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내가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했다.”
에세이, 칼럼, 비평, 회고록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비비언 고닉의 초기작 중 한 권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가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기록이자 저자 자신의 또 다른 자기서사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새로운 저널리즘, 그리고 르포문학의 탄생을 알린 역작이다. 이 책은 비비언 고닉이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며 전설적인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1977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20년 새로운 서문과 함께 복간되었다.
유대 이민자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라는 자신의 위치성을 평생 예리하게 인식해온 고닉에게 공산주의자들을 둘러싼 낙인과 대상화는 그에게 단단히 얹혀 있는 경험이었다. 이 체증을 책으로 풀어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과거 공산주의자로 존재했던 이들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피와 살을 가진 살아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처참하고 비루한 삶의 조건 속에서 가장 경이로운 열정을 피워낸 존재들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았다. 그들이 품었던 이 비전을 이해할 때, 공산주의가 남긴 실패와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핵심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굳건한 믿음이다.
‘로맨스’란 이런 태도를 반영하는 표현 양식으로, 고닉은 인터뷰이들의 구술사와 동시에 자기서사를 엮어내며 로맨스적 관점의 풍부함을 보여준다.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난폭한 반공주의 문헌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발굴해나가는 보기 드문 작업이며, 체제와 이념의 이름으로 가려졌던 ‘공산주의자’ 개개인에 대한 책이다. 나아가 이 기록은 ‘조직’의 토대와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러 급진적 사회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목차
서문 · 9
1장 들어가며 · 25
2장 그들은 사방에서 왔다:
모든 종류의 시작 · 67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 · 73
세라 고든 / 벤 살츠먼 / 셀마 가딘스키
조 프리센 / 벨 로스먼 / 폴 레빈슨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람 · 120
딕 니코프스키
미국 포퓰리스트 · 130
윌 반스 / 블로섬 시드 / 짐 홀브룩
공산주의와 공산당이 의미하는 것 · 163
메이슨 구드 / 아서 체슬러 / 메리언 모란 / 다이애나 마이클스
3장 살아내기:
비전에서 도그마로, 그리고 다시 반보 후퇴 · 199
일상 활동의 범상함과 임박한 혁명 · 204
세라 고든 / 셀마 가딘스키 / 블로섬 시드
공산당 세상의 오롯함 · 208
디나 샤피로 / 아서 체슬러 / 노마 레이먼드 / 에릭 란제티
당 소속 노동조합원 · 229
매기 매코널
양면성: 갈등을 해체하는 ‘오롯함’ 그 아래 · 238
에스더 앨런 / 메이슨 구드 / 루 굿스타인
현장으로 · 263
칼 밀렌스 / 모리 새크먼
지하 · 283
네티 포신 / 휴 암스트롱 / 빌 체이킨
우리가 서로한테 했던 짓 · 301
샘 러셀 / 소피 체슬러 / 팀 켈리
규율 잡힌 혁명당의 유혹 · 323
래리 도허티 / 리카르도 가르시아
4장 그들은 사방으로 돌아갔다:
갖가지 후일담 · 337
당이 없는 정치는 상상할 수 없어요 · 343
제롬 린저 / 그레이스 랭 / 데이비드 로스
반공주의자로 돌아선 공산당원 · 359
맥스 비터먼
과거의 상처 · 378
아널드 리치먼 / 베아 리치먼
“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아요” · 386
모리스 실버먼 / 칼 피터스 / 데이브 아베타
“공산주의는 여정의 일부였어요” · 400
다이앤 빈슨
“인간이 경험해볼 수 있는 최고의 인생이었어요” · 411
앤서니 에렌프리스
체현된 정치적 감정 · 425
보리스 에델
“공산당원이 어떤 존재인지 내 알려드리지” · 434
에릭 란제티
5장 나가며 · 447
감사의 말 · 465
추천의 글 / 장석준 · 467
횃불 잇기: 미국공산당이라는 끝나지 않은 역사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맙소사,
공산주의자들이 겪었던 걸 지금 내가 겪고 있구나!’
