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의식의 언어, 유목민의 언어, 욕망하는 언어
- 유태안 시집 『몽타주로 만든 공』
200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춘천에서 줄곧 창작 및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유태안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몽타주로 만든 공』(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시선 86번으로 나왔다.
유태안 시인은 지금까지 펴낸 세 권의 시집―『은유로 나는 고추잠자리』(2016), 『아이러니 염소』(2019), 『말의 사다리 오르기』(2020)―을 통해 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의식 너머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서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데, 이번 시집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시인의 말
독자에게 ― 편집 혹은 몽타주
1부. 몽타주로 만든 공
몽타주 ― 몽타주로 만든 공│몽타주 ― 함정 피해 가기│몽타주 ― 하루의 증언│몽타주 ― 파리지옥 테이프│몽타주 ― 비둘기에게 모이 주지 마세요│몽타주 ― 잃어버린 입맛│몽타주 ― 연대 책임│몽타주 ― 길 안내│몽타주 ― 발음 교정│몽타주 ― 얼룩과 앙금│몽타주 ― 모피방│몽타주 ― 모임│몽타주 ― 검진│몽타주 ― 실종│몽타주 ― 참새와 나 그리고│몽타주 ― 다른 그림 찾기│몽타주 ― 두 개의 선물│몽타주 ― 구멍들
2부. 몽타주 씨앗을 찾아서
몽타주 ― 응시│몽타주 ― 환호성 골짜기│몽타주 ― 감지 센서│몽타주 ― 지퍼를 내리고│몽타주 ― 저격수는 노출되지 않는다│몽타주 ― 돌아보다│몽타주 ― 반추│몽타주 ― 바다거북│몽타주 ― 이야기 거북│몽타주 ― 노을 편지│몽타주 ― 씨앗을 찾아서│몽타주 ― 연하장 보내기│몽타주 ― 그림자 밟기 놀이│몽타주 ― 허수아비와 오즈의 마법사│몽타주 ― 어디로 날아갔을까│몽타주 ― 다이빙│몽타주 ― 수석, 그 물빛 꿈│몽타주 ― 대기 중
3부. 자전에서 나방 찾기
몽타주 ― 꽃병│몽타주 ― 꿈의 경계에서│몽타주 ― 유레카│몽타주 ― 세 相 읽기│몽타주 ― 반죽으로 놀기│몽타주 ― 이면│몽타주 ― 사유의 톱밥│몽타주 ― 겨울 아침 선물│몽타주 ― 머리 감는 사람│몽타주 ― 열쇠 구멍 엿보기│몽타주 ― 마음 사전 명명법│몽타주 ― 자전에서 나방 찾기│주사위 놀이│몽타주 ― 선물│몽타주 ― 수석, 그 물빛 약속│몽타주 ― 사이렌│몽타주 ― 도착한 빛│은유로 나는 고추잠자리│원단│몽타주 ― 연기
4부. 市에서 詩까지 걸어가기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이식│市에서 詩까지 걸어가기│여름 건너기│스스로 그러하다│몽타주 ― 꽃병이 있던 자리│몽타주 ― 냉장고 우는 소리│몽타주 ― 열 시의 변명│몽타주 ― 1917 혹은│몽타주 ― 고바우 영감│몽타주 ― 유기농 환상│구름을 건너는 산책│몽타주 ― 입춘방│몽타주 ― 분노 충천 중│숫자점 잇기 그림│엘리베이터 거울│날개 이야기의 날개를 달아 줘│역할극
해설 _ 파편화된 세계를 대하는 미적 방식 │ 오민석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이번 시집에 대해 유태안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고 필요한 자극만 받아들인다. 이를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려고 집중하기 때문에 놓치는 현상도 있는데 이를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극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선별한 자극들에 의미(개연성, 상관관계, 해석, 관계성 등)를 부여한다. 이를 ‘해석’이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한마디로 편집이라 한다./ 당연한 경험들에 대한 ‘의심(호기심, 의문, 질문)’에서 편집 과정이 시작된다./ 나는 이러한 편집 과정을 몽타주라고 부른다. 이 시집은 몽타주의 기록들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교수는 유태안의 세 번째 시집 『말의 사다리 오르기』를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유태안 시인은 규칙적 리듬이나 단어의 공간적 배치 같은 형식을 뭉개버림으로써 문장이 아무 곳으로나 자유롭게 흐르도록 한다. 또한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앞뒤 문장 사이의 단절을 허락하지 않고 그것들을 겹치게 혹은 섞이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서 한 의미는 늘 다른 의미와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형식적 배치야말로 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그가 볼 때, 이 세계에 명료한 의미나 개념, 혹은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의미와 가치들은 혼성적이며 다층적이고 파편적이다.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명쾌하고도 단순한 서사(narrative)란 없다. ‘문장의 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상징계의 벼랑이고, 주체가 실재계로 건너뛰는 지점이다. 그 극점에서 ‘어디로 가긴 가야 할 텐데’, ‘날개의 축복은 너무 짧’다. 실재계로 진입하지 않는 한, 이 세계에 동질성과 통일성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할 때 예술도 없다. 예술은 불가능의 지점에서 가능성을 꿈꾼다. 주체가 실재계로 넘어가면서 ‘금방 식어버’리는 ‘노을’의 운명을 견딜 때, 빛나는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시집 『몽타주로 만든 공』은 “파편화된 세계를 대하는 미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렇게 평한다.
