 인과관계를 형성하거나 소설적 줄거리에 개입하여 확고한 상대역이 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내내 담론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60대 후반의 연령에 이른 나는 ‘나’는 자신에게 ‘청춘이라는 시절이 있었을까’를 회의한다. 소설에서 주요한 포인트가 되는 지점은, 화자가 옛 동네를 찾아가기 위하여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야 하는 노선이다. 이때의 교통수단 환승에 견주어, 작가는 우리 세상살이의 환승과 그 규범에 대한 여러 사유(思惟)를 부가하고 있다.
「그날, 하루」는 홍주희라는 여자를 화자로 하여, 송은호라는 남자를 관찰하는 소설이다. 홍주희는 남편 P와의 결혼 생활이 ‘목적 없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다. 화자는 외로운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예 작업에 매진했고, 그래도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막막한 날에 그가 만난 남자가 송은호라는 조각가다. 직업적 동질성이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두 사람의 존재론적 외로움이 서로의 지경(地境)을 알아본 것이다.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에는 극적인 계기가 작용하고, 그러할 때마다 인연과 가슴 설렘과 그리움 같은 어휘들이 결부되어 있다. 이 소설이 송은호라는 인물을 매개로 이해와 공감의 지평을 열어두는 것은, 곧 작가의 소설에서 비극적 세계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 찾기이기도 하다.
「설매재 그곳」은 현실적인 삶, 특히 시댁과의 불협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화자가 양평 시골을 도피하듯 찾아가고 현욱이란 남자와 만나는 이야기이다. 시댁과의 관계가 어려우면 당연히 남편과의 관계도 그럴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라는 호칭을 쓰면서 언제나 모멸감을 주고, 시누이의 속옷까지 감당해야 하는 시댁이다. 명문대 출신 남편은 겉돌고 떠밀리듯 한 결혼은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만큼 양평 시골 현욱의 집과 당사자 현욱은 화자인 ‘나’에게 도피처가 되고, 그와 떨어져 있을 때는 절실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현욱의 집이 있는 그곳의 이름이 ‘설매재’다. 눈 속에서도 매화가 핀다는 말이다. 두 사람의 만남과 관계의 심화와 같은 사건은 굴곡 있게 드러나지 않고, 이러한 소설적 정조(情調) 가운데 숨어 있다. 그처럼 사건 중심이 아니라 분위기와 어조 중심으로 직조된 소설이다.
「숨을 쉴 수만 있다면」의 중심인물은 수민이라는 여성이고 수민과 소통하는 오랜 친구는 현애다. 소설 곳곳에 현애의 글이 액자소설 형식으로 등장한다. 수민은 현애가 있을 곳으로 짐작되는 속초를 향해 떠난다. 25년 전에 변사체가 되어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현애가 살아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은, 한 달 전 웹사이트에서 한 편의 소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이 현애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라고 받아들인 수민은, 소설을 지도 삼아 찾아간 속초 동명동의 바닷가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수민은 그 여자자 현애인가 아닌가 하고 혼란스러한다. 작가는 독자를 이와 같은 혼란 속에 방치하면서 명료한 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수민의 눈앞에 있는 현애 또는 ‘그 여자’의 정체가 불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독자들은 수긍할 수 있다. 수민의 애도와 그리움의 진정성이 어쩌면 죽음의 기로(岐路)를 넘어서는 우의(友誼)의 산출에 이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나가 아니었다」의 화자는 차도영이라는 이름의 여자이고, 그와 짝을 이루는 남자는 인태라는 이름을 가졌다. 동시대에 편만(遍滿)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넘어서,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경우와 도리를 다하는 사랑이 이 소설의 메시지다. 인태는 고시원에서 옹색하게 살다가 7평의 작은 오피스텔로 이주한다. 이 사실이 지시하는 바는 이들, 특히 인태의 환경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두 사람의 결혼에 만만치 않은 장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들은 망설임 없이 이 난관을 넘어선다. ‘나’에게는 인태를 두고 ‘경제력이 부족하지만 여러 가지로 가능성이 있는 남자’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다. 인태가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친구들로부터 ‘별종’으로 취급받아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지만, 무용을 하며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여기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다. 그러한 만큼 ‘나’가 인태를 납득하고 수용하는 것은, 외형적인 사정의 평가와 관련 없이 한 인간에 대한 내면적인 신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내의 방」은 화자의 극단적 상실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고학력의 남편이고, 아내는 ‘나’의 모든 단처(短處)를 감당하고 감싸주던 과분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 아내가 집을 나가서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일반적인 부부 싸움 끝에 일시적으로 가출한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 소설에서 서술되고 묘사된 아내의 품성은 단단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녀는 ‘살림하는 시간이 운동인 양’ 움직이는 인물이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35평형 고층 아파트에, 아내는 협소한 ‘작업방’을 두고 책도 읽고, 컴퓨터도 하고, 붓글씨도 썼다. 아내의 단련된 성격은 ‘나’가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 더 잘 부각되었다. 다니던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경제사범으로 여러 번의 재판을 거치며 형을 기다리고 있던 때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마음을 살펴주는 평범한 남편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아내를 비하하고 유령 보듯 했다. 아내가 사라진 후 그 방에서 발견한 화선지가 바짝 말라있는 것은, 이러한 남편의 태도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상징인데 참으로 아프게 다가온다.
