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몸에서 눈의 귀중함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몸’을 ‘역 사’로 바꾸면 ‘눈’은 ‘사료’가 될 정도로 사료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료가 없이는 역사가 성립되지 않으며 사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역사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하고 사료에 대한 이해 능력이 곧 역사 이해 능력의 기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역사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그 이유가 정치적이든 이념적이든 결국 해결의 열쇠를 역사 그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면 이 책이 그 과정에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사료를 접하기 쉽지 않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좀 더 고민하도록 함으로써 역사의식이 제고되고 나아가 중등 역사 교육뿐 아니라 대학 역사교육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서구 중심적 역사 인식이나 중국 사 중심의 ‘동양사’를 넘어서서 다양하고 광대한 아시아사를 아시아사답게 이해하는 데도 이 책이 조금이라 도 이바지하길 바란다.
목차
1. 중국 고대사_김병준
최초의 왕조 / 서주의 봉건제 / 의후측궤(宜侯??) / 춘추 시대 맹약 / 춘추 시대의 전쟁 / 서문표 일화 / 상앙 변법 / 제자백가 / 통일 전쟁의 필요성 역설 / 군현제(郡縣制)의 실시 / 황제 칭호 /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시황 각석 / 과진론(過秦論) / 항우와 유방 / 한대의 경기 통치책 / 이년율령 호률 / 사기의 체제 / 유교의 국교화 / 한 무제에 대한 평가 / 염철 논의 / 전한 초기 한과 흉노의 화친 관계 / 흉노의 독자적 풍습 유지 / 대외 팽창 정책의 조정 / 한대 국가 원리의 변화 / 한대의 인구 / 왕망의 정치 / 적미의 난 / 후한 광무제의 토지 조사 / 당고(黨錮)의 화 (禍) / 한대 호족의 등장 / 황실 재정과 국가 재정
2. 중국 중세사_하원수
중원으로 들어온 호족(胡族)들 / 후한 말 민중의 동요와 도교 교단의 성립 / 후한 말 군웅들의 할거와 유비(劉備) / 삼국(三國)으로의 분열과 조조(曹操)의 활약 / 서진(西晉)의 제도 정비 / 전란 속에서의 자립 집단 / 재력의 중요성 /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와 귀족 사회의 고착화 / 호족(胡族)의 성장과 서진의 멸망 / 전진(前秦)의 남진(南進) 좌절과 남북 대치 상황의 고착 / 북위 왕조의 호족(胡族)적 특성 / 북위의 균전제 / 북위 효문제의 한화 정책(漢化政策) / 북조 말 다시 강화된 호족(胡族)의 풍조 / 사인(士人)과 서인(庶人)의 구별 / 사인(士人)의 명망(名望) / 남북조 시기 풍속의 지역적 차이 / 불경의 한역(漢譯)과 불교의 발전 / 북조에서의 실용 기술 발전 / 중국의 분열과 고구려의 성장 / 서역(西域)과의 교류 / 호족(胡族)적 성격을 지닌 새로운 통일 제국 / 대운하의 건설 / 수나라의 흥성과 쇠퇴 / 당나라와 돌궐의 관계 / 당 태종 시기의 현실 / 당나라의 안정과 역사의 재정리 / 통일 제국의 법제 정비 / 당의 균전제(均田制) / 과거 제도의 출현과 전개 / 무주혁명과 그 정치 / 당의 흥성과 쇠퇴 / 안사의 난과 당나라의 위기 / 번진(藩鎭)의 출현과 중앙 집권의 약화 / 양세법(兩稅法)의 시행 / 지주 계층의 성장 / 당나라 후기의 사회상 / 황소의 봉기 / 문벌 세력의 약화 / 중소 지주의 생활상 /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 형태 / 도교와 불교의 융성 / 당나라 여성의 삶 / 당 후기 사상의 새로운 분위기 / 당나라 안의 신라인들 / 동서의 문화 교류 / 중국의 문화적 특성
