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학령기인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도 막막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준비를 위한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푸른숲, 2018)을 쓴 류승연 작가의 그다음 이야기인 『아들이 사는 세계』가 푸른숲에서 출간됐다. 첫 책이 발달장애인 아들을 양육하며 장애계 이야기를 물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었다면, 『아들이 사는 세계』는 발달장애인인 아들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어떤 성인기 삶을 맞이해야 할지, 학령기인 지금 어떤 것들을 배워야 성인이 됐을 때 제대로 된 자립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취재 과정을 담고 있다. 자립이 가능하려면 학령기인 지금부터 ‘관계 맺기’가 잘돼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나 혼자 산다’가 아닌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산다’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익숙해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체득해야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는 자신의 양육 경험과 취재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 갈등 상황을 마주하는 법,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 정해진 루틴은 지키되 돌발 상황에 ‘문제행동’ 없이 대처할 수 있는 관계와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학령기인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꺼이 타인의 도움을 받고, 어울리고 싶고, 타인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일찍이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한 교육과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제안을 건넨다. 여성학박사이자 『아주 친밀한 폭력』의 정희진 작가는 이 책에 대해 “비장애인의 좁은 시각에 대한 도전으로, 비장애인이 상상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두텁게 묘사해 삶, 세계,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켰다”며 “사유의 재구성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역동적인 독서 체험에 뛰어들기를 권한다”는 추천을 남겼다.
목차
프롤로그 앞으로 네가 살 세상이 조금은 더 살 만하길 바라며
1부 고립이 아닌 공존의 세계로
외로움의 반대편으로 가는 길
인생의 진짜 목표
선택 가능한 자립지원 종류
아들을 위한 최종 목적지
갈등을 겪을 용기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
15만 원어치의 책임
불안함을 줄여주는 돌발 상황
2부 똑같은 마음, 똑같은 사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해자의 엄마
신뢰로 녹인 방어벽
친구와 노는 재미
행동으로 하고 있는 말
인기남의 엄마
3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행복한 어른 생활
달라진 아들의 세상
학교에 가는 의미
잘못된 루틴을 깨야 하는 이유
특수교육에서도 고립되지 않을 권리
능동적 참여가 만드는 단단한 자립 기반
지퍼 올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행복한 어른이 되기 위한 밑그림 그리기
아들이 살아갈 세계를 위해
에필로그 20년 후의 어느 날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진도와 교육 중심만이 아닌 삶 자체가 중심이 되도록”
특수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성인기 삶을 위한 학령기 현장의 고민을 담다
저자의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초까지만 해도 교내에서 ‘괴물’이었다. 이동 수업 때도 싫다는 표현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담임 선생님, 실무사, 학교 보안관이 이 ‘문제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4학년 개학 후에는 책상을 밀어 넘어뜨려 같은 반 친구의 발등을 다치게 한 적도 있었다. 점점 덩치가 커지는 아들의 문제행동은 날이 갈수록 위협적이었다. 남은 해 동안 아들이 계속 교내 기피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결심한 저자는 아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했다. 항상 사회복무요원과 함께였던 아들은 사실상 보호가 아닌 고립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또래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모든 의사표현을 즉각적인 공격행동으로 발현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부터 사회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뿐만이 아니라 몇 년 후에 나갈 사회 속에서도 아들은 계속 괴물로 남을 것이었다. 저자는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다행이도 설득은 통했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문제행동으로 여겼던 것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중증 발달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보호하지 않고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생기는 일들을 직접 감당하는 방법을 체득시켰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까진 그래도 교사들이 아이들을 부모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져요. 아무래도 학습 중심으로 바뀌어서요. 동환이가 잘 적응해야 할 텐데…….” / 초등학교 때까진 학생들이 아직 ‘어린이’ 신분이기에 교사들도 부모 같은 마음으로 일상생활지원이라든가 세심한 돌봄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이후부턴 ‘돌봄’에서 ‘학습’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는 얘기였는데 당시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땐 거대한 벽을 마주한 무력감만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221쪽)
