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 리스는 19세기의 걸작을 뒤집어 20세기의 걸작을 창조해냈다.” - 미셸 로버츠, 《더 타임스》
왜 그 여자는 광녀라는 이름으로 감금되었을까?
누가 무슨 권한으로 이름과 자유, 삶을 빼앗았는가?
19세기 소설 『제인 에어』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한 여성을 호명해
매혹적인 목소리로 되살린 20세기의 명작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로 손꼽히는 진 리스의 대표작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진 리스가 노년에 쓴 대표작으로 집필에만 9년이 걸렸다. 1927년 데뷔하여 작품활동에 매진하던 진 리스는 1939년 『한밤이여, 안녕』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고, 작품들은 절판되었다. 1958년 BBC에서 『한밤이여, 안녕』이 극화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사망설이 돌았던 진 리스의 행방이 알려졌다. 그녀는 소설을 집필하고 있었고, 그 소설이 1966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진 리스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다. 『제인 에어』에서 버사 메이슨은 로체스터의 첫 번째 부인으로, 그의 인생을 망치고 제인 에어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추악한 광녀로 등장한다. 광기의 이유는 가계에 흐르는 나쁜 피로 설명되며, 웃음소리와 으르렁거림으로 기괴한 모습을 보이다 종국에는 손필드 저택에 불을 지르고 죽음을 맞는다. 진 리스는 『제인 에어』를 읽고 크리올 여성인 버사 메이슨이 ‘흰옷을 입은 하이에나’ 혹은 ‘네발로 기어다니는’ 인간 이하의 동물로 그려진 데 분노했고, 단 한 번의 인간적인 목소리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에게 생명을 주기로 결심한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버사 메이슨을 아름다운 앙투아네트로 재탄생시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하며, 그녀를 파멸시킨 남성중심주의 사회와 제국주의의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목차
1장 쿨리브리
2장 그랑부아
3장 손필드
작품해설
주해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
진 리스가 해석한 광기의 정치학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앙투아네트의 어린 시절부터 로체스터와의 결혼생활, 로체스터에 의해 감금된 손필드 저택에서의 나날을 따라간다. 소설에서 가장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은 앙투아네트의 어린 시절과 그녀의 어머니 아네트의 파멸이다.
1830년대 자메이카, 앙투아네트는 몰락한 농장주의 딸로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어머니 아네트의 재혼으로 집안은 안정을 찾지만 앙투아네트의 삶에는 새로운 불행이 닥친다. 아네트는 현지 사람들의 증오를 감지하고 쿨리브리를 떠날 것을 간청하지만, 남편 메이슨은 아네트의 말을 지속적으로 무시한다. 나아가 경솔하게 동인도제도에서 노동자를 수입하겠다는 계획을 발설해 흑인 사회의 분노를 산다. 그 결과 쿨리브리의 집은 불타고 앙투아네트의 동생 피에르는 불길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아네트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아들이 죽자 비극을 야기한 메이슨에게 욕을 퍼붓는다. 남편을 향한 아네트의 분노는 용서받을 수 없는 광기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며, 메이슨이 아네트를 방치하는 명분이 된다.
『제인 에어』에서 버사(앙투아네트)의 광기는 그녀 가계에 깃든 피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도 어머니 아네트의 광기와 운명을 앙투아네트에게 투영시키며, 그녀 삶의 궤적을 아네트의 연장선에 놓는 잔인한 시선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진 리스는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광기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 진 리스가 보는 여성의 광기는 불균형한 성의 정치학에서 발생한다. 당시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의 코를 베어버리는 폭력은 ‘의사의 핀잔’을 받는 일로 그치지만,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남편에 대한 아네트의 분노는 아네트와 앙투아네트의 일생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비난과 멸시, 종국에는 버림받고 감금당하는 결말로 돌아온다.
이는 진 리스가 실제 목격한 여성들의 삶이기도 했다. 진 리스는 16세까지 도미니카에서 성장했다.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 그녀는 상당수의 크리올 상속녀들이 영국 남자와 결혼한 뒤 광녀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것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쓴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새의 날개를 자른 자와
날개 잘린 새의 비상
앙투아네트가 원하는 것은 사랑, 안전, 자유다. 어린 앙투아네트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성장해서는 로체스터의 사랑을 원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은 피에르이며, 로체스터가 원하는 것은 돈뿐이다. 앙투아네트는 사랑의 언약을 믿고 결혼하지만, 로체스터는 여성의 재산은 남편에게 귀속된다는 법률로 앙투아네트의 모든 재산을 가로채며, 앙투아네트가 아끼는 그랑부아 저택에서 하녀와 하룻밤을 보내며 그녀의 애정을 조롱한다. 로체스터는 돈 때문에 크리올 여성과 결혼했다는 열등감으로 인해 앙투아네트에게 흐르는 크리올 피와 그녀가 사랑하는 자메이카 문화, 백인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그녀의 삶을 부정한다. 앙투아네트에게서 이름을 빼앗고, 그녀가 소망하는 자유와 사랑도 앗아가며, 그녀를 감금시킨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속 앙투아네트의 운명은 소설 초반 등장하는 초록 앵무새 코코와 평행선을 그린다. 코코는 사랑스럽고 평범한 앵무새지만, 새아버지 메이슨이 날개를 잘라버리자 포악해진다.
