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예술철학의 고전, 『예술 강의 20』
우리는 예술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할 때, 작가의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나 이미지가 우선 있고 그것이 형태가 되어 실현된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통념이 폭넓게 퍼져 있으며 때로는 거의 억압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알랭은 그것에 대해 이견을 제기한다. 기존 통념은 예술 제작의 길을 순순히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미美]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눈을 딴 데로 돌리는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 제작에 앞선 어떠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가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예술 제작으로 나아가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만, 그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뿐인 단계에서는 전혀 미덥지 않고 덧없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작품의 견고함, 강인함, 깊이는 도구를 들고 몸을 움직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을 위한 행위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품 자체의 성질인 것이지, 제작 이전의 상념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작 이전에 뇌리에 떠오르는 상념을 믿을 수 없는 것, 덧없는 것으로 여겨 옆으로 제쳐두는 견해의 토대에는, 몸을 움직이고, 소재와 씨름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도구를 조정하고, 숨을 가다듬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행위야말로 예술의 본령이라고 하는, 알랭의 오랜 사색이 뒷받침된 흔들리지 않는 예술관이 가로놓여 있다.
목차
1강 체계
2강 예술과 정념
3강 예술과 정념 2
4강 구경거리 예술에의 적용
5강 댄스
6강 음악
7강 시
8강 구경거리 예술
9강 구경거리 예술 2
10강 의상
11강 의상 2
12 강 건축
13강 건축 2
14강 건축 3
15강 조각
16강 조각 2
17강 회화
18강 회화 2
19강 데생
20강 예술가
알랭 연보
옮긴이 후기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행위’로서의 예술의 육체성
또 하나, 알랭 예술론의 중요한 특징은 예술을 자연과의 관계라는 구도 하에 파악한다는 점이다. 예술에서의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그중 인간의 몸을 예술에 있어 불가결하며 중요한 자연으로 파악한다. 『예술 강의 20』은 총론적인 논의 후에 각론으로 넘어가서 먼저 댄스를 다루고 그 다음에 음악을, 그 다음에 시를 주제로 하는데, 이상의 세 가지가 몸을 변화시키는 예술로 정의된다는 데에서 자연으로서의 몸의 중요성이 단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자연으로서의 몸과 예술의 관련이라는 것도, 자연을 그냥 묵묵히 따른다기보다, 자연과 격투하고, 자연과 서로 다툰다고 하는 것이 크게 표면에 부각된다. 몸이 고양된 상태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형태화로는 다가갈 길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그것은 통어되고 억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침은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며, 지속되어 가는 것이 되고, 음악적인 소리가 된다. 그와 같이 고양을 통어하거나 억제하는 행위를 ‘몸의 훈련’이라 부르고, ‘정념의 정화’라 부른다. 그렇게 몸을 조련하고 정념을 정화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술 활동의 본래 모습이자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서 ‘행복’으로
시간 예술로서의 음악과 시, 공간 예술로서의 건축, 조각, 회화 등을 다룬 각론 뒤로, 마지막 장인 20강에서 알랭은 새삼 예술가가 무엇인지 묻고 예술가들을 고대 그리스의 무녀인 퓨티아에 빗댄다. 몸이 고양되는 것을 억제하고 혼탁해지는 정념을 정화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알랭은 거듭해서 말하고 있지만, 무녀에 가까운 예술가는 그러면서도 몸의 고양과 정념의 혼탁을 각별히 강하게 받아들이는 존재여야 한다. 대자연과의 교감이 있고,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과의 교감이 있고,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몸과의 교감이 있다. 그것이 예술 제작의 현장의 상황인 것이며, 바로 거기에서 외적인 자연뿐 아니라 내적인 자연에도 신뢰를 두는 것이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그는 거의 유례가 없는 낙천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0번의 강의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알랭은 역시 예술가를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그 ‘행복’은 예술가만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통해 예술의 세계로 입문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공유된다. 예술을 논하는 알랭 자신도 물론 그 행복에 기여하는 한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