3. 중국 근세사1(송·원대)_이근명
오대 무인 정치의 폐해 / 송의 중국 통일 / 무인의 권한 삭감 / 황제권의 강화와 중앙 집권화 / 과거제의 개혁 / 거란의 건국과 연운십육주 영유 / 발해의 멸망과 동란국(東丹國) 건설 / 거란의 이중 지배 체제 / 전연(?淵)의 맹(盟) / 탕구트 족의 강성화 / 서하의 건국 / 서하의 북송 침공 / 서하와의 맹약 체결 / 모역법 실시의 배경 / 왕안석의 이재 사상 / 신법의 시행 / 사마광의 신법 비판 / 사대부의 책임 의식(천하관) / 학문(과거 시험)을 통한 입시 출세 / 사대부의 정치 주도 / 사대부의 계층 유동성 / 구법당 내부의 분열 / 신법당의 재집권과 구법당 탄압 / 철종의 친정과 구법당 탄압 / 북송 말기 정치 기강의 이완 / 금 건국 이전의 여진국 / 완안아골타의 요 공격 / 금의 건국 / 맹안모극제 / 북송의 멸망 / 악비와 진회 / 『근사록』의 편찬 / 주자학의 체계 / 농업 / 상업과 화폐 / 인구의 증가 / 도시의 발달 등 / 몽골 초원의 통일 / 칭기스 칸의 즉위 / 몽골 제국의 건립 / 천호제의 재편 / 칭기스 칸 시기 / 우구데이 칸의 즉위와 대외 원정 / 쿠빌라이 시기의 남송 정복과 일본 원정 /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의 대립 / 카이두의 반란 / 야율초재(耶律楚材)의 활동 / 대도(大都)의 건설과 지배 체제 확립 / 지폐의 사용 / 역참제와 시박사 등의 제도 / 서민 문화의 등장 / 인쇄술의 발달 / 과학의 발전
4. 중국 근세사2(명·청대)_원정식
주원장의 등장과 원말의 상황 / 주원장의 북벌 격문(1367) / 이갑을 편성하고 부역황책을 만들게 하다 / 토지 대장을 만들게 하다 / 어제대고를 반포하다 / 중서성과 승상 제도의 폐지를 조법으로 삼도록 하다 / 연왕 주체(朱?)의 쿠데타(정난의 역, 1399~1402) / 정화의 항해(1405~1433) / 명 전기 북변 방어의 취약성 / 명대 장성의 축조 / 등무칠의 난(1448~1449) / 명 중기 왜구와 중국인 / 장거정이 여섯 가지 정책 방향을 상주하다(1568) / 만력 연간의 당쟁 / 명 말 파당(派黨)에 대한 평가 / 명 말 반란의 원인: 섬서의 흉년 / 누르하치, 일곱 가지 큰 원한을 제시하며 명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다(1616) / 청군의 강남 정복 과정: 양주의 참상 / 청 초 지방 사회와 사인들의 동향 / 강희제, 과거 응시자들에게 현안 해결의 방법을 묻다 / 전국에 보갑제를 실시하다(1708) / 소수민족은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1724) / 사르후 전투는 제국의 시작이고 만주인 정신의 원천이다(1775) / 은의 지배가 시작되다: 은납화 / 고리대 상인과 농민 / 명 중기의 이농 현상 / 북방 변경의 삼림 남벌 / 남중국 코끼리의 소멸 / 명 말 수도로의 물자 운송과 대운하 / 휘주의 상인과 사인 배출 / 중국의 공장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명 말 강남 지역의 농촌 수공업 / 방직 노동자들의 봉기[직용의 변(1601)] / 노복들의 신분 해방 투쟁[奴變] / 고구마, 서민을 구하다 / 담배, 새로운 기호식품의 등장 / 17세기 말 남경의 책 시장 / 과거 합격만이 신분 상승의 길이다 / 전국적 미곡 유통망과 기근(1710) / 북경의 석탄을 확보하라(1762) / 18세기 사치 풍조와 양주의 소금 상인 / 광동 해적들이 연맹을 결성하여 해상을 지배하다 / 19세기 초 차의 수출에 따른 산지 개발과 그 영향 / 서양 배의 광동 입항과 출항 절차 / 마음이 곧 이(理)이다(왕수인, 1472~1529) / 자유 무역을 위한 항변(임희원, 1481~1565) / 사치의 경제학(육즙, 1515~1552) / 강력한 종족(宗族)이 없으면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염무, 