우리 집 초록 앵무새의 이름은 코코였다. 코코는 말을 잘 못했다. 앵무새는 “거기 누구예요?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말하고는 제가 제 물음에 대답했다. “사랑하는 코코예요. 사랑하는 코코.” 메이슨 씨가 날개를 잘라버린 이후 코코는 성질이 고약해졌다. 저는 어머니의 어깨에 앉으면서 누구든 어머니 곁에 오면 날아가 발을 쪼아댔다.
_ 48쪽
존재의 본질이자 핵심인 날개를 제거당한 새는 ‘발을 쪼아대는’ 행동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날개를 자른 이가 코코에게 부여하는 삶은 감금과 죽음이다. 새장 속에 갇힌 코코는 폭동으로 집이 불타자 날아오르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잘려 나간 날개 때문에 비상은 번번이 실패하고 코코는 불덩어리가 된 몸으로 땅에 추락한다. 삶과 자유를 향한 코코의 열망은 기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코코의 죽음은 불길하고 재수 없으며 외면해야 하는 일로 해석된다. 이 운명은 앙투아네트의 삶과 일치한다. 『제인 에어』 속에서 그녀의 언행은 인간 이하의 추악함으로, 죽음은 광녀의 비참한 결말로 묘사된다. 그러나 진 리스는 그녀의 추락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몸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붉은색이었고 내 모든 인생이 그 안에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시계 그리고 코라 이모의 알록달록한 조각 이불을 보았다. 나는 양란 그리고 덩굴식물들 그리고 재스민 그리고 생명의 나무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중략)… 나를 증오하는 남자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버사! 버사! 바람이 내 머리에 닿으니 머리칼은 마치 날개처럼 물결치며 펄럭였다. 내가 만일 저 아래 단단한 돌바닥으로 뛰어내리면 내 머리칼이 날개가 되어 나를 둥둥 뜨게 하겠지. 나는 생각했다.
- 292~293쪽
진 리스는 그녀의 추락을 비상의 이미지로 나타낸다. 펄럭이는 머리칼을 날개 삼아 그녀가 소망하는 곳, 제3의 쿨리브리로 날아감을 암시한다. 그녀가 소망하는 것은 모두 좌절되고, 그녀가 사랑하는 장소는 폭력과 불행으로 파괴되었지만, 그녀는 비상을 통해 다시금 소망의 세계를 구현한다.
거울에 비친 창백한 자아상과
단절되고 차디찬 현실의 세계
소설에서는 반복적으로 거울이 등장한다. 앙투아네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즐겨 보며 ‘너무도 만족해서, 너무도 즐거워서 미소 짓는’다. 로체스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에 구역질을 느끼는 것과 대조적이다. 앙투아네트에게 거울은 향기, 옷과 마찬가지로 자기 존재의 일부이며, 희미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다. 앙투아네트에게 거울이 없는 곳은 어린 시절 맡겨진 수녀원 기숙사와 로체스터에 의해 갇힌 손필드 저택뿐이다. 수녀원은 자아를 신에게 의탁하는 곳이었다면, 손필드 저택은 모든 것을 빼앗긴 앙투아네트에게서 자아상마저 박탈한 곳이다.
그 남자가 나를 앙투아네트라고 부르지 않자, 나는 앙투아네트가 창문을 통해 슬그머니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았어. 앙투아네트의 향기도, 옷도, 거울도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
- 276쪽
앙투아네트가 거울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녀의 혼란한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앙투아네트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났지만 현지 사회에서 배척받고, 백인 사회에서도 멸시를 받는다. 그녀는 로체스터에게 “당신들과 이곳 유색인종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누구며, 어디가 내 나라인지,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내가 왜 태어난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라고 고백한다.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가 거울을 수시로 들여다보듯, 앙투아네트는 거울에 자신의 상을 비춰보고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거울은 단절된 세계이며, 자아와 세계를 연결해 주지 못한다.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거울상이라 생각하는 흑인 친구 티아에게 다가가지만,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나란히 누워 잤으며 같은 물에서 헤엄’ 쳤던 친구는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 또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형상에 입을 맞추지만 ‘유리가 우리를 가로막았’고, 그 유리는 딱딱하고 차디차기만 하다. 거울의 차디차고 단절된 물성은 앙투아네트가 꿈꾸는 이상과 차가운 현실의 대조를 보여준다.
우리는 마주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는 피가, 그리고 티아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채로. 티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내가 보듯이.
- 55쪽
거울은 상을 비추지만 그 세계는 절대 연결될 수 없는 단절된 세계이다. 진 리스는 소설을 통해 백인과 흑인, 주체와 타자, 남성과 여성, 자연과 문화, 제국과 식민지의 단절을 드러낸다. 제목인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이들 사이 연결될 수 없는 망망한 거리를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 아득한 바다만큼이나 거울도 차갑게 닫힌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의 배경은 1830년대다. 진 리스가 분노했던 바다의 거리는 이제 극복되었을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여운이 긴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