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에 시달리는 삶
좌파에서 우파로 건너가는 이들
이 책에서 저자가 구사하는 문체는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드세며 신랄하다. 이전 저서들과는 두드러진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분석을 위해 트위터와 극우 방송들을 텍스트 삼아 수년 동안 읽고, 그들이 사용하는 문장의 상당 부분을 인용하거나 혹은 그런 뉘앙스에 맞춰 분석했기 때문이다.
SNS 시대에 우리는 텍스트를 정독하지 않고 ‘쓱 읽고 넘어간’다. 이런 미디어 독해법은 우리가 저자를 혼동하게 만들고, 논점도 건성으로 파악하게 만들며, 반대 진영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퉁치게 한다. 저자는 처음에 자신과 울프의 혼합·혼동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울프는 미국인이고 클라인은 캐나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또 울프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자인 반면 클라인은 좌파다. 울프는 미국과 영국의 사립대학을 졸업한 파란 눈의 여성이고, 클라인은 캐나다 국립대학을 중퇴한 갈색 눈의 여성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중이 보기에 두 사람은 그냥 “권력에 불만 품은 나오미들”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둘은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왜냐하면 논점은 완전히 다르더라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며 발언했기 때문이다. 가령 둘 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 논했는데, 클라인은 공적 자금이 투입된 코로나 백신에 대해 특허권을 내세운 제약회사나 그와 같은 편에 선 빌 게이츠를 비판했다. 다른 한편 울프 역시 빌 게이츠를 비판했는데, 그가 백신으로 접종자의 위치를 추적하고 사악한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면서였다.
나와 닮은 쌍둥이, 하지만 일그러지고 왜곡된 모습. 도플갱어와 만나 자아가 분열되며 이중성에 시달리는 사람의 삶은 피폐해진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에서 주인공 골랴드킨은 자신을 사칭하는 인물 때문에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저자 역시 망연자실한 채 울프의 활약을 넋 놓고 관찰하다가 ‘나는 내 삶의 관객이 돼버렸다’고 고백한다. 즉 타인이 나를 바꿔치기하는 한 온전한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저자는 도플갱어가 3단계 공식으로 만들어진다고 본다. 분할partitioning, 수행performing, 투영projecting. 즉 우리 자신은 타인에 의해 둘로 쪼개지고, 우리가 아닌 정체성을 수행하게 되며, 결국 우리를 도플갱어에 투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우리로 비치는 존재가 만들어진다.
도플갱어는 딥페이크 캐릭터에까지 적용된다. 저자는 2022년 3월 한국 대선 때 윤석열의 딥페이크 캐릭터 ‘AI 윤석열’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실제 인물보다 진정성과 매력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한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인용한다. 당시 인터뷰에 응했던 스물세 살의 대학생 이승윤씨는 “AI 윤석열에게 친밀감을 느껴 윤 후보자에게 투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고찰해볼 사안 중 또 하나는 이것이다. 나와 쌍둥이였던 사람들이 어느 날 완전히 반대편 정치 진영으로 옮겨간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지인들은 저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오미 울프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게 대체 뭐였어? 어쩌다 그 지경이 된 거야?” 저자는 좌파와 자유파 인사들이 전제주의 우파로 건너가는 경로에 대해 이런 공식을 세워본다.
나르시시즘(과장성)+소셜미디어 중독+중년의 위기÷대중적 망신=우파 멘붕.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울프가 납작 찌그러졌다며 반대 진영 사람들은 고소해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아껴주는 ‘수백만 명의 반대편 품속에 푹 안겼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신세계를 찾은 것이다. 조회수와 ‘좋아요’의 양에 따라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현 사회에서 진영을 옮겨 인기를 누리는 사람은 ‘방황’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발굴’된 것이다. 저자는 좌파 쪽에서 퇴출당했다고 해서 그가 사라졌다고 여기는 건 ‘유아적 사고법’이라며 그들이 다른 세계로 건너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상대방의 논점을 튕겨내기 위해 서로 반대편 진영의 언어를 도용해서 정치적 의제를 만드는 점 역시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가령 트럼프의 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바이든이 선거 결과를 빼앗아갔다며 “거대한 절도” 운운한다. 그러자 민주당원들은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은 트럼프가 야기했다는 주장을 펴며 이에 맞선다. 또다시 배넌은 민주당원들이 한번도 트럼프를 적법한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았다면서 치를 떨며 응수한다. 즉 거울세계에서 양 진영은 모두 상대 진영과 유사한 화법을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서사를 쓰고, 답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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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이젠 여동생이랑 말이 통하질 않아’ ‘어떻게 하면 아빠를 페이스북에서 탈퇴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야’…… 저자는 반대 진영을 탐구하기 위해 그들 무리와 내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격려는커녕 핀잔만 들었다.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해?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앉아 있어?” 하지만 반대 진영으로 옮겨간 이들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우리가 저마다 회피하고 있는 그 터널 속으로 들어가 나 자신과 우리의 닮은 꼴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좁은 정치 진영에서 벗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까지 뻗어나가는 기량을 보여준다. 이 모든 처절한 연구와 조사가 바로 이 책이 영국에서 부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여성문학상Women’s Prize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