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구나 어느 순간 그의 묵언과
강렬하게 부딪힐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과 『새벽: 김대중 평전』 쓴 김택근은 ‘문장의 고수’로도 불린다. 오랜 기자 활동으로 얻은 단단한 논리와 시적 정서는 수많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고 본질에 닿으나, 인간과 자연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저자의 글은 맑고 예리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한다. 김택근의 글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 글이 바로 지금의 현실을 관통한다. 수십 년간 그의 칼럼은 혐오로 얼룩진 정치를 꾸짖고, 국가적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호명했으며, 잃어버린 시절과 자연을 노래했다. 오늘날에도 유효할 뿐 아니라 몇 번이고 곱씹고 읽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가 정지아는 “김택근의 글은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라며 찬사를 보냈으며, 시인 신대철은 “누구나 어느 순간 그의 묵언과 강렬하게 부딪힐 것”이라 단언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제목인 ‘묵언’의 뜻에 대해 저자는 “말로 지은 삿된 것, 헛된 것을 부수자는 의미”라며 “말이 극도로 오염된 시대에 묵언은 정화이자 성찰”이라고 말한다. 혐오의 말로 얼룩진 시대에서 벗어나 성찰의 눈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김택근의 묵언』은 오래 두고 펼쳐볼 만한 책이다.
목차
추천사ㆍ005
프롤로그 ─ 물기 어린 시대를 건너며ㆍ010
1부 ─ 네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 김민기ㆍ026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리가 되었다ㆍ030
논을 팔다ㆍ034
‘워낭 소리’ 끊긴 곳에서 우리는ㆍ038
퇴출 간이역ㆍ042
큰 어린이, 권정생ㆍ044
미나리와 애틀랜타 누님ㆍ047
고향 그리고 느티나무ㆍ051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ㆍ054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ㆍ058
역사박물관 앞 플라타너스ㆍ062
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ㆍ066
박수근의 그림ㆍ069
억울한 죽음의 어머니ㆍ072
간도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이 살고 있다ㆍ076
푸른 눈의 증언ㆍ080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ㆍ083
네 죽음을 기억하라ㆍ087
비평의 횡포ㆍ091
정ㆍ094
2부 ─ 이름도 병이 든다
먹방이 슬프다ㆍ100
지금 누가 홀로 울고 있다ㆍ104
그대 명당을 찾는가ㆍ107
이름도 병이 든다ㆍ111
신태인 100년ㆍ115
김치를 위하여ㆍ119
봄날 살처분ㆍ123
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ㆍ125
부처님을 팔지 마라ㆍ129
폭력과 정의로운 복수ㆍ133
손의 자비ㆍ137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부를 수 없는 그대ㆍ140
봄비ㆍ144
부처의 미소ㆍ147
3부 ─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전라도 놈 김 과장ㆍ152
지식의 편싸움ㆍ156
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ㆍ160
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ㆍ164
기후 악당들ㆍ167
새만금 갯벌의 저주ㆍ171
빛의 습격ㆍ175
하루살이의 특별한 하루ㆍ178
도시의 술꾼들ㆍ182
걷는다는 것ㆍ184
도둑맞은 가난ㆍ186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ㆍ190
당신의 지식은 건강한가ㆍ194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ㆍ198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ㆍ202
민주화 역사의 기생충이 될 것인가ㆍ206
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ㆍ210
문명의 충돌ㆍ214
가을과 겨울 사이ㆍ216
4부 ─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봄날은 간다ㆍ220
하나의 달이 천 강에ㆍ224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ㆍ228
무덤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ㆍ232
중도주의, 정하룡의 마지막 당부ㆍ236
당신들이 바다를 아는가ㆍ240
서해 끝에 격렬비열도가 있다ㆍ244
지구 멸망이 아니다ㆍ248
석유동물 시대의 종말ㆍ252
소나무야 소나무야ㆍ256
박경리의 ‘생명’ㆍ259
나무에는 영혼이 있다ㆍ261
교회 문을 열어라ㆍ265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ㆍ269
지휘자 김성진의 ‘경계 허물기’ㆍ273
선승의 통곡 ‘시간의 사슬 끊기’ㆍ277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ㆍ281
빈자일등ㆍ285
검은 옷을 입은 백의민족ㆍ287
5부 ─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김대중을 ‘3김’으로 묶지 말라ㆍ292
김대중 그리고 임동원ㆍ295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ㆍ299
국민의정부 정권 재창출ㆍ303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ㆍ307
김대중 100년ㆍ311
에필로그 ─ 김택근을 만나다
“취재가 깊어야 형용사를 자를 수 있어”ㆍ316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
대통령의 필사 김택근, 통찰의 문장들
뉴스를 틀면 연일 어지러운 세태에 현기증이 난다. 진영 논리로 무장한 권력자들의 선동과 날조 그리고 폭력이 난무한다. 어느덧 우리 주변을 둘러싼 뉴미디어는 소통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듯했으나 오히려 가치 편향에 일조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소란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더 이상 말이 아닌 반성과 성찰이다. 『김택근의 묵언』의 저자 김택근은 시인이다. 1984년 잡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경향신문〉에서 30여 년간 편집기자로 일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기자로 활동하며 김택근이 얻은 별명은 ‘문장의 고수’, ‘늙지 않는 시인’이다. 객관과 논리로 치밀한 문장을 써내면서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인의 시선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적 성찰과 시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김택근의 글은 그래서 단단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경향신문〉, 〈주간경향〉, 〈월간불광〉 등에 연재한 칼럼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수십 년간 그가 쓴 칼럼은 혐오로 얼룩진 정치를 꾸짖고, 국가적 참사에 희생된 이들을 호명했으며, 잃어버린 시절과 자연을 노래했다. 기자의 눈으로는 논리의 전장을 봤지만 시인의 마음으로는 시대의 아픔을 다뤘다.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고 본질에 닿으나, 인간과 자연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저자의 글은 맑고 예리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한다. 김택근의 글을 만난 이들이 하나같이 산문의 교범으로 꼽는 이유다. 소설가 정지아는 『묵언』에 대해 “김택근의 글은 잘 벼린 칼처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한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세상에서 그의 깊고 진한 사랑은 한사코 낮은 것을, 겨우겨우 사는 것을 향한다”라고 했으며,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은 “오래전부터 김택근의 문장을 부럽게 훔쳐봤다. 읽고 또 읽었다. 베끼고 흉내 냈다”라고 고백했다.
