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탈리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근대 이탈리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몰락을 냉철하게 지켜보는 한 ‘르네상스맨’의 이야기
“우리는 표범이자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하여 올 자들은 자칼과 하이에나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표범, 자칼, 양 모두는 여전히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전해질 작가의 천재성과 떨림이 담긴 작품. 《뉴욕타임스》
▶ 걸작이다. 위대한 전통과 장엄한 양식으로 쓰인 걸작 소설. 《뉴스위크》
▶ 장엄하고 멜랑콜리하며 아름다운 소설. 《뉴요커》
이탈리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 소설’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탈리아의 서점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 소설의 배경인 시칠리아에서라면 어느 서점에서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이 책은, 2025년에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될 예정이기도 하다. 작가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그 기원이 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귀족인 람페두사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 이 소설 단 한 작품을 집필한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후 이 장편 소설은 이탈리아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현재까지도 이탈리아와 전 세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목차
1장 7
2장 65
3장 117
4장 171
5장 237
6장 267
7장 301
8장 321
작품 해설 351
작가 연보 361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여전히 수많은 공국으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를 공화국으로 통일하고자 가리발디 혁명군이 전투를 일으킨 사건을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 하는데, 『표범』은 이 시기를 통과하는 각계 각층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소설은 시칠리아의 대 귀족 가문의 수장이자 영주인 돈 파브리초 살리나의 영지에서 시작된다. 그는 호화로운 살리나 궁에서 아내 스텔라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신사이자 지적인 천문학자인 동시에, 귀족치고는 세속적이고 감각적이며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던 그는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상황은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가리발디와 그의 군대가 이탈리아 남단의 섬 시칠리아에 상륙할 시기, 이제 이곳에서는 신(新) 계급, 즉 부르주아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살리나는 자신이 아끼는 진취적이고 젊은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가 가리발디군에 합류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탄크레디는 순수한 열정으로 혁명에 참가했으나, 그 이후론 부를 좇으며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탄크레디는 살리나의 딸 콘체타와 약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였으나, 전장에서 돌아온 후엔 교활하고 야심찬 부르주아이자 신흥 부호인 돈 세다라의 아름다운 딸 안젤리카에게 빠져든다. 살리나는 자신의 딸이 미모로든 재산으로든 탄크레디의 야심과 미래를 만족시켜줄 수 없음을 꿰뚫어보고, 가문의 미래인 탄크레디에게 자유를 주기로 한다. 그리고, 시칠리아를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하는 건을 두고 시칠리아인들이 투표할 때가 왔다. 이제, 이른바 ‘국민’이지만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세상이 찾아온다. 살리나는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의 도래를 품위 있게 맞이하며 죽음의 그늘로 물러선다.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예에게서 탄생한
근대 이탈리아 최초의 베스트셀러
1960년대, 람페두사 가문과 마찬가지로 그 기원이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탈리아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인 영화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버트 랭카스터, 알랭 들롱,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캐스팅하여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196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아직까지도 전 세계의 시네마테크에서 비스콘티의 작품들을 상영할 때 가장 사랑받는 걸작이다. 이탈리아 귀족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비스콘티는 시칠리아에서 이 작품을 촬영할 때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고루 신경을 썼고, 심지어 화면에 나오지 않을 서랍장 속 같은 곳까지도 레이스 손수건들을 빼곡히 채워 넣으며 그 시절의 아우라를 재현해 냈다.
이 소설의 이탈리아어 제목 ‘일 가토파르도(Il gattopardo)’는 원래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북단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맹수인 서벌(serval)을 뜻한다. 이 단어가 다소 낯선 탓에, 이탈리아 밖에서 이 책의 제목은 주로 생김새가 비슷하고 더 잘 알려진 ‘표범’으로 대체되었다. ‘가토파르도(서벌)’는 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람페두사 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인데, 이 섬을 근거지로 하는 람페두사 가문의 문장에 이것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선 이 문장이 살리나 가문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표범』은 람페두사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큼 작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20여 년 동안, 천문학자였던 증조부 줄리오 파브리초 디 람페두사를 모델로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의 집안 이야기들을 허구로 재구성한 『표범』을 완성한 것이다.
