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광수와 김동인, 염상섭을
‘서사학’으로 새롭게 읽다
국문학자 강헌국의 연구서 『근대 서사의 행방』을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근대 서사의 행방』은 한국 근대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세 작가,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의 소설을 ‘서사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서이다. 시인으로 등단해 『다시 쓸쓸한 날에』 등의 시집을 펴내기도 한 강헌국은 그 이력을 살려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자신의 본령인 ‘소설 연구자’로서의 길을 깊게 파고들기 위해 시쓰는 일을 접고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그후 강헌국은 한국소설의 서사 구조와 담론 특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 바로 『근대 서사의 행방』이다. 강헌국은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경향이 주제론에 편중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소설에서 주제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서사론적으로 접근한다. 그렇다면 강헌국은 왜 수많은 근대 소설가 중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의 소설을 연구의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일까. 이에 대해 강헌국은 세 작가가 근대소설사 초창기를 이끈 주역이며, 이들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 소설가의 작품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근대 서사의 행방』은 그간의 연구에서 등한시되어온 서사론적이고 방법론적인 분석을 통해 작품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목차
머리말
서론
제1부 이광수, 상상의 서사화
1. 상상의 발견
2. 욕망과 환상
3. 계몽과 연애, 그 불편한 관계에대하여
4. 민족 계몽의 이론과 실천
5. 인류애의 이상과 현실
6. 기억의 연금술
제2부 김동인, 지각의 서사화
1. 반재현론反再現論의 의미
2. 지각의 현상학
3. 액자식 구성의 가능성과 한계
4. 탈역사적 역사소설
제3부 염상섭, 개념의 서사화
1. 새로운 소설을 향하여
2. 재현과 논설
3. 음모와 기만
4. 모순과 지양
5. 시대적 당위와 소설적 한계
6. 통속화의 경로
결론 방법론의 계보학을 위하여
부록 이상, 방법의 서사화
돈, 성, 그리고 사랑
참고문헌
색인
발표 지면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상상과 지각과 개념은 문학을 성립시키는 기본 요소들이다.
문학의 일반적 정의는 인식과 형상의 결합인데
개념은 인식의 단서가 되고 지각은 형상의 조건이 된다.” _본문에서
강헌국은 근대적 개인 주체로서 이광수와 김동인과 염상섭이 취한 태도가 각 소설의 주제 면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이광수가 ‘계몽적 이상주의’를 지향했다면 김동인은 ‘예술적 이상주의’를, 염상섭은 ‘사실주의’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제에 대한 각기 다른 지향이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강헌국이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사학적으로 소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상상’과 ‘지각’, 그리고 ‘개념’이다. 강헌국은 세 요소가 소설의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 풍부한 인용문을 통해 차근히 설명한다. 1부에서는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 격인 이광수의 소설이 주인공이다. 이광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소설에 풀어내는 대신 상상을 통해 서사를 전개했다. 그의 소설은 그가 처한 식민지 조국이라는 비루한 현실에서 자신이 소망하고 기대한 바를 구현하기 위한 상상의 장이었다. 그렇기에 강헌국은 이광수의 소설을 ‘상상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2부에서는 재일 조선 유학생들이 벌인 ‘신문학운동’의 시초이자 평론가로도 활동한 김동인의 소설을 다룬다. 작가가 소설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여긴 김동인은 자신이 인지한 범위 내에서 인물이 움직이고 기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때문에 김동인의 소설은 작가의 지각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전개될 수 있었다. 강헌국은 김동인의 이런 특징을 ‘지각의 서사화’로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염상섭을 다룬다. 앞서 분석한 이광수, 김동인에 비해 뒤늦게 창작을 시작한 염상섭은 자신의 소설이 이전에 발표된 소설들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의지는 그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소설을 창작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향을 소설 안에서 이뤄내고자 한 이광수와도, 자신이 지각한 범위 내에서 소설을 창작하던 김동인과도 구분되는 소설을 집필했다. 그는 소설에서 과장과 가공을 배제하고 현실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염상섭은 현실의 객관적 파악을 위해 소설에 논설을 전면적으로 사용했는데, 논설은 추상적인 논리로 전개되기 때문에 때로 세속적인 현실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논설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강헌국은 염상섭의 이러한 특징을 ‘개념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이처럼 강헌국은 각 소설가의 서사론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그 특성에 맞는 개념을 제시하며 연구를 이끌어나간다. 그는 작가가 어떤 주제를 구현하고자 했는지, 주제와 방법론이 작가의 삶과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는지 섬세하게 살핀다. 이런 연구 방식은 작가론적 방법과 작품론적 방법 모두를 포괄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진 서사론적인 뼈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이기에 기존의 연구들을 보완한다는 의미가 있다.
서사론을 뿌리로,
한국 근대소설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다
강헌국은 세 소설가를 분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록을 통해 이상을 다룬다. 그는 앞의 세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는 이상의 서사를 ‘방법의 서사화’로 명명한다. 강헌국은 이상의 「날개」를 주요한 예시로 들며 이상이 위트와 패러독스, 아이러니와 같은 ‘포우즈’를 사용하여 자신을 위조하고 그 방법을 소설에서도 구현한다고 분석한다. 강헌국은 이상이 다른 세 소설가보다 한 세대 뒤의 소설가이지만 그의 서사가 소설사에서 별도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의 서사를 추가로 다루는 것이 소설사 연구에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강헌국이 소설사의 계보를 주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헌국의 연구가 최종적으로는 ‘방법론적 계보학’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서사의 행방』에서 사용된 개념들은 후세대 소설가들의 서사를 분석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김동리와 황순원의 소설은 상상이 서사를 추진하기에 ‘상상의 서사화’로, 감각 묘사가 두드러지는 박태원의 소설이나 소설의 배경을 일상에 한정시키는 이태준의 소설은 ‘지각의 서사화’로 분석할 수 있다. 사회주의 이념을 소설로 형상화한 이기영과 김남천의 소설들은 ‘개념의 서사화’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상상, 지각, 개념 중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서사를 형성한 작품들, 또는 이상처럼 별도의 서사 계보를 형성한 작가들을 연구해볼 수도 있다. 강헌국은 한국소설의 서사학적 면모를 분석하기 위한 기틀을 세움으로써 기존의 ‘주제론적 계보’와는 다른 ‘방법론적 계보’의 형성을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소설의 빛나는 출발점이다. 이번 연구서를 통해 한국소설의 출발점을 다시 조명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소설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다 안다고 여겨온 소설가들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여 더욱 깊이 있는 독서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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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와 김동인과 염상섭은 그들에 관한 선행 연구가 방대하게 누적된 상태여서 연구 대상으로서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이 들러 샅샅이 살펴보고 떠난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의미의 면에서 계속 증식하고 갱신되는 미결정적 현재성이 문학 본문의 본질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설령 많이 연구된 대상이라도 새로운 논의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_「머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