1613~1682) / 군주 독재 제도 비판(황종희, 1610~1695) / 사교 천주교를 주멸하옵소서(양광선, 1597~1669) / 천주교의 전교를 허락하노라(강희제, 1692) / 『명사』 편찬과 역사 인식 (만사동, 1638~1702) / 고증의 원칙(염약거, 1636~1704) / 고증학자의 사회 비평(대진, 1724~1777) / 송학에 대한 비판(단옥재, 1735~1815) / 한학(漢學)에 대한 비판(초순, 1763~1820) / 역사 편찬학의 원칙(왕명성, 1720~1797) / 인구 증가는 비극이다(홍량길, 1746~1809) / 남녀평등 주장(유정섭, 1775~1840) /
5. 중국 근·현대사_김형종
서역에 행성을 설치하자는 논의[공자진(?自珍)] / 아편에 대한 단속이 심해질수록 폐단이 더 심해지니 응당 신속하게 변통하여 처리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허내제(許乃濟), 1836) / (은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엄밀히 막아 나라의 바탕을 북돋아야 합니다(嚴塞漏?以培國本疏)[황작자(黃爵滋), 1838] / 전표 유통에는 큰 장애가 없으니 응당 아편흡식을 무겁게 금지하여 폐단의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임칙서(林則徐), 1838] / 영국 국왕(빅토리아여왕)에게 보내려 한 격문(檄諭)의 원고[임칙서(林則徐), 1839] / 난징 조약(1842. 8. 29.) / 『해국도지』 서문[위원(魏源)] / (중·영) 톈진조약(1858. 6. 26.) / 태평천국의 토지 제도 / 태평천국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한 격문[증국번(曾國藩)] / 양식 철공소·기계의 설치에 대한 상주문[이홍장(李鴻章), 1865] / 만국 공법[윌리엄 마틴] / 서학 채용에 대한 논의[풍계분(馮桂芬)] / 해방(海防)과 새방(塞防) 및 관외 지역의 토벌 및 군량 운송 상황에 대해 다시 아룁니다[좌종 당(左宗棠), 1875] / 『조선책략』[황준헌(黃遵憲), 1880] / 중·조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 / 『의원(議院)』 상(上) [정관응(鄭觀應)] / 시모노세키 조약(1895) / 홍콩 흥중회 장정[쑨원(孫文), 1895. 2. 21.] / 변법통의[량치차오(梁啓超), 1896] / 황제에게 올리는 여섯 번째의 상서[캉요우웨이 (康有爲), 1898] / 『권학편』[장지동(張之洞), 1898] / 신축 조약(1901. 9. 7.) / 광서 신정 상유(1901. 1. 29.) / 정치학자 블룬츨리의 학설[량치차오(梁啓超), 1903] / 『중국신보』 서(敍) [양두(楊度), 1907. 1. 20.] / 민족적 국민[왕징웨이(汪精衛), 1905] / 중국 동맹회 혁명 방략(1906) / 흠정 헌법 대강(1908) / 중화민국 임시 약법(1912. 3. 10.) / 일본의 대중국 21개조 요구(1915. 1. 18.) / 경고 청년(警告靑年)[천두슈(陳獨秀), 1915] / 노라는 가출하여 어떻게 되었는가?[뤼신(魯迅), 1923. 12. 26.] / 북경 학생계 선언[1919. 5. 4.] / 조선 독립운동의 감상; 푸쓰녠(傅斯年), 조선 독립운동에서의 새로운 교훈[천두슈(陳獨秀)] / 문제와 주의를 다시 논한다[리다자오(李大釗), 1919. 8. 17.] /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 대표 대회 강령(1921. 7. 23. 러시아판의 번역) / 중국 공산당 제2차 전국 대표 대회 선언문(1922. 7.) / 중국 국민당 제1차 전국 대표 대회 선언[쑨원, 1924. 1. 23.] / 남경 국민 정부 외교부가 영사 재판권 철폐 문 제에 관해 영국의 주중국 공사에게 보낸 조회 (1929. 4. 27.) / 중화민국 훈정 시기 약법(1931. 6. 1. 공포) / 중국의 홍색 정권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가?[마오쩌둥(毛澤東), 1928. 