“유태안은 이 시집에서 몽타주 기법을 과감히 선택한다. 그가 몽타주를 지배적인 장치로 선택할 때 자동으로 배제되거나 해체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가령 의미의 통일성, 구조적 동질성, 의식/무의식의 이분법, 시간의 선형적 흐름, 논리적 담론 같은 것들이다. 그는 세계의 통일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동일성의 기획을 의심한다. 그가 볼 때, 세계는 이질적이며 모순적인 것들의 섞임과 흩뿌려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어떤 거대 담론도 이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이어체(異語體, heteroglot)를 동일성의 시스템으로 통분할 수 없다. 세계는 순결한 동일성의 시선에 얼룩진 혼종성(hybridity)으로 대답한다. 의미의 통일성으로 세계를 가두려 할 때, 세계는 폭발하는 다양성으로 응수한다. 의식의 명령이 있는 곳엔 항상 무의식의 저항이 있다. 세계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도 자유자재로 팽창하거나 축소하는 몸이다. 몽타주는 이렇게 로고스와 시스템을 거부하는 미적 기법이자 정치적 행위이다.”
“몽타주는 늘 시스템의 그물을 빠져나가 시스템을 무력화한다. 시스템이 의식의 언어라면, 몽타주는 무의식의 언어이고, 시스템이 정주(定住)의 언어라면, 몽타주는 유목민의 언어이며, 시스템이 이성의 언어라면 몽타주는 욕망의 언어이다. 시스템이 모든 것들을 영토화한다면, 몽타주는 탈영토화한다. 몽타주는 무의식과 욕망과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탈영토화하는 유목민의 언어이다.”
귀를 막고 들어라 눈을 감고 보아라 반인반수半人半獸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려면 도망쳐라
편견과 통념의 유혹을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라 하늘이 내려오는 호수에 안개가 덮이거든 난파된 뱃사람들의 뱃노래가 들리거든
안개를 헤치고 노를 저어라 위험한 언덕을 향해 즐거이 가라 진실은 거기에 있다 태초 어둠의 바닥에 닿는 두려움이 죽음이다
사람과 새들이 하나로 사는 마을 마음으로 열고 들어가라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유혹에서 도망쳐라 내 귀에 끝없이 소리치는 유혹에서 도망쳐라
― 「몽타주―사이렌」 전문
“사이렌은 아름다움을 가장한 죽음이다. 그것은 회오리바람처럼 강력한 중심으로 뱃사람들을 부른다. 그것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유혹에서 도망’치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몽타주는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원심력의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나쁜 중심이 해체된다. 시는 ‘귀를 막고 들’으며 ‘눈을 감고 보’는 역설의 언어이다. 그것은 유혹 속에서 유혹을 거부하는 모순의 언어이다. 그것은 중심의 강한 유혹에 휩쓸리면서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 ‘위험한 언덕’을 향하는 모험의 언어이다. 강력한 중심을 거부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는 ‘어둠의 바닥에 닿는 두려움’을 거부하고 세계를 위험한 언덕에 노출하는 언어이다. 중심이 없는 모든 것은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진리를 향해 있다. 몽타주가 흩뿌린 기표들 속에 진리가 깨진 거울 조각들처럼 반짝인다. 이 시집은 세계가 그런 조각들의 무수한 나열 속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연히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들이지만, 그래도 끝끝내 이 세계에 대한 탐구와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질주하는 내 삶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뒤를 돌아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시인의 말
뒷문을 열고 곰팡이 핀 바람의 시간을 꺼내 옵니다
뒷문을 열고 어미 닭이 놓쳐 버린 지네 숨어들어 간 벽의 틈을 만납니다
뒷문을 열고 앞마당에선 자라지 못한 이끼의 바위들을 만납니다
뒷문을 열고 달에 올라탄 기러기들의 행렬을 만납니다
뒷문을 열고 풀숲에 떨어진 알밤을 줍습니다
뒷문을 열고 뒷문이 닫혀 있을 때만 꿈꾸는 반란을 만납니다
평소에는 열려 있지 않은 뒤란으로 가는 문을 열고 오래 장독에 담겨 발효되었을 된장 같은 시간을 퍼 담았습니다
2024년 가을
유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