『표범』은 출간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5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 『표범』으로 람페두사는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되었으며, 이 책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인해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 소설 중 꼭 읽어야 할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람페두사는 소설의 성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1954년부터 1956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 원고를 중요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출간을 거절당했고 그가 사망하고 일 년 뒤에야 펠트리넬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냉철하게 지켜보는 한 귀족이자 지성인에 관한 노스탤지어 가득한 대서사시
『표범』은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사적인 사건이 중첩되어 전개된다.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 사건의 배경이 되며,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이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소설은 1860년 5월 가리발디가 천인의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시칠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시기는 앞서 말한 ‘리소르지멘토’, 즉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던 시기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일곱 개의 공국과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대부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시칠리아는 양시칠리아 왕국에 속해 있으며,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가리발디의 시칠리아 상륙 이후, 부르봉 왕조는 곧 역사에서 사라지고 시칠리아는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돈 파브리초는 시칠리아의 귀족 가문 중에서도 국왕과 알현을 할 정도로 중요한 가문의 영주로, 일견 괴팍하고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사색하고 성찰하기를 좋아하는 돈 파브리초는 격변의 시대에 자신의 계급이 몰락을 냉정하게 예감하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부상하며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새로운 사회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세계의 죽음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구체제를 보존하거나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위해 투쟁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돈 파브리초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현재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조카 탄크레디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결국 세상의 변화는 형식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돈 파브리초는 형식적인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권력과 영광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옛 주인의 자리를 새 주인이 차지할 뿐이다. 하지만 항상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사람들, 주인과 하인이 있다. 하인은 언제나 하인일 뿐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망설임이 없고 도덕심이 결여된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시선에는 귀족에 대한 자부심과 체념과 회의가 담겨 있고 이것은 그를 우울로 이끈다.
표범의 자리를 대체할 자칼과 하이에나의 시대
돈 파브리초가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탄크레디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는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가리발디가 상륙했을 때는 가리발디 의용군에 참가하지만, 곧 사르데냐 왕국의 군인이 된다. 그는 특히 정치적 야심을 위해 부유한 안젤리카 세다라와 결혼하면서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지의 결합과 연대를 상징한다. 안젤리카의 아버지 돈 칼로제로는 격변하는 시대에 편승해서, 무능력한 귀족들을 이용해 벼락부자가 된 재빠르고 유능한 인물이다. 그는 명실공히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돈 파브리초의 말에 따르면 귀족인 “표범”이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할 자칼이자 하이에나이다. 미래는 바로 이런 ‘세다라’들의 것이다. 돈 파브리초는 이 새로운 계급에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들 역시 탐욕스럽고 편협하고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파브리초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며 탄크레디와 안젤리카의 결혼을 적극 돕는다. 실제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사랑과 계산을 동시에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 불길과 불꽃은 일 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삼십 년은 그 재로 살아갈 뿐이다. 사랑은 관능적인 감각, 게으른 환상, 관습, 계산에 불과하며,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이어질 뿐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리소르지멘토’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담겨 있기도 하다. 돈 파브리초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합병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투표 결과를 조작함으로써 신생 왕국은 ‘신뢰’를 잃었고, 통일 이전부터 존재하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단절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현재에도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 특히 시칠리아 사람들이 게으르고 굴종적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5장에 등장하는 피로네 신부의 귀향은 통일 후 시칠리아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 준다.
『표범』은 문학이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며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성찰한다. 람페두사는 시칠리아라는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며 열정적인 공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 아름다움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무기력과 비애를 깊이 감추고 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제 사라져갈 귀족의 세계와 그 문화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역시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표범』은 빛과 그림자처럼 아름다움과 쇠락, 삶과 죽음, 전통과 변화, 위계질서와 계급 갈등이 교차하는 모습을 그렸다. 또한 시대를 가로질러 여전히 유효한 세상과 삶의 의미도 함께 읽어낼 수 있다. “모든 게 그대로 유지되길 원하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작품의 테마를 담은 이 역설적인 문장은 시간의 흐름, 변화, 죽음에서 덧없음을 느끼는 가운데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괴로움이 깔린 삶속에서 어떻게 진리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