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러므로 나는 불행하다
그리고 그건 내 잘못도 인생의 잘못도 아니다
세 가지 평범한 삶, 세 편의 특별한 글
20세기 문학의 가장 급진적인 혁신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남긴 모더니즘 여성 문학의 고전
20세기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모더니스트의 영적 어머니’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의 소설 『세 인생Three Lives』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90번으로 출간되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와 헤밍웨이를 발굴한 모더니즘 예술의 대모인 동시에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세 인생』은 스타인이 처음 출간한 작품으로 당시 혁신적 경향을 이끌며 크게 주목받았다.
독일 출신의 이주 노동자 애나와 리나. 흑인과 백인 혼혈의 유색인 멜런사. 세 사람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비주류 노동계급 여성이다. 애나는 하녀 일을 천직으로 알고 본분을 다하지만 자신을 돌보는 일엔 인색하기만 하다. 후견인 고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리나는 결혼을 앞두고 낭패를 겪게 된다. 비정한 부모를 혐오하며 심리적으로 고립된 멜런사는 완전한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막막할 뿐이다. 기댈 곳 없는 세 사람의 인생은 고달프고 팍팍하다.
인종차별, 신분 계급, 가부장 문화, 동성애 등 다양한 이슈를 대담하게 제기하는 이 작품은 서사적 · 선형적 · 시간적 관습을 깨는 혁신적인 스타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잭 케루악과 같은 후대 소설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미국 문학사에서 특별한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이 세기 문학에 거트루드 스타인만큼 자신의 흔적을 남긴 사람은 없다 [……]
20세기 글쓰기를 발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_ 『라이브러리 저널』
목차
착한 애나
멜런사
온순한 리나
옮긴이 해설·불행의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전통적 서사를 벗어난 자유분방한 형식
‘입체파 문학가’ 스타인의 대담한 도전
『세 인생』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1905~6년에 쓰고 1909년에 (자비로) 출간한 첫 작품으로 독립적인 세 작품으로 구성된다. 가상의 도시 브리지포인트에서 살고, 일하고, 사랑하는 「착한 애나」 「온순한 리나」 「멜런사」, 세 여성의 삶을 담은 이 작품에서 스타인은 형식과 언어의 대담한 실험을 시도한다. 전통적인 선형적 연대순 서술을 대신해 유의미한 에피소드들을 반복해 배치하고, 이렇게 에피소드가 거듭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성격과 심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어와 구절, 문장과 문단을 반복하는 독특한 표현 방식은 작품의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세잔, 마티스, 피카소가 눈이 시야를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스타인은 단어가 의미의 영역을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받으며, ‘입체파 문학가’라고 불렸다. 현대 미술에서 눈이나 귀가 자연스럽게 주어진 현실로 보는 것이 그 자체로 관람자의 적극적인 구성의 산물이듯, 스타인의 소설도 독자들의 의미 구성 방식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이 작품은 스타인이 현대 미술을 발견한 흥분 속에서 쓰였다. 이 작품을 쓰기 불과 몇 년 전, 스타인은 오빠 레오와 파리에서 살롱을 열고 미술 작품을 수집하며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유하고 있었다. 현대 미술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스타일이 작품에 스며든 것으로 보인다.
『세 인생』은 당시 발간한 출판사에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낯선, 혁신적인 작품이었으며, 미국 문학에 모더니즘의 지평을 연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누가 그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세 인물을 통해 그린 여성의 삶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으며, 각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세 편 모두 비주류 노동계급 여성이 주인공이며 ‘멜런사’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이 작품은 주변부 계층의 삶에 주목하여 인종차별, 신분 계급, 가부장 문화, 동성애 등 다양한 이슈를 제기한다.
‘착한 애나’는 자기 일(하녀 업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살림을 하듯 주체적으로 일을 하지만 고전적인 성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헌신하지만 자신은 돌보지 않는 왜곡된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다. ‘온순한 리나’는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인물로, 결혼과 출간 같은 중대사조차도 자기 뜻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뜻에, 그 집안의 권력자에게 휘둘리고 순종한다. ‘멜런사’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지혜와 이치를 터득하게 도와줄 사람, 진정한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사랑 속에서 권력관계에 상처 입고,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처들만 남는다.
이들의 삶은 세 갈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각 특징들의 다양한 조합이 결국 여성들의 삶이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근본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성들은 세 주인공들의 삶을 보면 부분적으로 자기 삶이 겹쳐질 것이다. 스타인은 ‘세 명의 인생’으로 세대를 넘어 여성의 삶에 대해 통찰할 수 있게 했으며, 삶의 비극을 만들어낸 사회적 문제들을 짚어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