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하여
빛들이 흩어지는 일몰에는 서러움이 몰려온다. 눈앞의 풍경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금세 오는 죽음이자 죽음의 은유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상념은 상실과 슬픔과 이별 등등을 거느리며 마음을 헐겁게 흔들어놓는다. 신체 하나에 그림자 하나가 따르듯, 죽음은 애초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깃들어 있는 실체다. 이 명확함과는 반대로, ‘내 차례’의 죽음은 떠도는 풍문처럼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가릴 수도 메울 수도 없는 커다란 공백. ‘죽음’이라는 절망적 심연을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이 죽음을 바꿔놓을 수 없으나,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삶은 조금쯤 달라질 수 있으리라. “나의 쓰임새는 눈뜨면서부터/ 누군가를 향해 지저귀는 것”(「다른 쓰임새」)이라는 시인으로서의 자각과 “죽음의 책무”(「책무라는 돌」)를 깨닫는 일이 죽음에 대한 끝없는 사유의 결과이듯, 안정옥의 시가 “죽음과 삶을 같은 줄기로 가지런히 세우니/ 모든 게 잘 갖추어진 줄기다 부족함이 없다”(「반 토막」)라며 바닥 모를 깊이로 깊어지듯…….
- 신상조, 문학평론가
먼지가 많을수록 저녁노을 더 붉다
빛나는 별은 먼지와 부패덩어리
노을과 당신도 내겐 평생 미혹이다
- 「노을의 입을 빌려」 부분
노을의 입을 빌렸다지만 화자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은 “평생 미혹”되었으면서 미혹된 줄 모르고 사는 데 불과하다.
사실 미혹은 무엇에 대한 마음의 상태다. 그것은 심성을 어지럽히는 부정적 상태가 아니라 내 내면의 프리즘을 통과한, 즉 ‘나’의 내면이 깊숙이 투영된 대상을 향한 영혼의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혹자의 말처럼,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고 갈 수 있었던 시대의 행복(루카치)도 그 별을 바라보는 인간 내면에 ‘타자’에 대한 사랑이 타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을과 당신도 내겐 평생 미혹이다”란 말은 ‘내’가 당신과 노을을 평생 사랑했다는 뜻인 것이다.
안정옥의 시에서 미혹은 사랑이다. 그의 시에서 “나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가 있나/그러면 내 뒤를 캐거나 알아내려/애쓰지 마라 노을은 상처다”(「노을의 입을 빌려」 )란 부정과, “내 손이 너에게 살짝 닿았다 해도 그것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부풀려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염소의 투정조로」)라는 긍정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수십 마리 새들이 부지런히 입안으로 옮겼을/배설들도 벚나무 되고 언젠가 붉은 앵두 되”는 이치라서 “희미한 가로등 아래 새똥을 치우며,/한낮을 불평하는 밤”(「버찌감흥」)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내게 왔던 꽃들과 떠난 꽃들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로”(「꽃들의 상냥함」)라고, 노을에 홀리지 않는 이성적 ‘적막’보다 “격하게 흔들리는” ‘바깥’의 시적 순간이 있어서, 그리고 “문득 눈이 녹듯” 사라지는 “짧”(「나무 가시밭」)은 생이기에 황홀할 수 있노라 고백한다. 함께 읽을 「나무 가시밭」은 “누구나 생의 끝자락이 적막이라지만” 그러한 절망이야말로 황홀한 절망임을 말해준다.
나무들은 있음으로
제 몸이 부풀다 터지면 5월이 오고
무성한 잎들이 그늘을 맞이하면
사방 모든 걸 볼 수 있는 도마뱀처럼
나무는 별 거리낌이 없다
격하게 흔들리는 건 언제나 바깥이다
아침,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을 지나왔다
잎을 다 내린 나무들은 어두운 가지들을
속내처럼 들쳐 내 짐짓 그 길이 가시밭이다
가시들도 견디다 못해 글자의 생김새로
사람도 견디다 못해 중얼거림으로
그런 반복을 거치면 적막이다
누구는 생의 끝자락이 적막이라지만
나무가 온 삶을 비유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제 몸을 늘려대기만 한 것을
문득 눈이 녹듯
나의 온 삶은 훨씬 짧게
- 「나무 가시밭」 전문
화자는 이날 아침, 잎을 다 내린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을 지나왔다. “나무들은 있음”으로 존재한다는 화자의 성찰은 생을 의식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깨달음이다. 나무는 제 몸을 부풀려 잎들을 틔우고 그늘을 만들고, 다시 그 잎들을 내리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제 몸을 늘려대기만 한 것”에 완벽히 무감하다. “나무는 별 거리낌이 없다”라거나, “격하게 흔들리는 건 언제나 바깥이다”란 표현은 나무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생은 의식하는 존재에게만 생이다. 생을 의식하지 않는 존재에게 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문득 눈이 녹듯/ 나의 온 삶은 훨씬 짧게”란 화자의 다짐은, 눈이 녹듯 허망하게 사라질 생을 의식하는 존재에 대한 자각이자 경탄으로 다가온다. 격하게 흔들리면서, 혹은 격하게 미혹 당하면서, 그러함에도 자신의 유한성을 의식하기에 인간은 황홀하게 절망할 수 있다. 적막은 적막이므로, 꽃도 나무도 인생도 문득, 눈이 녹듯 스러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