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끼리는 미안하다고 하지 말자”
세상 끝에서 만난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17세』 작가 이근미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성장소설
“한국 문학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라는 평가를 받은 장편소설 『17세』로 등단한 이근미 작가가 성장 소설로는 10년 만에 『나의 로스 앤젤레스』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그룹홈(아동공동생활가정) ‘천사의 집’을 배경으로, 막 입소한 해미가 겪는 아픔과 막막함을 어루만진다. 가정불화로 헤어진 부모를 뒤로하고 천사의 집에서 만난 이들과 부딪치며 자립과 성장의 의미를 배워 가는 과정을 그렸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지는 가정,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던 가족 제도의 균열이 일어난 지 오래다. 그 과정에 아이들은 특히 고통받는다. 근래 들어 청소년문학에서 ‘보통의 가족’을 넘어 다양한 처지에 놓인 청소년을 주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밀도 높은 취재를 통해 완성된 『나의 로스 앤젤레스』 역시 그 틈을 주목했다. 또한 등장하는 한명 한명의 입체적인 서사를 통해 이들을 온전한 개인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 걸음 내디디는 삶의 주인공으로 그리며 청소년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성실히 비추고 있다.
목차
나의 로스 앤젤레스
작가의 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서로의 곁에서 ‘함께’ 자라는 아이들
끝내 두 발로 당도하는 천국에 대하여
어느 날 사라진 17세 딸과 과거 자신도 같은 경험이 있는 엄마와의 소통과 공감, 화해를 그린 장편소설 『17세』의 이근미 작가가 『나의 로스앤젤레스』를 출간했다. 작가는 빠른 속도로 가정이 해체되며 돌봄에서 제외되는 청소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과 헤어져 그룹홈으로 오게 된 아이들의 슬픔과 방황을 핍진하게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집 나간 엄마, 술에 절어 사는 아빠, 괴팍한 할머니를 피해 ‘천사의 집’으로 온 해미 역시 빛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보낸다.
“나는 대체 어디에 온 걸까? 하늘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일까? 돌고 돌아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_10쪽
해미는 당차고 조잘조잘 말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가정불화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천사의 집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일곱 명의 아이와 엄마로 불리는 원장님, 아빠로 불리는 대표님이 함께 살고 있다. 해미는 왜 아이들이 원장님과 대표님을 아빠, 엄마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에게는 엄연히 진짜 부모가 있으니, 하루빨리 자신을 찾으러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인지 천사의 집 생활은 힘겹기만 하다.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해미는 원장님과의 ‘시크릿 데이트’를 계기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런 해미 앞에 자신과 너무나 닮은 라희가 등장한다.
라희가 들어설 때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거기 서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전미지가 퇴소하면서 생긴 자리에 들어온 5학년 라희는 온통 회색빛이었다. _59쪽
해미는 라희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자신보다 어리고 더 어두운 아이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처음 천사의 집에 왔을 때 자신을 도와준 친구들과 원장님에게 고마움을 갚을 길이 생긴 것이다.
천사의 집에 처음 온 아이들은 모두 무표정, 무감각한 상태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 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청소년이 현실의 아픔에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주는 ‘사랑’에 있다. 이들의 ‘사랑’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기다려 주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소설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자신도 모르게 연대하며 결국엔 ‘어떤 천국’에 당도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일어나는 온전한 개인으로.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진짜 가족’처럼
이 작품은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들 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회가 구성해 놓은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하지만 더 가족다운 일상을 꾸려 가는 천사의 집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천사의 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치료 약이 없으면 울고 뒹구는 유리, 자신을 버리고 양아들을 택한 아빠를 원망하는 정민, 해미를 졸졸 따르며 애정을 갈구하는 지혜… 무책임한 어른들 탓에 각각의 그늘을 가진 아이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들 곁엔 천사 같은 원장님이 자리한다.
“오늘 우리 딸 생일이더라. 저녁에 애들하고 생파하자. 저녁밥 뭐 해 줄까?”
내 생일을 기억해 줘서 고마웠다. 망설이다가 소고기미역국이라고 말했다.
“좋아, 한우 양지살을 참기름으로 달달 볶다가 미역 넣고 푹 끓여 조선간장하고 천일염으로 간하면 진짜 맛나. 내가 오늘 솜씨 발휘해 볼게. 생일에는 소고기미역국에 고봉밥이지.”
고봉밥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글 돌았다. _46쪽
세상 끝에서 만난 이들은 여느 가족처럼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한다. 마치 진짜 가족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 속을 다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끼리는 매번 미안하다, 고맙다 말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는가. 천사의 집에서는 일상적인 표현조차 다시 연습하는 일이 다반사다.
작가는 “마땅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많은 아이가 가정 밖에서 아픔을 겪는 세상이지만 사랑의 이불을 크게 펼쳐 따뜻하게 감싸면 문제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누군가 곁에서 함께 한다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건네준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둠을 마주한 적이 있었거나, 그 끝에서 누군가 비춰 주는 빛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천사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곳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춰 내일로 향하는 걸음을 내디딘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천국’에 당도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