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오키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일본 서점 대상’,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 등 일본 유수 문학상을 휩쓴 히가시야마 아키라 작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신작. 《죄의 끝》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받은 《류》 이후 1년 만에 나온 소설로, 소행성 충돌로 모든 문명이 파괴된 먼 미래의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간 직후,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적인 정취를 잃지 않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제11회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했다.
《죄의 끝》은 모든 문명이 붕괴한 세상을 배경으로, 인류가 절대적이라 믿어왔던 선악의 기준 속에서 ‘구원자’로 군림한 한 소년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살인자였던 소년이 어떻게 파멸한 세계에서 구원자로 추앙받게 되었는가?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구원자의 탄생을 지켜보며, 새로운 ‘희망과 구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1장
피아 헤일런
14년형 로얄엔필드
니므롯 롱크
몬드 솔라
우드로 헤일런
대니 레번워스
2장
백성서파
도서관에서
메사추세츠주
폐허의 마을
판잣집의 인터뷰
화이트라이더
너새니얼의 계단
호수 위를 걷다: 또는 자기 정당화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유다의 키스
에필로그
감사의 말을 전하며
옮긴이의 말
인용문헌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그것은 먹지 않으면 먹힐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처참한 세상 속 유일한 ‘구원자’가 된 소년
2173년,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며 그 파편들로 전 세계는 초토화되고 만다. 살아남은 지역을 캔디선으로 구분하여 관리하게 된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인해 캔디선 바깥의 사람들은 굶어 죽게 된다. 결국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을 하게 된다. 살기 위해 식인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죄의식을 씻기 위해 신성한 존재에게 구원받길 원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구원할 식인의 신, ‘블랙라이더’ 너새니얼 헤일런이 탄생하게 된다.
한편, 멸망 이후 캔디선 내부에서 부흥하게 된 백성서파 교회는 혼란한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구세계의 범죄자들을 죽이기 위해 킬러 ‘화이트라이더’를 캔디선 바깥으로 파견한다. 백성서파 교회의 네이선 발라드는, 살해 명단에 오른 너새니얼 헤일런을 화이트라이더와 뒤쫓게 된다. 하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캔디선 안에서는 끔찍한 살해범이라 알려진 너새니얼이 캔디선 바깥에서는 인류의 구원자로 칭송받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그에 관한 생각이 점차 변모하게 되는데…….
과연 너새니얼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러 지상에 도래한 ‘신의 사자’일까? 아니면 괴이한 논리를 펼치며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범’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의 마음에 악마가 깃들기도 하지만, 악마의 마음에 사람이 깃들 때도 있지.”
선악의 절대적 기준은 과연 존재하는가?
《죄의 끝》은 너새니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전기를 따라가는 인물은 캔디선 내부에서 아사와 동사의 걱정 없이, 선악을 쉽게 재단하며 살아왔던 ‘네이선’이다. 네이선은 일개 범죄자에 불과했던 너새니얼이 어떻게 바깥 세계의 구원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칭송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네이선은 처음으로 자신을 두르고 있던 알을 깨고 나와 캔디선 바깥의 현실을 똑똑히 목격하게 된다. 악한 범죄자를 처단하는 일이 ‘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신념은 곧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죄의 끝》은 멸망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주인공이 아닌,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관찰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네이선에게 깊이 이입하게 만든다. 네이선의 어딘지 투명하고 이성적인 시선은, 독자를 《죄의 끝》의 세계로 깊이 인도한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죄의 끝》이 현시대를 비추는 초상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네이선이 하는 고민은 곧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는 과연 불변의 가치인가?’, ‘선악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고민은 하나의 물음을 낳는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멸망한 세계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과 사랑
유려하고 따뜻한 언어로 그려낸 낭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묵시록
《죄의 끝》은 성서가 떠오르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서구 문명의 몰락’이라는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굶주린 사람들에게 고기를 나눠주어 500명의 배를 채웠다.’, ‘1,571개에 달하는 돌계단을 혼자 쌓았다.’와 같은 너새니얼을 둘러싼 전설은 예수가 베푼 기적과 비슷하다. 하지만 《죄의 끝》은 완벽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쓰이지는 않았다. 종교적 이야기는 단지 멸망한 세계 위에 새로운 구원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 쓰였다. 평범한 인간인 너새니얼이 어떻게 파괴된 세계의 신이 되었는지를 그려내며, 가치관이 전복되는 현시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전염되고 확산하는 혐오, 점점 모호해지는 선악의 경계, 차별적인 사회 구조.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시대. 좋은 마음으로 행한 선의가 때때로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는 세상이다. 작품 속 문명이 파괴된 세상은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흔들리는 우리의 세상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이 황폐한 황야 속에도 구원이 존재할까?
살아남기 위해 식인을 한 이들에게 너새니얼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을 먹었다면 두 사람을 구하라.” ‘구원과 희망’은 대단치 않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모이고 모여, 작은 구원의 불씨가 되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