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향은 잃게 마련이고 그리움은 더욱 사무치는 것이지만 근대시의 역사에서 정지용이 언급한 이래로 고향 상실의 모티브는 확대 재생산되다가 급기야는 상투화되었지만 고향에 대한 상념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가진 숙명인 불완전함, 결핍, 미성숙,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고 혹은 도무지 모르겠는 자기 존재와 존재의 정당성을 납득치 못하는 답답함에서 발로한 소이연所以然이 아니었을까?
귀신과 도깨비, 조상님들과 우주인의 존재는 과거로부터 현신現身한 미완未完의 사자使者로서, 불안한 삶을 사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교신을 보내온다. 하지만 누구나 다 거기에 응답하는 것은 아닌 것이, 홀려 살거나 들떠 살거나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에 극소수의 결핍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신호를 받고 제 나름의 언어와 말투로 발신하는 사정이 그러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적 화자는 무격巫覡 소리꾼의 빙의憑依를 복화술複話術로 발화함으로써 외계 존재의 육성과 자신의 목소리를 뒤섞어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개별화하여 조화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두 목소리의 분별과 혼합은 외계의 사정은 소리대로 살리면서 화자의 줏대와 역사의식, 시적 기율을 보여준다. _전상기(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목차
1부 내 그리운 고향
오솔길 _19
고향 _20
밤하늘에 흐르는 흰 점 _21
우울해지면 먹는 약 _22
문헌서원 _23
길산 _24
영화배우 김진규 _25
선돌이 _27
있잖여 _29
승학아 승학아 _30
한 짐 지고 _32
재뜸 재종할매네 초막 _33
할머니의 방 _34
장님 악사 _36
하굿둑 _38
서울, 돌아갈 수 없는 _39
내 그리운 고향 _40
2부 家傳
민며느리 _43
증조할아버지 박성하 _44
家傳 _46
종조할아버지 _48
초분 _50
두남리 당숙모 _52
두 번째 홍역 _53
엄마 때리지 마 _54
오시래 안의 엄마 _57
적 읽다 _58
사랑은 언제나 _60
가슴에 털 난 사나이 _62
3부 개밥바라기
그 추운 날 _67
두레 _68
갑오난리 때 말이다 _69
공출 _73
전란 _76
귀신이 흐느끼는 땅 _77
노름꾼 박우용 遺事 _85
판교 _90
그 시절 _92
남장 여인 김옥선 _94
1970년 무렵 금강하구 _96
부르조아라는 귀신 _98
종전 _100
백마고지 _101
서천 가는 길 _103
울타리 꽃 _105
개밥바라기 _107
4부 건지산 범바위
신령 _111
나의 임종 _112
돌배 웃다 _113
뒷동산 참나무 구멍 꿀 익는 내음 _114
건지산 범바위 _115
상괭이란 놈이 _117
낮도깨비 _118
박서방 상괭이 타고 가더라고 _119
할매 가라사대 _121
멀고 아득한 이야기 _123
고향이 들려주신 이야기 선물 _125
보령 남포가 친정인 외할매가 들려주신 이야기 _126
조로 간다 _127
추리대마왕 _130
갈바탕이 끝없이 펼쳐졌던 시절이 있었단다 _132
해설 _ 충청도(인)의 줏대와 호흡, 말투의 능청스런 웃음의 맛 _135
전상기(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스무 살 무렵, 어디 박혀 월급 받아먹으며 살 천성은 못 되더란 걸 익히 알겠어서 글 써서 먹고 살리라 마음먹었으나 역마살이 가냥 안 뒀는지 막노동판을 싸돌았다. 거기다 속 불을 못 다스려 소리에 미쳐 또 한세월 묵새겼다. 어지저지 여자가 생기니 새끼가 따라 나오더라. 시절이 또 난리라 정신 못 차리다 예까지 왔다. 급히 낸 풍신 난 시집이 한 권뿐.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니 마음만 급해져 세상에서 내 가진 유일한 기술, 시 쓰는 짓거리로 들은 이야기, 몸으로 때운 이야기 중 만사 제치고 우선 고향 이야기부터 남긴다. 쓰다 쓰다 하늘이 부르면 가는 것이고 시 나부랭이가 다 되어도 안 부르면 맘먹은 희곡과 대본 한두 권 남기면 좋고. 헌데 사방이 저리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눈앞에 환하던 기억마저 띄엄거린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떠올리려 용을 써도 게으름뱅이에게 하늘은 한 치의 용인이 없더라. 불쌍한 건 처자식이요 죄송한 건 돌아가신 어르신들이다. 평생 괴롭힌 시 귀신이야 어디서 굶어 뒈지라지. 이제 거의 돌아가셨다. 어디에 여쭐 수 없이 기억을 쥐어짠 기록이다. 시의 형식을 빌렸으나 시인지 모르겠다. 그런 시절도 있었더라 자손께 전하는 절실함이다. 내가 아는 만큼 썼다.
- 우이천가에서 박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