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감성X경제』는 대학입학, 육아, 장기매매, 경제발전 등의 주제를 경제학과 문학 양자의 관점으로 살펴본다. 두 저자는 경제학이 추상 개념에 빠져 인간 존재를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에서 개인의 결정을 이해하려면 개인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인문학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며, 국가나 대학에 수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다’는 것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라면 인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면, 인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인문학의 가치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문학으로부터 윤리적 문제의 복잡성, 이야기의 필요성, 공감의 중요성, 공식화할 수 없는 올바른 판단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 또한 경제학으로부터 희소한 자원, 효율성의 본질, 합리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목차
01?? 스푸핑 발견하기: 학교 밖(과 학교 안)에서 스토리텔링의 가치
쌍둥이 위기 | 탈인문학 | 휴머노믹스(Humanomics) | “진짜” 애덤 스미스의 귀환 | 학교 안팎에서 스토리텔링의 가치 | 두 가지 이야기
02 판단을 향한 느린 걸음: 고슴도치와 여우, 지혜와 예측
03 경제적 접근법의 힘과 한계: 사례 연구 1―미국 고등교육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록 관리 | 누가 학부생을 가르치는가? | 자료 공개(Data Reporting) | 주정부 운영 보조금 나눠 먹기 | 등록, 수료 및 매칭에 대한 연방 정부의 관심
04 사랑은 온 세상에 가득하다 … 적어도 오차항에는 있다: 사례 연구 2-경제학자가 가족에 관해 가르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선호도는 변할까? | 내밀함의 경제학 | 자녀 | 죄와 벌 | 경제모형에 대한 세 가지 반응 | 비합리성의 비합리성 | 신장 판매 | 여우다움으로 경제 인구통계학에 접근하기
05 궁극의 질문: 사례 연구 3-왜 어떤 국가는 빠르게 발전할까? 경제학, 문화 및 제도
지리학의 고슴도치 | 여우다움을 가진 여타 경제학자들 | 고슴도치의 해악
06 인문학의 정수
인문학을 정당화하기 | 흔히 가르치는 인문학 | 왜 그냥 스파크노트(SparkNotes)를 읽지 않나? | 인간 극복하기 | 캐릭터와 나노 캐릭터 | 윤리와 이야기 | 내면으로부터의 경험 | 세계화 | 세계문학과 커리큘럼 | 글쓰기과 논증 | 결론
07 애덤 스미스를 탈고슴도치화할 수도 있는 경제학
동정심과 공감 | 반이론으로서의 이론 | 소설가 스미스 | 부정적 다원주의 | 보이지 않는 손 다시 생각하기 | 인문학자가 경제학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 인문주의와 행동 경제학
08 휴머노믹스: 여러 학문의 대화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 충분치 않다
경제학은 자부심이 강한 학문이다. 미국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절반 미만만이 다른 분야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 교수 79%와 사회학자 73%는 학제 간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나, 경제학자 중 42%만 이러한 견해를 지지했다.
경제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를 진지하게 다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간 행동에 대한 대부분의 경제학 모형은 심리학을 무시하고, 빈곤의 순환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무시하며, 과거에 대한 분석은 역사가들을 우회한다. 마치 여타 다른 학문 분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훌륭하지만 모든 답은 엄밀한 경제학만이 가지고 있다는 듯 말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방법, 대학이 학생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익을 추구할 때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라든가, 건강 관리나 결혼, 가족에 관한 매우 개인적인 문제까지 고려할 때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수학에 기반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문화 인자를 규명하는 것, 내러티브(서사적) 설명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 범주로 환원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 등이다.