저자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아들의 무너진 사회성을 다시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백지 상태가 됐다. 자발어가 열 개 정도인, 무발화에 가까운 저자의 아들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진도와 학습 중심의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는데, 수업을 이해할 수 없으니 학교에서는 자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잠을 깨우면 공격행동이 나왔고 이는 관계의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국어, 수학, 과학 등의 교과 수업도 물론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특수학교는 경증 발달장애인이 이런 교육을 받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의 배제 또한 고려해야 한다. 시스템상 ‘진도’와 ‘교육’에 맞춰져 있는 학령기 기본교육과정을 무시할 수도, 중증 발달장애인의 수업 배제도 무시할 수 없기에 저자는 특수교육의 방향성과 방법론을 변화시킬 방법을 특수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경진학교에 재직 중인 심승현 선생님의 연구대로 발달장애인가 중증화되고 있는 게 맞다면(247쪽) 문제의식을 공유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과 학습을 일상생활과 연결한 교육이 학교와 가정에서 모두 이뤄져야 그 누구도 고립되지 않고 자립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 중심의 교과 학습이 쓸모없다는 게 아니고 일상생활 지도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학령기 학습이 성인기 삶과 연결될 수 있도록 특수교육의 방향성과 방법론의 변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아들이 학교에서 잠자는 이유가 현행 특수교육시스템에서 비롯된 것 또한 사실이기에, 나는 먼 미래에 아들과 단둘이 고립된 삶을 살다가 한강으로 가고 싶진 않기에, 아직 제대로 된 삶을 살 가능성이 남아 있는 현재에 아들이 학교에서 잠자는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77쪽)
저자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초등학생 땐 ‘가해자’에서 ‘인기남’이 됐고, 가장 우수한 성장을 이뤄내 상까지 받은 아들의 앞에 아직도 두껍고 높은 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사다리를 만들든, 암벽 등반 장비로 벽을 타고 올라가든 하나씩 방법을 찾으며 몇 년 후엔 법적으로 공식적인 성인이 될 아들을 위한 무수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비단 저자 스스로와 아들만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제2의 자신과 제2의 아들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쓴 책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바꿔나가고자 적은 담담한 호소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
학령기 발달장애인 아들이 맞이할 슬기로운 성인기 삶을 위한 엄마의 취재기
1부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지원 종류를 알려주며, 자립생활을 위해 학령기인 지금부터 배워야 할 중요한 요소로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거나 타인이 기꺼이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결국 고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령기인 지금 선택과 책임, 갈등과 돌발 상황을 겪으며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전한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서 매일의 루틴을 형성하는 건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잘 형성된 루틴은 개인의 삶을 건강한 방향으로 이끈다. 하지만 때로는 일부러라도 루틴을 깨고 돌발 상황에 놓일 필요도 있다. 당사자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줄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 살아서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동안에 그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그런 경험을 쌓음으로써 돌발 상황에 불안해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치 레벨을 올려야 한다. (116쪽)
2부와 3부는 특수교육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학교에서 외딴섬 같았던 아들이 타인과 어울리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서 자립생활을 위한 밑바탕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첫사랑의 전학으로 인한 상실감을 극복하는 법, 사이가 나빴던 친구와 자연스럽게 화해하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 등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학령기인 중학교 생활에 접어들면서 아들은 다시 혼자가 된다. 중학교부터는 진도와 학습 중심의 교육에 들어서는데, 특수학교에서조차 중증 발달장애인은 그 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 저자의 아들은 학교에서 잠만 자면서 다시 고립된다. 저자는 개별화와 일반화, 그리고 가정과 학교에서 모두 배울 수 있는 ‘진짜 교육’에 대해 제안하면서 현재 특수교육시스템의 문제를 인지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발달장애인이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원래 대한민국 교육 자체가 ‘따라가는 학생’만을 붙잡고 끌고 가는 형태이긴 하지만 발달장애 학생들만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서마저 이를(진도 중심, 시수 중심) 그대로 답습한다는 건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다. 게다가 발달장애 학생들의 장애 정도가 날이 갈수록 중증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곧 음성 언어를 매개로 진도가 나가는 현재의 특수학교 수업에서는 갈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교육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 연구 결과대로라면 배제되고 고립되는 제2의, 제3의 아들은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245~246쪽)
『아들이 사는 세계』는 제2의 자신, 그리고 제2의 아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자녀가 ‘혼자서도 잘 살게’ 하기 위한 마음을 담아 쓴 취재기이자 사회적 담론을 담은 제안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