「기획자 차동호」는 한 무명의 도자 조형 작가와 전시를 추진하는 기획자 차동호란 인물 사이의 이야기이다. 차동호의 주선으로 K군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 날짜가 바로 내일이다. 그런데 ‘차’는 ‘나’가 가장 아끼던 작품 〈웅크린 여인〉과 누드드로잉 세 점을 들고 사라졌다. ‘나’는 그 작품에 ‘내 영혼의 한 편린이 농축’되어 있다고 여긴다. 그 중간에 코로나 사태라는 재해가 개재(介在)되어 있기는 했으나, ‘차’가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무책임했고 그가 말한 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가 뒤늦게 분실이나 파손에 대한 조항 그리고 군의 작품 인수증을 받아두지 못한 부주의를 후회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친 터였다. 차동호는 60대 초반, ‘나’는 그보다 5살 위다. 그가 우연히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 방문이 여러 번이 되면서 두 사람은 친숙해졌다. ‘차’는 ‘나’의 작품에 감정과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상찬(賞讚)한다. 전시회가 지연되고 마침내 무산된 주원인이 코로나 때문이었다고 보는 ‘나’는 ‘차’를 궁극적으로 나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려 애쓰는 심경과 전시회 파행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 큰 격차가 가로놓여 있다. 이 간극은 소설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평안하고 안온한 분위기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연유로, 길항(拮抗)하고 갈등하는 사건의 조화로운 접점이 마련되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차동호와의 풀릴 길 없는 어긋남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는 또 하나의 어긋난 사태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활용하는 장치가 각별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남숙 소설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등장인물과 그 주변의 소통 불능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가 막힘 없이 잘 통한다면, 미상불 소설적 갈등의 소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나 불능은 결국 자아와 타자의 관계성에 관한 사안이다. 이때의 타자는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을 뜻하고, 그는 대체로 경쟁이나 갈등의 대상이 된다. 지금껏 조남숙의 소설은 그 타자가 소설적 화자와 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었고, 그것이 이 작가의 세계를 우울하고 비극적으로 이끄는 요인이기도 했다. 소설은 그런 비극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들의 형상과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길 찾기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남숙의 소설 『환승』은 상호 간의 간격을 좁히고 긍정적인 관계성을 매설하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작가의 말
저 멀리 한 여인이 서 있습니다. 그녀는 눈물짓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장 슬플 때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는 한 권, 두 권, 세 권……으로 늘어났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쌓여갔습니다. 여인은 기필코 한 권의 책을 써서 세상에 내보내리라 다짐합니다. 구멍 난 가슴을 메울 길이 없었습니다. 소설을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 걸 꿈으로 품기는 처음이었지요. 독학으로 하는 소설쓰기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은 기꺼이 나를 문하생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문우들은 나를 단편소설 제조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구성도 모른 채 그냥 썼습니다. 할 말이 많았습니다. 쓰고, 쓰고 또 썼습니다. 밑바닥까지 게워내고 깨달았습니다. 피폐하고 얼룩진 눈물자국이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