삿되고 헛된 것을 부수는 진정한 ‘말의 힘’
난무하는 폭력에 전하는 ‘묵언’
〈경향신문〉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제목에서 가져온 ‘묵언’의 사전적 뜻은 ‘말을 하지 않음’이다.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를 말함인데,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묵언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의아하다. 책 말미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묵언의 의미에 대해 “말로 지은 삿된 것, 헛된 것을 부수자는 의미”라며 “말이 극도로 오염된 시대에 묵언은 정화이자 성찰”이라고 밝힌다. 책에서 ‘삿된 것’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폭력’이다. 저자는 우리 역사 속에 오랜 시간 내재한 광범한 폭력의 줄기와 시대적 현상을 짚어낸다. 폭력은 학창 시절 “손바닥으로 얼굴만 가격하는 교사”와 같이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도 발견되며(2부 「폭력과 정의로운 복수」), 노동자들이 “맞아서, 떨어져서, 끼여서, 치여서” 죽는 수많은 하청업체에서도 발견된다(1부 「억울한 죽음의 어머니」). “교회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불태웠던” 제암리 학살과 같은 국가적 폭력도 있다(1부 「푸른 눈의 증언」).
더 나아가 저자의 시선은 지구를 함께 공유하는 동식물과 환경에 닿는다. 산과 들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의 안식처를 허무는 생태계 훼손은 분명 인간의 폭력에 의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폭력의 혐의를 몇몇 정적에 두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자 한다. 폭력의 역사와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개인, 집단, 사회 그리고 인간에게는 함께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의 상처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모두가 아파할 때 비로소 폭력을 추방할 수 있다.” 폭력의 원인과 대상을 정확히 지목하되 보듬는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 것, “오염된 말과” “삿된 것”을 물리는 『묵언』이 향하는 지점이자,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연원이다.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
상실의 시대에 던지는 위로
『묵언』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 「네 죽음을 기억하라」, 2부 「이름도 병이 든다」에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소중한 우리의 지난 가치들과 현실의 세태를 주로 다루며 3부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와 4부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에서는 우리 정치에 깃든 삿됨을 말하고 평화와 생태에 주목한다. 5부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은 저자가 인연을 맺은 정치인 김대중과 관련된 글을 추려 실은 것이다.
저자 김택근은 정읍 신태인 출신으로 이촌향도와 도시화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이다. 그래서 책 곳곳에는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잃어버린 풍경과 덕목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다. 미국에서 터를 잡기 위해 떠난 누이와 매형을 대신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손녀를 키운 어머니의 일화와(1부 「미나리와 애틀랜타 누님」), 그 시절 “지아비요, 자식”이자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아버지의 논을 팔던 순간을 다룬 이야기(1부 「논을 팔다」)는 읽는 이를 속절없이 향수에 젖게 만든다. 저자가 젊은 날을 보낸 달동네 ‘백사마을’ 이야기 역시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널빤지로 가난을 가렸지만 이내 모두 드러났”던, “과거 자랑을 하면 현실이 더욱 초라해졌”던 달동네 공동체의 이야기(4부 「달동네에서 달을 본 적 있는가」)는 고향을 떠나 “수도꼭지 한번 빨아보자며 서울로 진격”한 그 시절 모든 이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개인사적 이야기만 불러내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진정한 어른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가수 김민기, 김장하, 백기완, 권정생, 성철 스님 등 “세상을 편가르”기 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았던 이들을 추억하고 추모한다. 잃어버린 가치들과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묵언』은 그래서 지나온 시절의 만가(挽歌)가 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토닥여 준다. 삿된 것들의 난무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즉 무명씨에게 건네는 글에는 낫낫한 진심이 담겼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에게 위로받을 수 없고 자신을 쓰다듬어 줄 수 없다”, “함께 있어서 내일이 있다”라고 말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보통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넨다. 잃어버린 시절을 종종 떠올리는 이들이라면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면 『묵언』이 조용히 내미는 손길을 맞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그를 부른다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김택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김대중 자서전』을, 2년간 『새벽: 김대중 평전』을 썼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8년간 ‘김대중 글 감옥’에 갇혀”있었다. 5부 「김대중의 마지막 눈물」에 실린 여섯 편의 글은 단순히 김대중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시의에 의해 쓴 글들이다. 위태로운 민주주의 앞에 서서(「김대중의 마지막 눈물」),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의 요건을 살피기 위해(「국민의정부 정권 재창출」) 그를 불러냈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또다시 그의 이름을 필요로 하진 않는지 김택근의 글을 통해 되새겨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