10. 5.] / 이른바 중국 본위의 문화 건설 선언의 평가[후스(胡適), 1935. 3. 31.] / 청화대학 구국회에서 전국 민중에게 알리는 글 (1935. 12. 9.) / 중공 중앙의 국·공 합작 공포를 위한 선언[저우언라이(周恩來), 1937. 7. 15.] / 일본 파시즘에 대한 중국·한국·일본·타이완의 연대 투쟁 / 쌍십 협정(1945. 10. 10.) / 중국 인민은 일어섰습니다![마오쩌둥(毛澤東), 1949. 9. 21.] / 중국 인민 정치 협상 회의 공동 강령(1949. 9. 29.) / 중화 인민 공화국 토지 개혁법(1950. 6.) /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마오쩌둥(毛澤東), 1966. 8. 5.] /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의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에 관한 결정(1966. 8. 8.) / 네 가지 기본 원칙을 견지하자[덩샤오핑(鄧小平), 1979. 3. 30.] / 건국 이래 당의 몇 가지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1981) / 톈안문 민주화 시위와 단식 투쟁 / 남순 강화[덩샤오핑, 1992. 1. 18.~2. 21.]
6. 일본 전근대사_박수철
‘소국 분립’의 일본 / 야마타이 국(邪馬臺國) / 야마토 정권과 왜 5왕 / 쇼토쿠 태자의 헌법십칠조 / 개신의 조(詔) / 대불 건립과 도다이지(東大寺) / 반전제의 개편-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과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 / 헤이안 천도 / 섭관 정치 / 후지와라의 번영 / 국사(國司)의 가렴주구 / 장원의 기진(寄進) / 원정의 시작 / 승병 / 조헤이(承平)·덴교(天慶)의 난 / 헤이시(平氏) 정권 / 슈고·지토의 설치 / 조큐(承久)의 난 / 싯켄(執權) 정치-고세이바이시키모쿠(御成敗式目) 제정의 취지 / 가마쿠라 법령 / 몽골·고려의 일본 침공 / 가마쿠라 후기의 사회상-악당(惡黨) / 가마쿠라 불교와 사상 / 겐무(建武) 정권 / 반제령(半濟令) /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국서 / 도잇키(土一揆)와 잇코잇키(一向一揆) / 하극상의 사상 / 삼모작의 출현 / 오닌(應仁)의 난 / 아시가루(足輕) / 전국법(戰國法) / 총(鐵砲)의 전래 / 엔랴쿠지(延?史) 방화 / 아즈치 성 천수각(天秀閣) / 다이코 검지(太閤檢地) / 무기 몰수령(가타나가리 령 刀狩令) /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 / 천황·조정의 통제-금중병공가제법도(禁中幷公家諸法度) / 농민 통제 / 쇄국령 / 살생 금지령(쇼루이아와레미령 生類憐みの令) / 독사여론(讀史餘論) / 교호(享保) 개혁-다시다카 제(足高制) / 교호(享保) 개혁-메야스바코(目安箱) / 다누마(田沼) 정치
7. 일본 근·현대사_박 훈
칸세이(寬政) 이학(異學)의 금지령 / 텐포(天保) 개혁과 도시 문제 /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의 격문 / 19세기 초의 러시아 위협론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해외 팽창론 / 새로운 근대 국가 구상 / 막부, 천황에 정권 반환 / 천황 정부의 수립 / 메이지 정부의 대외 화친 방침 / 메이지 정부의 국시 / 국회 설립의 요구 /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의 식산 흥업에 관한 건의 /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처럼 되자! / 대일본 제국 헌법과 현행 일본국 헌법의 천황 관련 조항 비교 / 천황이 신민에게 주는 교육 칙어 / 주권선·이익선의 국방 구상 /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청·일 전쟁관 / 입헌 정우회의 설립 / 해외 팽창을 반대하는 목소리 / 타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의 흥기 / 치안 유지법 / 동방 회의(東方會議)와 일본의 중국 정책 / ‘대동아 공영권’의 제창 / 히로히토 천황의 종전 선언 / 천황의 인간 선언
