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프랑스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의 회고록이다. 그 지옥의 경험, 그리고 함께한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그 이후 삶이 실험적인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델보가 탄 아우슈비츠행 수송 열차에는 총 230명의 프랑스 여성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중 49명이었다. 그는 1945년에 귀환한 후, 25년의 시간을 두고 자신의 기억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아우르는 총 세 권의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 연작을 썼다.
여성들의 집단 기억으로 아우슈비츠의 진상을 드러낸 이 회고록은 평생 실존과 지식, 언어의 문제에 천착한 델보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기단이 되었다. 국가 권력과 남성의 목소리로 쓰인 대문자 역사 속에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해 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그 철학적?정치적 가치는 시대를 넘어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한국어판에서는 본래 나뉘어 있었던 세 권의 책을 합본했으며 1부 제목인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를 전체 책 제목으로 삼았다.
목차
추천의 글_그렇게 그들은 살아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목정원)
Ⅰ.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Ⅱ. 쓸모없는 지식
Ⅲ. 우리 나날들의 척도
역자 후기_몸의 정치, 몸의 시, 몸의 윤리
추천의 글_샤를로트 델보라는 세계, 진실한 기억과 연대의 예술이 시작된 곳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노벨 평화상 수상 작가 엘리 위젤이 주목한 홀로코스트 문학의 심오한 지평
* “우리에게는 잿더미로부터 과거를 일으킬 의무가 있다.” 역사의 밑바닥에서 진실한 기억의 예술을 펼쳐낸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 작품 국내 최초 출간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는 프랑스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경험, 함께 지옥을 겪고 살아남은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그 이후 삶을 서술한 실험적인 형식의 회고록이다.
델보는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비시 정권하에서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1942년 3월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유명한 연극 배우 · 감독인 루이 주베의 비서였다. 델보가 탄 아우슈비츠행 수송 열차에는 총 230명의 프랑스 여성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중 49명이었다. 델보는 1945년에 귀환한 후, 25년의 시간을 두고 총 세 권의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 연작을 썼다.
델보가 귀환한 직후에, 27개월의 수용소 생활을 토대로 쓴 1~2부 원고는 20년간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 델보가 출간을 결심한 것은 1965년, 자신과 함께 수송 열차를 탔던 여성들을 전수 조사해 《1월 24일의 호송Le Convoi du 24 Janvier》으로 엮어내면서였다. 개인이 아닌 여성들의 집단 기억으로 아우슈비츠의 진상을 드러내고자, 델보는 다른 생존자들의 삶을 옮기는 ‘증언 문학’ 형식의 3부를 기획 · 집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65~1971년 연이어 출간된 세 권의 회고록은 델보가 평생 기억과 지식,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며 남긴 다수의 희곡 등 그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기단이 되었으며, 국가 권력과 남성의 목소리로 쓰인 대문자 역사의 그림자로 남아 있던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선형성에 저항하는 서사 구조, 부서지고 잇따르는 말로 시와 산문과 구술을 넘나드는 표현의 방법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실험적인 예술의 형식은 ‘진실한 기억과 실존’에 관한 철학적 · 정치적 화두의 측면에서 시대를 넘어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2023년에 출간한 대담집 《살 만함과 살 수 없음The Livable and the Unlivable》에서 델보의 사례를 중요하게 인용하며 오늘날의 폭력과 단절의 시대에 거주를 박탈당한 삶, 난민과 이주민을 둘러싼 언어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이어 나간다.
