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류가 위치한 지식의 최전선에 서서
그동안 과거로부터 얻어온 지식들을 조망하고
앞으로 탐구해 갈 지식의 미래에 대해 제언한다
기술과 과학,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역사와 고고학 및 고인류학,
마음과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그리고 인지과학까지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위대한 지적 여정!
“놀랍고 읽기 쉬우며 권위가 있다.”
- 로렌스 크라우스
“복잡한 아이디어를 분류하고, 대조하고, 명확히 해준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철학적 사고로 조망하는 재치 있고 박식하며 권위 있는 책.”
- 《뉴욕타임스》
앤서니 그레일링은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해 온 세계적인 석학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등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뉴 칼리지 오브 더 휴머니티스(NCH, 현 노스이스턴대학교 런던)를 설립해 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지는 인문주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힘써 온 그가 그간의 연구와 저술 활동을 바탕으로, 과학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지식의 탐구에 관해 조망했다. 자연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인류가 거둔 지적 성취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독자를 새로운 탐구의 세계로 안내한다.
원제인 “The Frontiers of Knowledge: What We Know About Science, History and The Mind”에서 볼 수 있듯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지식과 무지의 경계선이자 지식의 최전선을 형성한 그 지점들에서 인류가 무엇을 알아내었고 그 결과 어떻게 세계관이 확장되었으며 또 그것들이 가진 함의는 무엇이었는지를 저자가 지닌 광활한 지식의 폭을 통해 조망한다. 인류가 거둔 지적 성취를 가늠하고 지식의 수준을 높이며, 관련 분야들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최근 인류는 우주, 과거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폭넓게 지식을 확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 놀랄만한 성취는 우리가 아직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과학은 아직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이해를 5%만 밝혀주고 있고, 선사시대는 발굴된 수천 개의 유적지를 통해 여전히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중이며, 인간의 마음과 뇌에 관련한 신경과학은 겨우 그 시작 단계에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모르는 것은 어떻게 알아가고 있으며, 더 많은 지식을 향한 장애물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바야흐로 다가오는 지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깊은 탐구와 투쟁의 시대 속에, 이러한 질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탐구의 여정에 그레일링 교수보다 더 뛰어난 길잡이는 없을 것이다. 인식론의 대가인 저자가 지식의 핵심 분야인 과학, 역사, 심리학을 총 3부로 나누어 기술과 과학,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역사와 고고학 및 고인류학, 마음과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그리고 인지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게 살펴보는 이 책은 명확하고 활력 있는 필체와 눈을 사로잡는 광활한 지식의 폭을 통해 쓰인 매력적인 역작이다.
목차
머리말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제1부 과학
1. 과학 이전의 기술
2. 과학의 발흥
3. 과학적 세계관
4. 핀홀을 통해
제2부 역사
1. 역사의 시작
2. 인류의 출현
3. 과거의 문제
4. 역사 ‘판독’
제3부 두뇌와 마음
1. 마음과 심장
2. 인지 두뇌
3. 신경과학과 의식
4. 마음과 자아
결론: 올림퍼스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부록Ⅰ: 그림
부록Ⅱ: 길가메시 서사시
부록Ⅲ: 함무라비 법전
주석
참고문헌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과학과 사고, 삶, 인류 그 자체,
우리가 미래에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의 지식은 과연 무지를 없애가고 있는가?
최근까지 인류는 놀라운 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 대표적인 분야는 과학으로 현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쓰이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이 불과 최근 백 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발견되고 응용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발전 속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주공학,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로봇, 바이오, 유전자 공학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과 기술이 등장하며 인류가 개척해 온 지식의 경계선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지식의 최전선에서 인류가 그동안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지 그 장대한 역사를 촘촘히 기록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인류의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찰한다.
