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쓰고, 함께 나누겠다는 다짐”
미래를 기억하며 오늘을 기록하는
다정하고도 치열한 비평
문학을, 그리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
1980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나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시,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병국 문학평론가의 첫 평론집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걷는사람 인문학 다섯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문학과 비평의 역할을 탐구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독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이병국 평론가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은 이번 신작은 작가의 치열한 사유와 문학적 열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첫 평론집의 서문을 준비하며 이병국 평론가는 긴 시간 고민을 거듭했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어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책머리에)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신작은 문학적 성찰과 자기 고백이 담긴 진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이야기하듯,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내어주는 행위는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오늘날 연대와 공감의 자리를 탐구한다. 선함의 고단함을 감내하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환대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하는 문학적 주제 의식이 평론집 전반을 아우른다.
평론집은 각 부의 중심 주제를 따라 배치되었다. 1부에서는 문학의 기록성에 천착한 작품들, 즉 일종의 ‘회색문헌’으로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우리 삶과 나란히 놓으며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문학의 수행성에 대해 더듬어 본다. 2부에서는 한국 문학장을 둘러싼 갈등과 변화 양상을 톺아본다. 특히 플랫폼으로서 문학의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며, 제도 바깥을 상상하고 비장소로서의 장소라는 새로운 문학장 형성을 꿈꿔본다. 3부에서는 정상성이라는 담론을 비롯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을 함께 살핀다. 나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하여 활발히 개진된 포스트휴먼 주체와 동물권 및 돌봄 노동 문제를 돌아보며 우리가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대상으로 폭넓은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병국 평론가는 특히 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을 진단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어 독보적인 역량을 발휘한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내면세계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면밀하게 짚어내며, 작품이 지닌 시대적·사회적 함의까지도 탁월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단순한 미적 경험을 넘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것이 문학임을 확신하기에, 그의 비평은 개인의 사유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문학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이끌어낸다.
“고립과 고독으로 점철된 피폐한 삶일지언정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포기하지 않는 마음」) 하기에, 이제 작가의 성찰은 현대 사회의 여러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책임을 돌아보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는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곳’을 함께 만들어가는 행위를 당위적 언술이나 의무를 통해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다정함을 나누는 행위만으로도 치유와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손에 쥐여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긍정적인 사유는 단순한 낙관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문학이 가진 치유와 소통의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나아간다. 이 책을 펼친다면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라”(「유실된 인간, 혹은 가능한 역사 너머」)보려는, 문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 특유의 반짝이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마음이 하는 일
제1부
포기하지 않는 마음 ― 박지영, 이현석, 김연수의 소설이 가닿는 곳
기록으로서의 소설, 소설로서의 기록 ― 은폐된 폭력의 구조와 저항의 목소리
유실된 인간, 혹은 가능한 역사 너머 ― 조해진과 최은영의 소설이 말해 주는 것들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하는 것
사적 기억의 역사, 그 사소함의 윤리 ― 윤성희와 김금희의 소설을 중심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며 갱신하는 ― 2010년대 시의 존재론
기록자들
시대 감각 ― 이서수, 한정현, 최진영의 동시대성
제2부
우리가 가야 할 ‘우리’라는 길
강제된 경계로부터 탈주를 소망하다 ―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시 단상
시와 시인 그리고 플랫폼
상상된 믿음에서 탈영토화하기
비장소로서의 장소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 ― 문학의 유통에서 문학의 소통으로
거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제3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의 관계 맺음, 그 다른 세계의 가능성
우리 삶의 너른 토대를 위하여 ―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
포스트휴먼 주체의 공감과 뉴-노멀 시대의 이야기 ― 천선란 소설을 중심으로
당신의 이웃은 어디에 있나요?
정상가족이라는 상상공동체
경계 너머 ― 문지혁, 박유경, 장희원, 성해나의 문학적 실천에 관하여
선량함이라니요, 납작하게 뛰어넘어요
에필로그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수록 작품 발표 지면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작가의 말
첫 평론집의 서문을 쓰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어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거창한 수사로 혹은 내밀한 사적 언어로 문학적 지향을 펼쳐낸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정작 쓴 문장이 첫 평론집의 서문을 쓰는 어쩌고저쩌고라니. 무능의 언어로 서문이 점철되어 평론집 전체가 폄훼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평론이란 것이 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해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보는 시각만큼 빗나가거나 억지스러운 데가 있는 것이라서 오해와 오독의 기록을 내어놓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무의식의 층위에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두 개의 장면에서 나의 평론은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서울 신사동 어느 극장에서 본 허진호 감독의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오프닝 시퀀스. 주인공인 정원의 얼굴로 조금씩 다가가는 빛을 보는 순간, 저 장면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어떤 기대로 충만했다. 빛에 담긴 환희와 그로 인한 불안이 정원의 남은 생에 미친 영향과 같은 글을 말이다. 또 다른 장면은 2003년 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펼쳐 “나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유리와 마주하는 때였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유리를 내모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 순간, 이전까지 영화비평 공부에 매진했던 나는 문학평론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시절의 나는 평론이 그저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를 설명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로 시계를 확장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분열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일들을 하며 겪는 세계에서 나는 내가 쓰려고 했던 언어에서의 소외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것은 세계가 요구하는 방식의 언어를 체화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언어로부터 멀어져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열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장에 앉아 어떤 충일함을 경험했던 때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 평론가로 등단할 수 있었던 것을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그 이전에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 회복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2024년 가을
이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