* “49명의 생존자, 이 다부진 여성들은 살아남기로 결의했고 서로 돌보는 데 익숙했다. 그중 샤를로트 델보가 있었다.” -캐롤라인 무어헤드, 《아우슈비츠의 여자들》 저자
* 국가 권력과 남성의 역사를 거부하고 동료들의 죽음과 끝까지 동행하며 ‘우리’의 목소리로 써 내려간 여성 서사
책을 다 읽고 나면 샤를로트 델보는 결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남지 않는다. 그녀의 수용소 기록에서 주된 주어는 ‘나’가 아닌 ‘우리’다. 걸을 때 서로의 팔을 잡고, 점호 중 서로의 몸을 문질러주고,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일상의 와중에도 서로의 실존의 증인이 되어주고, 상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수시로 이름 부른 동기들 속에서 델보는 기억하고 쓴다. 그 밑바닥에서 여성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그것은 생에 매달리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서로가 없으면 곧바로 절망의 나락으로, 죽음의 유혹으로 떨어졌을 테니 말이다. 수용소에서 버틸 힘과 용기와 의미는 혼자서는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함께함이 델보를 살아남게 했지만, 동시에 그 이후의 생애 내내 죽음과 동행하게 했다. 동기들의 죽음은 생존자의 삶을 맴도는 유령이 되어 끈질기게 물어온다. 왜 더 강인하고 용감한 다른 여성이 죽었는지, 왜 하필 당신이 살았는지. 우리만이 알고 있는 우리의 진실을 우리 아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지, 말해야 할지, 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델보에게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죽음들에 대한 책임이다. 생전에 그녀는 자신에게 “잿더미로부터 과거를 일으킬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종종 말했다. 동기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므로 귀환 이후를 담은 3부는 델보가 스스로 부여한 의무를 절실하게 행함으로써 내놓은 하나의 대답이다. 그녀가 옮긴 삶들은 국가 권력과 남성의 목소리로 쓰여온 거대 담론의 그림자다. 비극을 극복하고 진보하는 주류적 역사 서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실제로 이들 여성 레지스탕스들은 학력이 높지 않고 직업도 평범한 보통의 여성들이었다. (《1월 24일의 호송》에 따르면 230명 중 약 160명이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대다수가 주부, 농부, 사무직, 재봉사 등 노동계급이었다) 잔 다르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양심에 의해 나선 이들이 약한 동기를 향한 매를 대신 맞고, 서로를 붙잡으며 살아남은 것은 공명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까지의 대문자 역사 속에 이 여성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델보가 영웅이 아닌 같은 희생자로서, 기억의 매개자로서 펼치는 치열한 증언 문학은 홀로코스트 문학 연구자 로렌스 랭어의 말마따나 생존자들의 ‘죽음 이후afterdeath’ 영역을 열어젖히며, 감히 눈 마주치는 독자에게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 “전쟁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 말의 아름다움과 장면의 극악함을 동시에 포착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홀딩, 《우먼스 리뷰 오브 북스》
* 진정한 존재를 이루는 기억은 무엇이고, 지식과 언어는 무엇을 하는가. 시대를 넘어 재해석될 가치를 지닌 예술적 형식
이 책의 동시대적 의의는 무엇보다도 그 실험적인 예술의 형식에 있다. 툭툭 끊어지고 더듬듯 되풀이되고 입과 코를 틀어막힌 채 겨우 쉬는 숨 같은 문장들에서 발생하는 거칠고 강박적인 리듬은 내용과 틈 없이 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그것은 앎과 생각 이전에 몸으로 맞닥뜨린 폭력과 부조리의 속성 그 자체이자, 델보 자신의 말처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생존자의 윤리를 구현한 형식이다. 온 감각을 곤두서게 하는 이 몸의 언어는, 출간 당시에는 다소 난해하게 여겨졌을지언정 ‘진실한 기억’에 관한 철학적 · 정치적 화두의 측면에서 시대를 넘어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지 25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에게,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전혀 흐려지지 않는다. 닳거나 마모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삶이 죽음과 재언(再言)에 갇혀 있음을 털어놓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결코 과거가 되지 않는 역사의 유령를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은 훈장이 아니라 악몽이, 질병이, 속세에서는 쓸모없는 지식이, 깊은 허무를 동반한 혜안이, 그로 인한 괴리와 고독이 되어 돌아왔다. 오카 마리가 《기억 · 서사》에서 서술했듯, 희생자에게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회귀”하는 거대한 폭력의 실상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극작가 델보를, 이 오래된 책을, 여성 레지스탕스라는 잊힌 과거와 함께 지금 여기로 소환하는 것은 그녀가 또 한 명의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 자로서, 가장 취약한 존재의 상태에 처해본 자로서, 그런 존재들 간 연대를 통해 살아남은 자로서, 우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무겁게 진 자로서, 그 이후 유예된 생의 시간을 똑바로 마주한 자로서, 델보가 언어의 실패와 분투하며 지켜낸 그 맹렬한 말들이 여전히, 아니 나날이 첨예하게 근원적인 삶의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그토록 애써서 돌아온 이 세계는, 그녀들이 그토록 품고자 했던 이 인류는, 정녕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