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미경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불완전한 현대인의 삶과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시간들에 대하여, 그런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모자식 사이, 부부 사이, 사랑하는 사이, 친구 사이, 사제지간 사이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주는 상처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오빠 생각
삼각릴레이
칼을 가는 시간
나비
겨울의 끝
굼벵이의 춤
해설 /
인간관계가 주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 이승하
작가의 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오빠 생각」의 ‘나’는 아이를 여섯 번이나 유산하자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남편은 술을 마시면 나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재떨이를 던져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나는 오른쪽 눈까지 멀어지기 시작하는 절망감 속에서 가출해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아가게 된다. 내 생에 있어서 가장 고결했던 관계는 열 살 위 오빠와의 형제애였다.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로 인해 충격을 받은 엄마가 10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뒤로 오빠는 나의 유일한 피붙이였다. 건축현장 공사 감독을 하던 오빠가 난간에서 떨어져 죽자 외로움에 시달리던 나는 고아인 샛별이를 입양해 키우기도 하지만 남편은 나와 입양한 아이를 다 내치고는 다른 여자와 산다. 나는 샛별이를 다시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둥지였던 가정을 떠난다. 그즈음에 오빠와 같이 근무했던 부하직원인 남자가 나타나 벗이 되어 준다. 절망에 빠졌던 나는 나를 ‘반디’라고 부르는 그를 통해 삶을 이어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오빠에게서 하모니카를 배웠다며 ‘오빠 생각’과 ‘메기의 추억’을 불러준다. 그런 남자가 나에게는 구원의 끈을 내려준 신이다.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극명하게 묘사한 소설로 각박한 세상에서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옆에 있는 한 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누구의 오빠와 누나가 될 수 없는가, 심각하게 묻는다. 운명에 대한 숙고의 사유가 짙게 녹아든 작품이다.
표제작인 「삼각 릴레이」의 나(현서)는 그와 양수리에서 데이트를 하는 중이다. 친절한 시청 직원인 현서에게 그는 호감을 갖게 되었고, 1년에 한 번 정도 만났으니 연인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사적인 얘기를 시시콜콜 다 말한다. 더 이상 설렘이 없다는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 남편은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하고 나는 담담히 응한다. 동갑내기 서정요의 청으로 누드모델이 된 나는 동성이지만 그녀에게 끌려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거리에서 정요는 나를 안으며 생애 마지막 친구인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일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하던 그녀가 갑자기 관계를 매몰차게 정리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얼마 후 서정요는 밤늦게 아들이 있는 수련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는다. 나는 병원 장례식장에도 가고 발인 날 성당에서의 장례미사에도 참석하고 천주교 공원묘지까지 간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계속 흘린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예측불허에 가깝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다소 은유적인 수법으로 탐구하고 있다. 나와 그, 나와 남편, 나와 정요의 관계가 다 상식을 벗어난다. 서로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한 남편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린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처럼 굴었던 서정요가 전화 한 통화로 관계를 끊어버린다. 1년에 한 번밖에 안 만난 사이인데 둘은 죽마고우처럼 친하다. 작가는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운동회 때 두 사람이 발을 한쪽씩 묶고서 경주하는 삼각 릴레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인간관계의 복잡다단함을 각자 일상이 가진 무게만큼 묵직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칼을 가는 시간」은 어느 집에 동거인으로 들어간 중년여성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미용사를 하면서 20여 년을 혼자 산 여자는 평소 소망했던 가족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고3 딸과 중3 딸을 잘 키우고 싶었지만 동거하는 남자가 호색한인 데다 비도덕적이다. 상처한 뒤 1년 동안 네 여자와 놀았고,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살아가는 뻔뻔한 인물이다. 두 딸도 그것을 잘 안다. 큰딸이 가슴을 내놓고 다녀도 아버지인 그는 제지하지 않는다. 집을 뛰쳐나간 나는 마음속에 복수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면제를 먹는다. 여자는 자신이 죽는 것이 그 남자에게 하는 복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순간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로 마음이 흔들리지만 이미 수면제를 먹은 상황이다. 삶과 죽음의 물러설 수 없는 양자 대결의 치열한 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삶과 생명이 가진 가치와 삶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리지 않으려는 매달림이 얽힌 복잡다단한 중년 여인의 심리를 칼날같이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나비」는 사랑의 기쁨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인간이 누구랑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상처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짝사랑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안타까워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나와 당신의 사랑이 성취될 것임을 암시한다. 나비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오직 한 번 날아오를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랑하기에 행복하다. 그런 사랑의 행복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겨울의 끝」은 미혼모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는 급성 뇌종양이 와서 시한부 인생이 시작된 중년여성이다. 대학 4학년 때 딸이 생겨 그 딸이 고등학생이 되도록 혼자서 키운 미혼모다. 미혼모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적인 문제는 더욱더 모녀를 곤경으로 몰고 간다.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나는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겨질 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남자를 찾아간다. 작가는 이런 나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심회를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다. 내 남편이 되어야 할 사람은 딴 사람 남자가 되어 있다. 나는 다른 여인과 결혼한 남자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면서, 용서를 빌면서, 생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사랑하는 사람 품 안에서 죽기를 원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하지만 딸 소리가 엄마의 납골당이나 무덤을 찾아올 때 친아버지 민수가 곁에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현실 속에서는 실제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의 삶과 연결 되어지는 생의 필연성을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다.