8. 동남아시아사_유인선
임읍(林邑, Linyi) / 부남(扶南, Funan) / 베트남 건국 설화: 홍방전(鴻龐傳) / 7세기 의정(義淨)의 수마트라 방문 /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 앙코르 왕조의 도성(都城; 앙코르 톰) / 람캄헹 대왕 비문(1292) / 평오대고(平吳大誥, 1427)-베트남이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강조 / 싱가포르의 성립(1819)(Raffles’ Letter to Colonel Addenbrooke. 1819년 6월 10일) / 영국의 말레이반도 식민화[1874년 1월 20일 빵꼬르 협약(Pangkor Engagement)] / 영국의 말레이반도 식민 경영(1896년 3월 Sir Frank Swettenham의 「말레이 통치」 연설) / 1826년 얀다보 조약(Treaty of Yandaboo; 미얀마 남부의 일부가 영국에 할양됨) / 태국 출라롱콘 왕(1868~1910)의 교육 개혁에 대한 선언문 / 제1차 후에(Hue) 조약(1883년 8월 25일)(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점령) / 근왕조(勤王詔, 1885년 베트남 황제가 프랑스군에 저항하기를 호소하는 글) / 까르띠니의 서한(1899)(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맹아) / 판 보이 쩌우(潘佩珠)의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 1932년 태국의 쿠데타 성명서(태국은 이로부터 입헌 군주제로) / 마젤란 관련 비문 / 싱가포르의 일본군 「군정총감 지시」(1942)(일본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청사진) / 1945년 호찌민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 독립 선언문 / 빤짜실라의 탄생(1945년 6월 수카르노의 연설: 인도네시아 국가 건설의 철학적 기반) / 1947년 빵롱 협정문(미얀마 諸民族의 통합) /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의 분리(1965) / 캄보디아 시아누크(Sihanouk) 왕의 저작 중에서(베트남에 대한 적대감) / 1973년 파리 평화 협정(베트남 평화 협정) / 아세안 선언(방콕 선언, Bangkok, 1967년 8월 8일) / 국명, 국기, 국가 휘장, 수도, 국가에 관한 의결(1976년 7월 2일, 하노이) / 베트남 도이 머이 정책 채택(제6차 전당대회, 1986년 12월 15일~18일) / 아웅산 수지는 로힝야 무슬림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 동티모르 독립을 환영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성명서(2002년 5월 20일)
9. 인도사_이지은
고대 인도인의 시간과 역사관 / 아리안 사회의 목축 / 불교의 윤리적 실천에 대한 가르침 / 기원전 6세기경의 16대국(Mah?anapada) / 고대 인도의 공화제 전통 / 마우리야 제국의 재무 행정 / 다르마에 의한 고대 제국의 통치 원리 / 고대의 상공업 길드와 투자 / 고대 신분제 사회 / 굽따 시대의 토지 수여 / 후기 굽따 시대의 군사와 세무 행정 / 후기 굽따 시대의 영토와 세력 / 마흐무드 가즈니의 인도 침략 / 11세기 남인도 촐라 왕국의 판도 / 이슬람의 인도 진출과 델리 술탄 왕조 수립 / 13세기의 여성 술탄 라지야(Raziya, 재위 1236~1240) / 빠니빳 전투(1526) / 무갈 시대의 관료제-만삽 제도 / 토지의 등급과 토지세, 기타 세금 / 아크바르 