그 지점에서 인류는 커다란 물음에 직면한다. 우리는 한때 지식의 진보가 우리의 무지를 없애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뤄낸 이 거대한 진보는 우리가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민간 우주선이 우주여행을 시도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겨우 5%에 불과하며 나머지 95%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로 대변되는 무지의 영역이다. 19세기 이후로 인류는 과거 수천 년의 역사를 발굴하고 그리스 고전기 이전에 번성했던 문명의 역사와 그보다 더 이전에 인류가 진화해 온 수백만 년 전의 사실들을 알아내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4천년기 발견된 수백만 점의 수메르 시기 문헌들은 아직 10분의 1 정도밖에 읽히지 않았다. 또 텔(tell)이라는 유적지 수백만 곳은 아직도 조사되지 않은 채로 언젠가 그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뇌와 마음에 관해서는 어떤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우리는 두뇌에 대해,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fMRI 등 최신 분석 기술의 등장에 힘입어 눈부시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도구의 발달에 비해 그 발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식과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탐구의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낸 AI는 인류의 미래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분야 중 하나이고, 마음의 문제에 관해서는 신경철학(neurophilosophy)이나 심리철학과 같은 분야에서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탐구 분야 사이의 연결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현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식의 진보는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밝혀내고 있으면서 그 발전 속도에 취해 미처 잊고 지내던 중요한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SNS는 인간관계마저 감정의 소모 없이 관찰하고 탐닉하는 세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도구의 개발자도 사용자도 그것이 주는 위험성과 경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늘상 등장하는 시시콜콜한 윤리적인 측면의 지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협은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무기, 특히 자율형살상무기 시스템(LAWS)은 소형화되고 첨단화된 컴퓨터 기술과 눈부시게 발전하는 AI가 결합하면서 이미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 전쟁은 국지적인 분쟁의 수준을 넘어 과거 1차 세계대전의 사례에서 보듯, 철도 시간표의 문제에서부터 과다한 군비 확충, 강대국들의 외교 혼란까지 가세하며 이제 아주 작은 방아쇠만 잡아당겨도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대규모의 살생과 비인도주의적 참상이 벌어질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미 21세기 초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목도했다. 또 기원전 1200년쯤 ‘바다 민족’이 청동기 시대 문명을 붕괴시키고, 고도로 발달했던 지중해 동부와 근동 문명이 몇 세기 동안이나 ‘암흑기’라는 구렁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배경을 살펴보면, 세밀하게 얽힌 문명의 연결고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졌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본질적으로, 20세기 중반에 C. P. 스노가 언급한 ‘두 문화(Two Cultures)’ 즉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진다면, 인간사를 제대로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전정한 의미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인문학과 과학은 각자 전문화되어 별개의 분야로 발전하고 있으며 과학자는 인문학에 문외한이고 인문학자는 과학에 문외한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학 역시 당장 직업 전선에 투입될 수 있는 지식 상거래적 측면만을 강조할 뿐 교양과 인문학은 아예 몰라도 된다거나 학생의 선택에 맡기는 흐름이 당연시되고 있다. 철학은 이제 고리타분한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숨어들었고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틈타 과학의 발전은 인류가 그것이 ‘무엇’에 관한 지식인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우리가 이해하는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빠르게 뻗어 가고 있다. 다가오는 지식의 진정한 의미와 다가오는 위기, 투쟁의 시대 속에 이러한 질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기술과 과학,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역사와 고고학 및 고인류학,
마음과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그리고 인지과학까지
한때 지식의 최전선이었거나 현재 그 경계선에 있는
최신 이론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다
이 책은 제1부 과학, 제2부 역사, 제3부 두뇌와 마음의 총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는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다룬다. 제2부에서는 역사, 고고학, 고인류학을 다룬다. 제3부에서는 마음과 두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을 다룬다. 각 분야의 지식은 가장 오래된 지식부터 가장 최근의 지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면서도 또 최신의 지식을 반영하여 전문적이다. 그래서 과학은 알지만 역사는 모르거나 문학은 알지만 뇌과학은 모르는 지적 탐구에 목마른 독자에게 지식과 정신을 함양하고 상식의 폭을 넓혀주는 최고의 입문서가 되어준다. 지식들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나열되어서 향후 관심이 가는 분야로까지 독서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또한 그레일링 교수는 단순히 지식의 정리에 그치지 않고, 해당 분야마다 철학적 질문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식론의 대가답게 철학의 관점에서 지적인 검증과 올바른 탐구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지에 대해 충분히 고찰하고, 전체적이면서 입체적인 흐름을 잡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위해 그는 지적 정직성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회의적 문제, 방법론적 문제, 경고성 문제 등 탐구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열두 가지로 정리해 각각 다음과 같이 이름 붙였다.