그다음에 든 생각은 책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100만 명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내면의 불빛
그들 안에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안에도 있다
“나는 내가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했다.” 에세이, 칼럼, 비평, 회고록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비비언 고닉의 초기작 중 한 권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가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비비언 고닉은 타협 없이 밀어붙인 신랄한 자기서사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관점을 구축하는 문제에 착목해 써내려간 일인칭 스타일의 비평으로 한국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기록이자 저자 자신의 또 다른 자기서사인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새로운 저널리즘, 그리고 르포문학의 탄생을 알린 역작이다. 이 책은 비비언 고닉이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며 전설적인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1977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20년 새로운 서문과 함께 복간되었다. 유대 이민자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라는 자신의 위치성을 평생 예리하게 인식해온 고닉에게 공산주의자들을 둘러싼 낙인과 대상화는 그에게 단단히 얹혀 있는 경험이었다.
이 체증을 책으로 풀어내기로 마음먹은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과거 공산주의자로 존재했던 이들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그리하여 고닉은 “피와 살을 가진 살아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처참하고 비루한 삶의 조건 속에서 가장 경이로운 열정을 피워낸 존재들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는다. 그들이 품었던 이 비전을 이해할 때, 공산주의가 남긴 실패와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핵심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굳건한 믿음이다.
‘로맨스’란 이런 태도를 반영하는 표현 양식으로, 고닉은 인터뷰이들의 구술사와 동시에 자기서사를 엮어내며 로맨스적 관점의 풍부함을 보여준다. 90여 년 전 뉴욕 브롱크스의 좌파 노동계급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틈새에서 쭉 성장하고 살아온 저자에게 공산주의는 페미니즘만큼이나 중요한 뿌리이자 자원이다. 그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일종의 낙인으로 전락한, 즉 더 이상 경청할 가치가 없는 낡고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로 여겨지게 된 시대 상황 속에서 오히려 책을 쓸 동력을 얻었다.
궁지에 다다른 페미니즘 운동의 한복판에서 불현듯 공산주의자의 형상을 마주한 그는 책을 쓸 결심을 굳히고, 난폭한 반공주의 문헌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발굴해나가기 시작했다. 요컨대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체제와 이념의 이름으로 가려졌던 ‘공산주의자’ 개개인에 대한 책이며, 더 나아가 ‘조직’의 토대와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러 급진적 사회운동과도 맞닿아 있는 기록이다. 이들의 살아 있는 경험에 여전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맙소사, 공산주의자들이 겪었던 걸 지금 내가 겪고 있구나’
: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다시 만난 공산주의
익히 알려져 있듯, 급진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저자의 삶과 이력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작가로서 본격적인 이력을 쌓기 전인 1969~1977년 그는 『빌리지보이스』 기자로 페미니즘 운동을 취재하고 기록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기를 뒤덮은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은 “깨달음의 충격”을 선사하며 그의 온 몸을, 그가 살아온 세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여성운동 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세상과 존재의 감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찌우는 경험”이었던 페미니즘 의식은 페미니즘 도그마에 잠식되고 만다. 순식간에 ‘옳은’ 태도와 ‘옳지 않은’ 태도가 단정지어지고 주요 페미니즘 조직에서 분파들이 난립하게 되자, ‘친여성’ 노선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모조리 적으로 내몰린다.
보스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비난해야 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문화 일반”이라는 발언으로 “먹물 수정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날, 유년 시절의 낯익은 풍경과 뒤섞여 있던 미국공산당원들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그를 내리친다. 여성운동 내부의 격렬한 정치적 폭풍은 그의 내면에 구좌파, 즉 미국공산당원들의 그림자를 드리워내기 충분했다.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그 기억은 “도그마가 된 운동”의 위험과 공포를 생생히 각인시키며 그를 미국 공산주의사에 대한 한층 더 깊고 뭉클한 통찰로 이끌었다. “이데올로기가 도그마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에 나는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그 순간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연민이 다시 깨어났고, 나는 매일같이 도그마에 짓눌리고 압도당했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에게 새삼 존경심을 느꼈다.”
로맨스로서의 공산주의: 사회정의라는 이상에 열정을 꽃피운 “우리”들
비비언 고닉이 진보적 사회주의자이자 공산당원이었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잘 주목되거나 거론되지 않는 궤적이다. 그는 이민자와 빈민의 터전인 뉴욕 브롱크스 지구에서 스무 살 무렵까지 살았고, 그 덕택에 자신이 “노동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유대인이라거나 여자아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먼저 자각했다. 그에게 사회주의와 계급의식은 의식 이전에 이미 “살과 뼈를 통해 흡수된 모유”였고, 유년 시절 그와 가족의 “친구”이자 “우리”는 바로 그 의식을 공유하는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각종 집회와 메이데이 행진에 참석한 이들, 최신 사건 혹은 변호 기금 때문에 모금 활동을 벌이던 이들, 『데일리워커』를 끼고 그의 집에 드나들거나 그의 집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우렁찬 목소리로 “사안”을 논하던 모든 이들이 한 덩어리였다. 그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밀고 당기고 끌며 단 하나의 질문에 맞는 모양으로 빚어냈다. ‘그것이 노동자에게 유익한가?’
