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덟 살 아이에게서 우주의 섭리를 배우고, 시를 받아적다
- 한기옥 시집 『좋아해서 미안해』
홍천 출신으로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2003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한기옥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좋아해서 미안해』(달아실 刊)를 펴냈다. 달아실기획시집 36번으로 나왔다.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한기옥 시인이 지금까지 냈던 기존의 시집들-안개 소나타』(2009), 『세상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2019), 『안골』(2019), 『세상 도처의 당신』(2023)-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목차
1부
문 여는 사람│정비공 소년처럼 네가 와서│넌 슬프다는데│옹알이│너머에서 쓰던 말│날 내버려둬요│승강기 그림 앞에서│총 쏘는 아이│친구는 그런 거라고│흠집 난 세상에 나가거든│저 혼자 브라보│어린 왕│도둑놀이│배나무 가지를 주제넘게│작은 것에 기뻐하세요
2부
특별한 인사│짧은 인터뷰│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남이섬에서│좋아해서 미안해│질문 있어요│좋은 시 쓰세요│말놀이│속눈썹이 긴 아이│축하해│넌│저녁 식탁│산타 할아버지가 울린 아이│쿠롱│바나나차차│백일
3부
헛것을 씌우고 나만 혼자│초상화│사랑법│꽃 한 송이가 방 안에│크리스마스│바람나라 어린 왕│세상의 모든 음악 듣는 저녁│사랑밖에 난 몰라│나무가 옷을 갈아입었네│바퀴 돌리는 아이│함부로 색칠하지 마세요│봄을 부르는 아이│정수리 얼얼하다│무거운 머리를 바닥으로 퉁│부처가 따로 없다
4부
말 잘하는 아이가 무서워│뭘 더 가르칠 수 있겠니?│저 너머를 아주 떠나오지는 말았으면│네 안을 떠도는 말에 대한 생각│넌 누구니?│우리 잠시라도 봄볕 같은 시간 속에 들 수 있다면│욕심을 꿈이라고│깔깔깔 감자꽃│말문 연 아이│다만 그때까지 살아서│빗소리 거세지며│기다린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힘을│작은 거인│왜 내 몸이 종일
해설 _ 넌, 해 질 무렵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 ? 박대성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유성호 평론가는 첫 시집 『안개 소나타』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천천히 진입하면서, 안으로만 울음을 유폐시켰던 것에서 바깥으로 눈길을 돌리는 상상력의 전회를 성취하고 있다.” 라고 했고,
최준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세상 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를 “피붙이인 가족과 집, 나서면 눈 마주치는 이웃과 멀고 가까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대상들에 자신을 투영해 거기에서 우리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한다.” 라고 했고,
호병탁 문학평론가는 세 번째 시집 『안골』을 “직정의 정감을 토로하는 동시에 기층언어 특유의 친화적 호소력과 삶의 직접성과 구체성을 구현하며 독자의 정서에 호소해 오는 말들이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다.” 라고 했으며,
이홍섭 시인은 네 번째 시집 『세상 도처의 당신』를 “자연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의 삶과 생태에서 얻은 지혜와 성찰을 통해 이 삶과 세계가 살 만하다는 긍정의 시 세계가 시인에게는 자의식을 달래주는 힘으로, 독자에게는 슬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의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번 다섯 번째 시집 『좋아해서 미안해』에 대해 한기옥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 아이가/ 이 별에 온 지 8년째다.// 기선이/ 내게 와/ 말 걸어주고 놀아준/ 꿈결 같은 시간 속/ 그 빛깔과 냄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가 함께 만든/ 조그만 글들을 모아/ 다섯 번째 시집을 묶는다.”
박대성 시인은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을 이렇게 얘기한다.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한기옥이 ‘시인의 말’에서 밝히듯 올해 여덟 살이 된 손자를 만날 때마다 기록한 8년간의 기록이며 순애보다. 좋은 시는 삶의 생생한 경험을 기초로 한다.”
“사랑의 시인 한기옥은 손자 기선이의 아주 평범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산소를 길어 올린다. 무한한 산소를 머금고 있는 ‘큰 시인’ 손자 기선이를 향한 찬양과 송축의 마음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시집은 잠언으로도 읽히기도 한다.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한 권의 잠언. 이 얼마나 참다운 이야기인가. 세태가 빠르게 변하며 가족관계도 상상 이상으로 변질되어가는 요즘, 한기옥의 시편들은 가족 사랑의 노래가 되어 세상 도처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희한해라
말하지 않는데
너는 날
종일
설레게 하네
글썽이게 하네
이 별에 올 때 가져와
버려둔 마음 조각들 주워
먼지를 닦아주세요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 깊은 곳을 들여다보세요
무거운 머리를 바닥으로 퉁 던져버리세요
다시
넌 날 떠나가고
빈방인데
여문 씨앗처럼 터지는 문장들
천지사방 걸어 나와
나를 흔드네
넌 누구니?
― 「무거운 머리를 바닥으로 퉁」 전문
“누구나 저마다의 시가 있다. 생의 뒤편 어딘가에 적어놓고 온, 현실을 살아가느라 잊어버린 순수의 시. 그 시들이 기선이를 통해 ‘여문 씨앗처럼 터지는’ 것이다. 손자의 돌봄은 때론 가족 간 갈등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기옥은 그 돌봄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희한해라/ 말하지 않는데/ 너는 날/ 종일/ 설레게 하네/ 글썽이게 하네’ 손자의 돌봄은 곧 한기옥 자신의 돌봄으로 바뀐다. 손자 기선이를 만나게 된 것은 한기옥에게 커다란 선물이다. 그 선물이 말도 하고 마음도 어루만져준다. ‘당신 깊은 곳을 들여다보세요/ 무거운 머리를 바닥으로 퉁 던져버리세요’ 아이 하나가 우주며 섭리다. 한기옥이 기선이를 돌보는 동안은 별나라 은하계를 둥실 떠다니는 것이다.”
“훗날 기선이가 글눈을 떠 이 시집을 읽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라.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 할머니가 손자에게 남긴 이야기. 자신을 돌보던 이야기를 배냇저고리같이 꺼내 보며 기선이는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얻을 것인가. 할머니가 살았던 세상을 되짚어보며, 할머니같이 세상을 따뜻하게 안아주려는 그 사랑과 의지를 읽어내게 될 것이다.”
한기옥 시인은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지난 8년간 지켜보면서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니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 보여준 이야기를 받아적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놀랍게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이 시집을 읽는 당신은 비로소 알게 될지 모른다. 천국은 바로 당신의 아이 속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랑의 시와 모든 사랑의 노래는 당신의 그 아이로부터 왔다는 것을.
■ 시인의 말
그 아이가
이 별에 온 지 8년째다.
기선이
내게 와
말 걸어주고 놀아준
꿈결 같은 시간 속
그 빛깔과 냄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가 함께 만든
조그만 글들을 모아
다섯 번째 시집을 묶는다.
2024년 가을
한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