모든 탐구가 굉장히 좁은 시공간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데이터에서 제한적으로 출발함으로 인해, 시야가 한정되고 마는 ‘핀홀 문제(Pinhole Problem)’. 탐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써야만 하는 은유가 불러올 수 있는 오해에 관한 ‘은유 문제(Metaphor Problem)’. 이론과 그 이론이 기술하는 현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지도 문제(Map Problem)’. 연구를 계획하거나 결과를 승인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기준 문제(Criteria Problem)’. 언제든 파기될 가능성이 있는 경험적 탐구가 진실이라고 여겨질 만한 신뢰도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은 무엇이고, 이때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 문제(Truth Problem)’. 바다를 항해하는데 문제없이 잘 작동한 천동설처럼 실생활에 잘 작동한다는 이유로 타당한 이론으로 오해받는 일을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 문제(Ptolemy Problem)’. 손에 쥔 도구가 망치뿐이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듯이, 현재 지닌 도구와 장비가 밝혀낼 수 있는 것만 보려는 ‘망치 문제(Hammer Problem)’. 밤에는 가로등 밑에서만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헤매듯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것만을 탐구하게 된다는 ‘등불 문제(Lamplight Problem)’. 조사하거나 관찰하는 행동이 그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간섭자 문제(Meddler Problem)’. 연구자의 경험에 따라 주관적으로 또는 시대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판독 문제(Reading-in Problem)’. 모든 것을 하나의 궁극적 원인이나 원리로 설명하려 하는 환원주의에 내재한 위험인 ‘파르메니데스 문제(Parmenides Problem)’. 결론에 도달하고, 완벽히 설명하고, 이야기를 끝맺고 싶은 충동으로 인해 성급히 결론으로 도약하려는 실수를 저지르는 ‘종결 문제(Closure Problem)’가 그것이다.
이 열두 가지 문제들은 책에서 다루는 세 가지 탐구 분야의 크고 작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들로 인해 일부 사상가들은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레일링 교수는 이러한 입장은 탐구의 이론 또는 목적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그보다 지식의 무한한 가능성에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탐구 과정에서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또한 탐구 과정에서 지식을 발전시키고 무지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배운다. 아울러 저자는 우리가 비공식적으로 ‘지식’이라고 부르는 매우 믿을만하고 근거가 탄탄한 믿음을 이 책을 통해 더 넓은 철학적 의미에서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지식을 대하는 철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 책에서 다룰 탐구 분야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각 탐구 분야에서 지금 아는 것은 무엇이고, 또 한때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 지식의 습득 과정에서 작용한 주장, 방법, 가정 중에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는가? 철학의 건설적 과제 가운데 하나는 철학이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수행하는 개념의 정리 작업이다. 존 로크가 17세기에 급성장한 과학의 위대한 천재들을 지지하면서 쓴 《인간지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묘사했듯이, 탐구 과정을 따라가며 길을 깨끗이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초 작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식을 탐색하고 성찰한다는 철학의 일반적 의미에서 볼 때, 철학이 해야 할 일을 적절히 묘사한 은유법이라 할 수 있다.” (p.22)
과학과 철학은 본래 하나였다
인류의 위대한 지식 탐구의 여정
그리고 이 모든 지식을 위한 철학적 질문
기원전 585년에 활발히 활동한 탈레스는 종종 ‘최초의 철학자’로 묘사되곤 한다. 현실의 본질과 근원에 관해서 질문하고, 미신에 의존하지 않고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탈레스는 신화나 시 구절보다 더 타당한 설명을 갈망하면서, 후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 만물의 구성 요소이자 원리’라고 정의했던 아르케(arche, ‘원리’)를 우리 주변에서 찾으려 했다.