시간이 흘러 브롱크스 밖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가득 메웠던 그 찬란했던 세계가 중심이 아닌 한낱 변방이었음을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영문학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간 서부의 버클리에서 공산당원들은 심지어 “바다 건너에서 온 이름도 얼굴도 없는 악마”일 뿐이었다. 서부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보인 이런 무지함과 적개심은 그를 더욱 강경한 빨갱이로 만들곤 했다. “나는 방어적이면서 동시에 공격적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할 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모태빨갱이라고 선언할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속에 체증처럼 얹혀 있던 그 적대적인 경험은 페미니즘 운동을 계기로 언어를 찾기 시작한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도그마로 굳어버리는 뼈아픈 광경들을 목도하고 난 뒤 비로소 공산주의(자)의 살아 있는 의미를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구술사를 쓰기로 하고, 유년 시절 자신과 줄곧 일상을 함께했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기억을 단초로 그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책 제목이 시사하듯, 한때 공산주의자로 존재했던 이들의 경험을 하나의 ‘로맨스’로 그렸다.
고닉은 그 자신이 채택한 ‘로맨스’라는 서사 코드에 대해 깊은 애정과 확신을 고백하는 한편, 그 이면의 “낭패감”까지 주저 없이 드러낸다. 심지어 고닉은 자신의 로맨스적 서술이 좌우의 유력 지식인들, 특히 시어도어 드레이퍼나 힐턴 크레이머 같이 “난폭한 반공주의”로 돌아선 이들의 사나운 공격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고닉에게 로맨스는 “공산주의자로 존재하던 경험”을 그리는 가장 적절한 방식인데, 실제로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생 동안 심각한 급진주의에 투신하는 삶을 숙명이라고 느낀” 바로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예술가, 과학자, 사상가와 다름 없이 언제나 ‘일’을 위해 사는 문화적 영웅들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개인이었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급진 사상은 이들을 그냥 살아 있기에 사는 존재 그 이상의 차원으로 단박에 끌어올렸다. 당이라는 조직과 조직된 정치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이들로 하여금 “그냥 살아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할 힘이 있다는 기분”을 안겨주었고, 이는 (삶의) 핵심에 다다랐다는 감각을 선사했다.
사회정의라는 이상에 힘입어 열정과 낭만, 신념을 꽃피운 이들, 그 내면의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환하게 밝힌 이들, 바로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삶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비비언 고닉이 이 책을 쓰며 품었던 확고한 믿음이었으며, 로맨스는 여전히 생생한 그 경험을 포착해낼 가장 최적의 양식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질척대고 끈적이며 과장된 표현들(“강력하게”, “심오하게”, “깊이”, “존재의 바로 그 핵심에”)로 거침없이 밀고 나가면서 ‘반공주의’라는 앙상한 뼈대에 살을 입혀나간다. 그리하여 이 책은 ‘공산주의’에 관한 책이 아니라 ‘공산주의자’에 관한 책, 역사의 한 시기에 존재했던 급진 사상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 사상을 자신의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 그 이데올로기가 도그마로 변질되는 순간에도 모순을 오롯이 안고 삶을 헤쳐나갔던 이들에 관한 책이다.
그들은 사방에서 왔다: 찬란한 시작 그리고 오롯한 삶
“아버지와 그 사회주의자 친구들과 함께 주방 식탁에서 보낸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가난하다는 걸 알지 못했고, 그건 그 세계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주방 식탁에 앉아 자신이 미국과, 러시아와, 유럽과,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민족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들의 힘은 목전에 와 있는 혁명이었고, 이들의 제국은 ‘더 나은 세상’이었다.”