황제의 관용적 종교 정책-이바다트 카나의 설립 / 시크교의 가르침 / 아우랑제브의 지즈야 재징수 명령 / 비자야나가라의 위용 / 영국과 인도의 공식 상업 관계 시작 / 17세기 무갈 제국의 무역 관계 / 1765년 동인도 회사의 벵골 조세권 확보 / 1857년 항쟁의 원인 / 1857년 항쟁 이후의 정치적 변화 / 부의 유출과 인도의 빈곤 / 인도국민회의의 성립 / 벵갈 분할 / 인도의 스와라즈(Hind Swaraj) / 지방 정부의 권한과 지방 입법부 신설 / 소금 사띠야그라하와 시민 불복종 / 1935년 인도정부법의 지방자치제와 지방 선거 규정 / 카스트의 철폐 / 파키스탄 선언 / ‘인도에서 손을 떼라!’- 인도 철수 운동 / 자유 인도(Azad Hind) 임시 정부 선언문 /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 독립 인도가 나아갈 길 /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방글라데시의 탄생 / 신경제 정책(1991)
10. 서아시아사_이은정
꾸란의 開經章(Surah al-Fatihah) / 하디스(had.th)(알 부하리) / 하디스(무슬림) /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의 죽음(알 타바리) / 튀르크 인의 미덕(알 자히즈) / 십자군 전쟁의 이유에 대한 무슬림들의 생각(이븐 알 아시르) / 몽골 침략의 참상(이븐 알 아시르) / 오스만 제국의 창업군주 오스만 가지의 꿈(아식파샤자데) / 콘스탄티노플의 정복(투르순 베이) /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1774) /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알 자바르티) / 발타 리마느 조약(영국·오스만 통상 조약) / 귈하네(장미원) 칙령 / 에르네스트 르낭의 이슬람 비판에 대한 자말 앗딘 알 아프가니의 반박 / 청년 튀르크 망명자의 일본과 오스만 제국 비교: ‘터키와 일본’ / 밸푸어 선언 / 독립 전쟁 회고록(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누툭) / 1961년 12월 23일 승전 기념일에 포트 사이드(Port Said)에서 가말 압둘 나세르가 한 연설 / 이슬람적 정부(아야톨라 호메이니) / 미국에 대한 지하드(오사마 빈 라덴)
11. 내륙아시아사_정재훈
헤로도토스의 스키타이에 대한 기록 / 흉노의 습속과 정치 체제 / 한대 장건의 서방 여행과 교통로 / 사마천과 반고의 흉노 인식 차이 / 미완의 유목 제국. 유연(柔然)의 유래와 습속 / 돌궐이 유목 세계를 통합하려고 차용한 다양한 건국 신화 내용 / 돌궐과 로마의 교섭(사산조 페르시아, 에프탈, 그리고 서돌궐) / 소그디아나와 소그드 상인 / 현장의 여행길: 소그디아나로 가는 길과 서돌궐의 하영지 / 돌궐의 과거 기억과 유훈 / 위구르 초기의 정치 체제 / 위구르 정주적 요소 수용과 견마무역 / 위구르의 마니교 수용 / 토번의 정치 체제와 습속, 그리고 당조와의 혼인 관계 / 10세기 고창 위구르 왕국에 대한 왕연덕(王延德)의 여행기 / 요대(거란) 황제의 계절 이동 / 칭기스 칸 등장 이전의 몽골에 대한 기록 / 우구데이 칸의 잠치(역참) 설치 / 몽골 제국이 만들어 낸 세계사: 『集史』의 저술 동기 / 티무르조 샤 루크와 명조 영락제의 외교 교섭 / 모굴한국 최초의 군주 투글룩 티무르의 이슬람 개종 내력 일부 / 17세기 전반 오이라드시기 티베트 불교의 몽골 전파 / 후대 몽골인의 과거 역사 회상 : 오카가토 카안은 자신의 도시를 이렇게 칭송하셨다 / 18세기 청조의 동투르키스탄(신강 新疆) 점령과 지배 / 1864년 신강(新疆)의 회민(回民) 반란과 야굽 벡 정권, 그리고 신강성 건성 /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 목적 / 1911년 몽골의 독립 선언 / 몽골인민공화국 헌법(19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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