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학술 연구를 통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사회운동과 연대해 온 젊은 연구자들이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재난 참사를 재구성하고 재난 이후의 사회를 전망하는 글을 펴냈다. 여러 학자의 이론을 우리 사회의 재난 참사와 접목하여 재난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재난의 곁에서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사유들을 모아낸다.
이의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화한 재난 사회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다. 애도, 기억, 참사, 인정, 취약성, 유가족, 재난, 안전 등 재난 사회운동이 새롭게 사회화한 많은 개념이 반신자유주의의 정세적 지형 위에서 배치되고 결합하면서 그 구체성을 획득할 것이고, 그래야 삶의 차원에서 재난 사회운동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역사, 철학, 사회, 문화 이론을 빌어 말하고자 하는 재난 이야기는 결국 재난 참사의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을 온전히 애도하고 지지하고 연대하자는 것, 또한 “삶을 비루하게 만드는 만큼 죽음 역시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와 맞서자는 외침이다.
“‘재난 세대’의 간극을 다독이며 참사를 제대로 마주 본 치유의 연구”
“비극적 참사에 압도되지 않고 응전하고 도전하는 치열한 사유”
목차
프롤로그: 재난 이후, 쏠의 십대 그리고 경진의 이십대 _전주희
1장 재난과 통치: (신)자유주의적 위험 관리인가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체제 전환인가 _정정훈
1. 리스본 대지진과 근대적 통치
2. 자유에 기초하여 국가를 통치하기
3. 자유주의적 안전장치와 재난 관리
4. 상호의존적 존재로서 개인들과 체제 전환
5. 출구: 안전할 권리에서 체제 전환의 전망으로
2장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본 재난 참사 유가족 운동 _백선우
1. 들어가는 말: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
2. 호네트의 인정이론
3. 인정투쟁으로서 재난 참사 유가족 운동
4.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
3장 사회적 문화투쟁의 장으로서 재난 참사의 외상: 재난 참사와 외상의 문화정치학 _김현준
1. 들어가며: 재난과 고통의 질문
2. 고통과 외상을 사회문화적 실재로서 이해하기
3. ‘사회 없는’ 재난과 ‘문화 없는’ 외상 이해의 한계
4. 공적, 정치적 책임과 책무성의 투쟁으로 규정되는 재난과 외상
5. 나가며: 재난 참사의 고통을 우리 사회의 문제로 끌어오기 위하여
4장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 세 편의 탄핵 의견서를 중심으로 _조지훈
1.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기각 이후, 계속되는 국가의 법적 책임 부인
2. 탄핵 기각 결정문 비판: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법적 책임 회피의 수사학
3.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 행위 책임에서 결과 책임으로
4. 애도가능성의 평등으로서의 생명권에 대한 요구
5. 나가며: 약속의 위반, 국가의 헌법에 대한 거짓맹세 앞에서
5장 10.29 이태원, 재난은 어떻게 서사화되었나: 국가주의 재난서사 비판 _전주희
1. 재난을 부정하는 재난서사
2. 실패의 봉합과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반복
3.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작동 실패? 애도의 등급화와 피해자 혐오
4. 재난 ‘이후’의 사회를 위한 조건
6장 피해당사자의 권리로부터 모두의 안전권을 _전주희
1. 재난이 만든 ‘두 번째 시민’
2. ‘대표불능’ 상태의 재난 피해자와 보편적 안전권의 실종
3.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 안전권 입법 시도와 실패
4. 대항적 생명정치와 보편적 안전권을 위한 저항권
주
참고문헌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재난 참사 이후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론과 현실을 넘나드는 재난 뒤의 성찰
학술 연구를 통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사회운동과 연대해 온 젊은 연구자들이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재난 참사를 재구성하고 재난 이후의 사회를 전망하는 글을 펴냈다. 저자들이 다룬 국가 통치, 유가족 운동, 외상과 고통, 법적 책임, 재난서사, 안전권 등 재난과 관련된 의제들은 재난 참사가 끊이지 않는 와중에 차분히 들여다보지 못했거나 유예했던 문제들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은 여러 학자의 이론을 우리 사회의 재난 참사와 접목하여 재난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재난의 곁에서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사유들을 모아낸다.
저자들이 재난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용한 학자들은 푸코와 데리다부터 주디스 버틀러와 낸시 프레이저까지 폭넓다. 이의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화한 재난 사회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다. 애도, 기억, 참사, 인정, 취약성, 유가족, 재난, 안전 등 재난 사회운동이 새롭게 사회화한 많은 개념이 반신자유주의의 정세적 지형 위에서 배치되고 결합하면서 그 구체성을 획득할 것이고, 그래야 삶의 차원에서 재난 사회운동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역사, 철학, 사회, 문화 이론을 빌어 말하고자 하는 재난 이야기는 결국 재난 참사의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을 온전히 애도하고 지지하고 연대하자는 것, 또한 “삶을 비루하게 만드는 만큼 죽음 역시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와 맞서자는 외침이다.