비비언 고닉의 외할머니는 미국(엘리스섬)으로 탈출해온 러시아 유대인이었다. 말수가 적었던 그의 할머니는 뉴욕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더니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 당시는 1905년의 러시아혁명에 직접 몸담았거나 그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많은 러시아 유대인들이 고국을 탈출해 미국에 자리를 잡던 때였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 새로운 땅에서 금세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19년 미국공산당이 숱한 사회주의 투쟁을 통해 출현했을 때, 창건 멤버 중에 혁명에 대한 경험을 통해 정치적으로 단련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고닉의 가정사가 잘 보여주듯, 미국공산당의 시원은 뉴욕의 유대인 이민자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공산당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 혁명 경험 그리고 그 혁명이 동유럽 유대인 수백만에게 미친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등의 유대인들은 전형적인 이방인이었고, 그 나라의 사회적 절망을 가장 억압적인 형태로 경험한 이들이었다. 그 절망은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수천의 유대인들은 사회주의의 비전이 자신들의 출구 없는 삶에 몰고 온 흥분과 가능성에 반응했다.” 그 배제의 감각만큼 깊은 상황감각을 지니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와 접속했고, 사회주의자로, 아나키스트로, 시오니스트로, 그리고 공산주의자로 생성을 경험했다.
이들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배제된 이방인이라는 감각과 생성에 대한 굶주림은 미국의 상황과 기묘하게 결합되었다. 미국은 똑같이 춥고 가난한 나라였지만, 미국의 법은 이들의 종속적 지위를 드러내놓고 공언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의 법은 한계를 명시하기는커녕 이들에게 권리를 보장했다. 이 차이가 ‘미국’이었다. 그것은 희망을, 개방을, 가능성을 의미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이 많은 이들의 내면에서 억눌렀던 마르크스주의를 향한 용기를 해방시켰다.”
고닉은 자신의 유년 시절 속 집과 주방의 풍경을 통해 미국공산당원들의 세계, 즉 억압받고 권리를 박탈당하는 노동자라는 자신의 객관적인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 사상가가 되고,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되곤 했던 그 경이로운 세계를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현실로 복원해낸다. 이들의 존재 덕택에 그의 집 주방은 “브롱크스에 있는 누추한 세입자 아파트의 한 공간이기를 멈추고 사실상 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혁명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며, “권리에 대한 감각”을 인생 최초로 획득했다. 변혁의 힘을 가진 추상개념들은 이들의 범상한 일상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시적인 맥락과 맞닿”게 했다.
고닉은 자신의 집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이들은 이런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위치”를 파악한 것이라고, 더 나아가 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라고 쓴다.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세계 사회주의를 통해 진정으로 발견했던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으며, 그것들은 그 발견과 자아창조 행위의 수단이었다고. “사실 자신의 내면에서 생명력이 용솟음치게 만든다고 느껴지는 사람들, 분위기, 사건과 이념을 열렬히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한다. 사실 그런 용솟음이 일어날 때 열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 내 주변인들에게 이 강렬한 감정은 공산당을 통해 해석된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전달되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차 없는 로맨스
“그들은 사방에서 흘러들어왔듯 사방으로 돌아갔다. 공산당원 시절의 경험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었듯, 공산당원 이후의 경험 역시 결코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이들은 다시 온갖 종류의 미국 사람이 되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2년 뒤 결성된 미국공산당은 이후 40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출발 당시 2~3천 명이었던 당원 수는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1930~40년대에 이르면 7만 5천 명으로 늘고, 한때나마 당적을 유지했던 공산당원들의 수를 모두 더해보면 약 100만 명에 달할 정도다. 이민자 유대인이나 웨스트버지니아의 광부, 캘리포니아의 과일 수확 노동자 등 팍팍하게 살아가는 노동계급들이 다수를 이뤘지만, 그 못지않게 교육받은 중간계급 출신(교사, 과학자, 작가)도 많았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회의 불의에 막연한 반감을 품었던” 많은 이들이 사방에서 흘러들어왔다.
대부분의 평당원들은 당 본부에 발을 들여본 적도, 당 내부의 정책 결정 모임에 관여해본 적도 없었지만 그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 소속 노동조합원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산업노동자가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당 소속 변호사들이 인종주의가 극심한 미국의 최남단에서 흑인들을 변호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당의 조직가들이 애팔래치아에서 광부들과, 캘리포니아에서 농장 노동자들과, 피츠버그에서 철강 노동들과 함께 생활하고, 노동하고, 때로는 함께 죽어갔다는 사실을”. 조직으로서의 미국공산당과 그 개별 당원들은 미국이라는 역사의 갈피갈피를 이룬 이 사건들을 통해 긴밀히 연결되었다. “공산당을 통해 번역된 마르크스주의 세계연대 비전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장삼이사들에게 인류에 대한 감각을 심어주고 삶은 위대하고 명료하다는 기분을 안겼다.”