중편소설 「굼벵이의 춤」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주인공은 끝내 자살을 한다. 사람들 중에는 태생 자체가 아주 기구하거나 불행한 경우가 있다. 소위 ‘첩의 딸’인 나는 입을 봉하고 산다. 다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아빠와 살기 위해 이 집에 들어왔는데 세 살 위의 언니가 나에게 잘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친구들이 ‘첩의 딸’이니 같이 놀지 말라고 왕따를 시키자 자신의 태생을 저주하고 있던 나는 개미와 같은 벌레를 잔인하게 죽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살해의 쾌감은 증폭되고, 나는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저주하는 가학적인 인물이 된다. 자신을 왕따시킨 창옥이가 화해를 청해도 이미 마음에 벽을 쌓은 나는 완강히 거부하고 혼자만의 성채에서 타인을 증오하면서 살아간다. 언니의 흑진주같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미워하고, 언니의 형부가 될 사람이 나타나자 아주 교묘한 방법을 써 그와 육체관계를 맺어 결국 남편으로 만든다. 된다. 동생에게 남편 될 사람을 빼앗긴 언니는 자살 기도를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비구니가 된다. 애정 없이 언니에 대한 복수심으로 결혼한 나는 남편과 사이가 좋아질 리 없었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자 홀가분하게 이혼한다. 딸도 사랑을 쏟을 대상이 아니다. 상처 입고 황폐해진 가슴 속엔 그 어떤 사랑도 들어올 자리가 없다. 이 소설은 인간의 피학이 가학으로 바뀌는 과정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심리소설이다. ‘굼벵이의 춤’ 제목에서 보이듯이 모든 타자는 나를 괴롭히는 개미들이고, 나는 굼벵이다. 굼벵이에 대한 동정심이 내 마음을 바꿔야 하는데 이미 악마가 된 나는 굼벵이를 저주하며 밟아 죽인다. 그러면서 ‘이렇게 흉물스런 몰골로 사는 것은 결코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자학과 가학을 동시에 행하게 만든다. 소설은 종반부에 이르면 불교의 주요 교리가 나온다. 비구니가 된 언니의 편지, 설득, 감화로 마침내 나는 마음이 바뀐다. 남편과 딸을 버렸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다시금 확인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죄가 될까 봐 꼭꼭 숨겼던 것을 비로소 인지한다. 언니를 향한 그간의 악감정을 정리한 나는 굼벵이에게 그렇게 했듯이 이제는 자신을 단죄할 일만 남았다. 나는 결국 자해를 선택하는데 이 장면은 보기 드문 비극미의 절정이다. 도달 불가능한 실체라는 결여와 그 공백 주위를 지속으로 맴돌고 있는 욕망의 무한 순환은 아프기만 하다. 실체의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공간과 손에 쥘 수 없는 것에 대한 환영에의 매혹이 굼뱅이 춤으로 환을 이루는데, 이것은 환과 멸의 절묘한 알레고리로 나타난다.
유미경 작가의 여섯 편 소설은 이처럼 다양한 인간의 구체적인 운명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개별 인물의 삶이란 구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보여주는 구체성의 현장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딪쳐야 하는 어렵고도 절박한 인간관계 속의 삶의 표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시대에 불완전한 존재들의 개성과,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원형적 텍스트가 될 만한 존재론적인 물음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사회적 관계 속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하고, 그 금기에 의해 억압된 내 안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내 안의 나 역시도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억압된 자신과 만나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죽음 혹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의식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목숨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역설의 미학을 그로테스크하고도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그에 못잖은 엄청난 크기의 욕망을 지닌 삶을 체험하며, 그 체험이 최초로 이루어졌던 무의식이나 의식의 시간과 공간 속을 유영한다. 그 공간 속은 현재진행형이고 현재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시간은 부정되고, 과거와 더 먼 과거가 섞이고 또한 현재와도 섞이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유미경 작가 소설 『삼각 릴레이』는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
작가의 말
무엇보다도 나는 소설 쓰는 것이 좋다.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은 내가 부족함이 많고 아둔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소설 속 인물들에 빙의되어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면서 삭막하고 때로는 낯설기까지 한 현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퇴고를 거듭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의 변화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 순간들이 나는 정말 행복하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부럽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은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은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 그 속의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마음껏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내 유일한 치외법권적 공간, 저 삼한시대의 소도가 되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