문학 읽기,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것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화성이 태양 궤도를 도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수나 뉴턴 역학과 달리 삶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야 하는 ‘내러티브성(서사성)’을 지니고 있다. 내러티브 자체의 가치 및 서로 다른 시대가 어떻게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최고의 이해는 위대한 사실주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 소설은 단순한 문학 형식이 아니라 사회 세계를 이해하는 명확한 방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소설이 묘사하는 사건은 허구이지만, 그 형태와 순서, 파급효과는 종종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리고 소설이 옳고 그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레프 톨스토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의 소설들은 하나의 이론으로 해석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윤리적 질문, 즉 올바른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의 복잡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에 몰입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를 내면에서 느낄 수 있다. 다른 사회계층, 성별, 종교, 문화, 성적 성향, 도덕적 이해, 또는 인간의 경험을 정의하고 차별화하는 기타 범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등장인물의 삶을 대리 체험함으로써 그 인물의 감정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 감정에 대해 성찰하고, 그 감정이 이끄는 행동의 본질을 생각해보며, 연습을 통해 실제 인간을 풍부하게 이해하는 지혜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 속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어떤 학문 못지않게 경제학에서도 중요하다. 인간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행동하려고 하는 바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조차 이러한 관념을 의심했으며 거부했다. 그의 명저 『국부론』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이를 보완하는 ??도덕 감정론??도 함께 읽어야 하는데, 스미스는 인간 행동을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인간은 때때로 어리석은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은 이기적인 관심으로 환원될 수 없는 ‘원시적인 열정’이다.
왜 인문학은 쇠퇴일로에 처했을까?
하지만 문학이 그토록 가치 있는 학문이라면 왜 문학, 더 넓게는 인문학은 쇠퇴일로에 처했을까? 이 분야의 대학 등록률과 전공자 수는 계속해서 급감하고 있으며, 이 분야 교수들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이 “학생들의 관심사는 오직 돈뿐”이라며 “트위터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무뇌충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비난한다. 경제학자들은 당연히 시장의 쇠락을 소비자의 나쁜 취향으로 돌리는 설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수십 년 동안 많은 문학 교수들은 헤게모니적 억압의 힘이 있다고 믿도록 우리를 세뇌시켰기 때문에 ‘위대한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위대한 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만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밀턴, 톨스토이가 다른 어떤 글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면 왜 상당한 노력을 투자해서 읽어야 할까? 『실낙원』은 어렵고 『전쟁과 평화』는 길다. 많은 학생들이 위대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중등교육기관을 떠난다. 시험은 문학에 대한 사실적 지식을 테스트하고 있을 뿐이고, 실제로 문학에 대한 이해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위대한 수학자들의 탄생 연도를 질문하면서 수학에 대한 이해도를 테스트하는 것과 같다.
문학에서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왜 충분하지 않은지, 그리고 위대한 작품을 주의 깊게 읽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에 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문학을 제대로 배우거나 공부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학이 소설에서 깊이와 넓이를 가진 이해를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할 때는,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와 통찰의 원천으로서의 위대한 문학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당신이 고전을 읽었더라면……
2014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한 후 미국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어떻게 대응했었나? 미국과 유럽에서 각종 농산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자체적인 제재를 두 배로 강화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비이성적’ 행동에 당황할 수 있지만 러시아 문학의 고전을 읽었다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인은 일반적으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인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민족은 흥망했지만 러시아는 남았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고통은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삶을 정당화하고 의도적으로 포용하는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어떤가? 실제로 많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지 않았던가? 이는 경제학자들에게 이단일 것이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지하에서 쓴 수기??에서 묘사했듯이 유권자 중 일부는 경제학자들이 이해하는 이기심에 의도적으로 반하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시혜적 태도의 분위기와 이미 알려진 ‘변량’이라는 가정에 직면하여 (반발심을 가지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의 인격과 개성을 주장”하기 위해 행동했을 것이다.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경제학이 변화할까? 물론 그럴리는 없다. 하지만 역사,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종교 등과 함께 문학, 철학, 기타 인문학에서 배움으로써 경제학이 인간 행동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모형을 개발하고,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예측이 정확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더 효과적이고 공정한 정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