이 열정이 머지 않아 스스로를 기만하는 비극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고닉은 가차 없이 짚어낸다. 공산당이 선사하던 꽉 찬 자아감각은 이내 경찰국가 소련의 부패를 공산당원들이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국공산당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회주의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시시때때로 온갖 법석을 떨었”고, 소련의 전체주의적 성향이 점점 강해지고 그 실상이 감춰지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도 스스로를 계속해서 기만할 수 있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숱한 공산당원들이 투옥되고,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행방불명”을 자처하거나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당을 산산조각 낸 것은 1956년의 세계를 뒤흔든 내부 스캔들이었다. 그해 2월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연설을 통해 스탈린 통치의 참상을 폭로했던 것이다. 이 연설은 미국공산당뿐 아니라 전 세계 좌파 조직에 정치적 파국을 몰고 왔고, 연설이 있은 지 몇주 만에 3만 명이 당을 떠나갔다.
잃고 부서져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모순이라는 진실 앞에서
“이들의 독보적 경험은 그 어떤 미국인들의 경험과 달리 정서적 욕구와 역사적 맥락의 관계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역사가 그들 안에 있고, 그들이 역사 안에 있다.”
고닉은 스무 살 무렵의 자신에게도 큰 충격과 외상을 입혔던 그 일련의 사태, 그리고 특히 1956년 흐루쇼프의 폭로를 다시 한번 소환해내면서 공산당 경험의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흐루쇼프가 폭로한 내용들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의식 저편에 밀어두고 있던” 것들이기도 했다. “흐루쇼프 보고서는 이미 해체 직전이었던 믿음의 직물에서 마지막 한 가닥을 끊어놓았다. 이전 3~4년 동안 나는 너무나도 단순한 사회주의적 설명의 무게가 점점 성장하는 내면의 삶을 짓누르는 느낌 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태에 놓이곤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아이러니가 한때 공산당원들이 품었던 열정적인 꿈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무엇도 공산주의처럼 전 세계인들 안에서 열정 가득한 공통의 꿈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 공산주의를 그런 은유적 경험으로 만든 것은, 그래서 이모 같은 사람들을 비전에서 도그마로, 황홀함에서 비참함으로 빠져들게 만든 것은 이 꿈이었다.”
고닉이 보기에 이것은 공산주의 혹은 공산당원으로서의 경험을 다루는 셀 수 없이 많은 글들이 간과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부분의 작업들은 이 꿈과 열정을 이미 한물가버린 과거에나 존재하는 별나고 기이한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들이 관통했던 삶의 복잡성을 일거에 지워버린다. 특히 ‘스탈린주의’라는 무소불위의 단어는 “그 단어 이면에서 와글대는 모순적인 삶은 모른 척”하며 “그 경험이 복잡한 인간의 근원임”을 부정한다. 이런 식의 억압적인 거리감이 그에게는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객관성을 가장해 “타자성”을 구성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은 관찰 대상은 유죄이지만 관찰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묘사 행위를 묘사 대상(즉 공산당원들)으로부터 떨어뜨려놓는다. 마치 그들은 유아적이지만 우리는 성숙하다는 듯이. 마치 우리라면 더 잘 알았을 텐데 그들은 더 잘 알 역량이 부족했다는 듯이. (......) 요컨대 공산당원들은 더 약하고 열등한 타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이 겪었던 것을 우리는 겪을 리 없다는 듯이.”
이런 거리감 속에서 삭제되는 것은 이들이 대변했고, 이들 안에 있었던 미국 삶의 한 귀퉁이다. 이들이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직업적 궁핍과 종내는 투옥을 견뎌낸 공산주의자들의 독보적 경험은 어떤 미국을 보여주는가? 이들은 어떤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한때 이들이 만들어냈던 것은 어떤 미국이었는가? 미국의 삶 중 어떤 구체적인 조건들이 이들의 허기에 말을 걸었는가? 반공주의와 냉전의 구도가 포착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결국 ‘로맨스’란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의 경험과 독자 사이에 연막을 드리우는 이런 어조에 저항하려는 고닉만의 태도이자 방식이다. “이상을 꺾지 않고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는 것과 조직의 안위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공산당원으로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일평생 고강도 줄타기를 했던 숱한 사람들”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 그리고 “개별 인간 경험에 담긴 고유한 주장들”에 오롯한 자리를 부여하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그린 역사적 궤적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빠졌던 함정과 모순에 똑같이 빠지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