탈레스가 아르케의 후보로 선택한 것은 물이었다. 탈레스 이후 최초의 ‘자연과학자(phusikoi)’로 꼽을 수 있는 인물로는 클라조메나이 출신의 아낙사고라스, 스승과 제자 관계인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이 둘은 ‘원자론자’로 알려져 있다)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이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를 ‘씨앗(seed)’이라 불렀고, 원자론자들은 이를 ‘원자(atom)’라 불렀다. 세 사람 모두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다. 아낙사고라스는 기원전 5세기 전반에, 원자론자들은 후반에 활약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의 단일 개체 즉, 일자(一者)로 수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과학자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자 하는 환원주의적 충동을 느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과학이 어떤 추론을 하든지 간에 어째서 단일하고 단순하며 포괄적인 설명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기원후 5세기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로 이러한 탐구의 흐름은 중단되었다가 16세기 중반부터 재개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과학적 진보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과학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자신들이 고대인을 완전히 배척했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천 년이 넘도록 중단되었던 고대의 업적을 다시 이어가는 중이라 여겼다.
이러한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종교는 나머지 두 가까운 탐구 분야 즉 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은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저자는 과학에서 종교가 구분되는 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무엇’에 관한 지식을 설명한 것은 주로 ‘종교적’ 믿음이었다. 종교는 자연 현상, 또는 자연을 통제하는 행위자를 달랠 수 있길 바라면서 의식, 기도, 희생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다시 ‘어떻게’에 관한 지식에 기여했다. 시간이 흘러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데 쓰이던 종교 예배나 의식이 좀 더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전문 지식으로 대체되면서, 통제의 대상이 자연에서 사회로 넘어왔다는 흥미로운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금기(taboo)’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특정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자연이나 자연의 신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필요한 요인이 아니라 여겨졌고, 이때 사회적 통제는 ‘도덕(morality)’이라는 개념의 형태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류 역사에서 아주 최근까지도 ‘어떻게’에 관한 지식이 ‘무엇’에 관한 지식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으며, ‘무엇’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은 주로 상상, 공상, 두려움, 희망 사항 같은 개념에 의존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앞에서 탈레스를 예로 든 것처럼, 인류가 ‘어떻게’를 넘어서 ‘무엇’을 알고자 노력한 것, 특히 상상이나 전통적 믿음을 배제하고서 노력한 건 기원전 6세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기원전 585년 에게해 동부 해안의 이오니아에서 활발히 활동한 탈레스는 종종 ‘최초의 철학자’로 묘사되곤 한다. 현실의 본질과 근원에 관해서 질문하고, 미신에 의존하지 않고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 탈레스가 보기에 모든 곳에 있고 필수적이며 생산적이고 성질이 변하는 물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을 구성하고 좌우하는 물질, 즉 우주의 아르케가 틀림없었다.
시대를 고려했을 때, 탈레스의 사고는 정말 기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사고가 신화나 전설, 상상이 아니라 관측과 이성에만 의존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다. 탈레스 이전에도 분명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탈레스를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연 최초의 인물로 여긴다. ‘어떻게’에 관한 지식인 기술은 수백만 년 전부터 발전해 왔지만, ‘무엇’에 관한 지식인 과학은 바로 이 시점에 탄생했다.” (p.13~15)
역사와 과학, 종교를 넘나드는 지식 탐구의 여정은 책의 끝까지 이어진다. 과학과 철학이 우주의 기원과 본질에 관해 설명하고자 하는 일련의 사고 체계라고 한다면 그 유구한 탐구의 역사는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매 순간 인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 이전에 있었던 인류 최초의 기술로부터 시작해서 범심론에 기반한 통합정보이론(IIT)이나 계산 단위를 가정한 전역 뉴런 작업공간(GNW)’ 모형 등 뇌와 마음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지식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결국 진실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또한 지식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무지를 불러오며, 이 무지는 잠재적으로 굉장히 좋은 씨앗과 굉장히 나쁜 씨앗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여전히 인류는 지식의 최전선을 넘어가는 그 지점들에서 순수한 발견의 기쁨을 느끼며 나아가고 있고 또 나아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탐구를 방해하는 열두 가지 문제는 그래서 탐구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닌 바로 그 길을 올바르게 점검하며 나아가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