그리고 “함께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계속 쌓아갈 수 있으면 한다. 참사 이야기는 너무 슬프지만은 않게 계속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핼러윈은 이전과 절대 같을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즐거울 수 있는 날이길 바란다”(배경진)는 말처럼, 살아남은 인간이자 앞으로도 재난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존엄하고 안전한 삶을 계속 영위하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사유들
폭력적 위기관리 체제를 넘어설 사회적 인정과 실천의 방법
국가 권력이 재난을 책임지고 수습한 최초의 사례는 1775년 리스본 대지진이다. 이로부터 재난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통치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정정훈은 1장에서 근대 국가 통치와 재난이 맺는 관계, 자유와 재난의 관계를 다룬다. 푸코가 말한 최적화된 국가 관리, 즉 통치성이 경제적 자유주의와 결합했고, 이 자유주의 통치성의 핵심 기술은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안전장치였다.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국가는 개인의 행동 양식이 기업의 이윤 추구 원리에 따르도록 유도했고, 신자유주의적 안전 관리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인다. 저자의 이러한 논의를 통해 근대적 재난 관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폭력성과 억압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취약함 때문에 상호의존성이 필요하다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체제 전환,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구상과 이것이 민주적인 재난 대응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술했다.
2장에서 백선우는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재난 참사 유가족 운동을 살핀다. 재난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모욕당하고, 유가족의 목소리는 무시되며, 참사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유가족 운동에 대한 지지가 절실하다고 보아, 유가족 운동과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의미를 살펴본다. 악셀 호네트가 규정한 세 가지 인정형태인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가 폭력, 권리부정, 가치부정이라는 무시를 통해 훼손될 때 주체는 인정투쟁에 나서게 된다. 저자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사회적 고통인 재난 참사에서 고통의 사회적 성격에 주목하는 방식과 희생자들의 유가족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인정투쟁의 정당성을 규명한다. 아울러 유가족들의 인정투쟁이 곧 안전사회를 위한 투쟁이라며, 이에 대한 연대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재난 참사에 따른 외상의 문화정치학을 다룬 3장에서 김현준은 피해자, 생존자,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외상을 들여다본다. 그에 따르면 재난의 고통은 개인의 병리나 심리 상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관계와 공적 제도가 만들어내는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이자 사회적 병리의 반영이다. 사회적 시간을 의미 있게 통과한 재난은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위로를 주고 고통을 경감시키지만, 그렇지 못한 재난은 그 지난한 과정에서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저자는 문화적 외상 이론에 따라 외상을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면서, 재난을 사회적 사건으로 정의해야 고통을 경감하는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외상에 사회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 고통을 치유하고 인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도와 투쟁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보편적 안전권을 위해 대항적 생명정치와 연대하자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청구가 기각된 사실은 4장에서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 문제로 다뤄진다. 조지훈은 생명권을 지키겠다는 국가의 맹세가 거짓임이 드러난 중요 사례로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판결을 비판적으로 다뤄 우리 사회에서 재난 참사 책임 분배의 문제가 어떤 법적 한계에 봉착했는지 드러낸다. 이를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서 제출한 세 편의 탄핵 의견서를 분석했다. 헌법재판소는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의 의미를 축소 해석하고 법률 위반 여부 기준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장관을 변호했지만, 시민대책회의의 ‘법률 위반과 관련된 탄핵 의견서’와 ‘생명권과 관련된 탄핵 의견서’는 이에 앞서 행안부 장관의 법률 위반 요소를 상세히 따지고 나아가 법적 책임의 확장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생명권 보호에 대한 기대가 좌절된 결과 자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유가족 협의회의 탄핵 의견서’를 통해 희생자 수습과 정부 대응 과정에서 반복된 폭력을 고발한다.
5장에서 전주희는 이태원 참사가 다뤄진 방식을 통해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형성과 작동을 비판한다. 이태원 참사는 ‘놀다가 죽었다’라는 사사화를 통한 국가 책임의 부정, 전 국민 트라우마 관리라는 애도의 의료화, 주최자 없는 행사라며 개인에 책임 전가 등으로 서사화되었다. 저자는 이것이 재난에 국가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위기를 제어하고 해결을 회피하려는 대응 이상으로, 국가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을 재난 피해자에게 가하면서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역전시킨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재난 시기에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포착되는 여러 서사 형태를 분석하고, 이로부터 대항적인 재난서사의 복원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마지막장은 피해당사자의 권리로부터 모두의 안전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을 조명한다. 전주희는 무시당하고 시민성 일부를 박탈당하는 유가족의 현실을 들어 한국사회에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작동하지 않음을 비판하고, 유가족 집단을 포함한 재난 피해자의 대표불능 문제가 보편적인 안전권 부재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이를 법제도에 반영하려 한 실천들을 소개한다. 이는 각각 헌법 개정, 재난안전법 개정,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시도로, 비록 실패했지만 시민사회에서 보편적 안전권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제기했다는 의미가 있다. 각 제안의 세부 내용과 그 의미 분석에 이어 살펴본 ‘4.16 인권선언’은 대항적 생명정치와 보편적 안전권을 위한 저항의 시도로 다뤄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안전권이 부재한 현실에서 안전권을 실천하는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생명정치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