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대담한 서정의 극치
‘악의 성자’ 주네가 어두운 감방에서 쓴 첫 걸작
1943년에 나온 주네의 첫 장편소설 『꽃피는 노트르담』은 작가가 1942년 서른둘의 나이에 프렌교도소 수감 당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이 자국을 비롯해 각국에 소개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51년 영미에 소개할 때만 해도 작가가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했으며, 1960년 독일 출간 당시에는 곧바로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되어 2년이 지나서야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이 소설을 처음 읽고 문단에 소개한 장 콕토는 기존의 프랑스 문학장을 깨부수며 새로운 서정을 선언하는 ‘폭탄’과도 같은 주네의 이 책을 “이 시대의 위대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격분시키고 질색하게 하며 놀라게” 한다며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 우리 앞에 외로움과 어두운 별의 반짝임이 있다”고 칭송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미국 방문 당시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프랑스에서 유일한 천재 작가가 있다면, 바로 장 주네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그를 추천했다.
주네는 이 소설을 죄수가 되어 갇힌 채 감옥에 비치된 누런 종이에 혼자만의 즐거운 ‘소일거리’로서 써내려갔다. 수감생활에서 무한정 뻗어나간 자신의 환상세계에서, 그는 무한과 교류하는 내적 삶의 진실한 자유를 구현하려 한 것. 프렌교도소 429호에 수감된 ‘나’는 언제 세상에 나갈지 모른 채 신문에서 오려낸 범죄자들(“무시무시한 영혼이 빙의하도록 선택된 몸뚱어리들”)의 사진으로 벽을 장식해놓고는, 밤이면 어두운 구렁을 빠져나온 분신 같은 그들을 통해 다른 삶을 꿈꾼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의 불안과 고독이 피워낸 관능적인 상상세계에서는,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추방당한 죄수들이 활달한 젊은이로 선악의 제도 없이 활보하는 해방된 거리에서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랑’의 신성함만이 함께한다. 소설 속 화자 ‘나’는 디빈(‘신성’이라는 의미가 깃든 이름)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뒤섞인 트랜스젠더이자 파리 밑바닥의 유명한 매춘부 디빈을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독자는 그(녀)의 삶과 그의 포주이자 연인 미뇽, 게이-트랜스 친구들, 디빈의 유년기와 삶 속에 들어온 연인들, ‘꽃피는 노트르담’이라는 디빈의 연적이자 젊은 살인자를 만난다. 결국 디빈을 통해 차려진 이 몽상의 제단은 감금당한 죄수의 판결이 행해지는 법정의 엄연한 현실로 돌아오고, 그들의 존재를 비추던 자유의 별칭은 재판장에서 실명으로 호명당하며 (서두에서 죽은 디빈의 장례식에서 모두 모인 그들 역시) 차례차례 심판대의 이슬로 화한다. 전위적인 이 작품은 오늘날 세계문학의 필독서이자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 르몽드 선정 ‘20세기 책 100선’
목차
꽃피는 노트르담 9
해설 | 진실 이상의 진실로 화하는 몽상 341
장 주네 연보 347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한 죄수의 고독과 자유가 꿈꾼 진실 ‘존재의 관능’
악의 형이상학과 범죄의 현상학 사이의 엑스터시
“나는 내 욕망을 포기한 사람이다. (...) 사람 사는 평생을 나 이 벽들 사이에서 지내게 하라. 내일 누구를 판결할 것인가? 한때 내 것이었던 이름을 가진 어느 낯선 자겠지. (...) 진짜든 가짜든 내가 디빈의 어깨에 올려놓은 것은 나의 운명이다.” _장 주네
감방에 갇힌 죄수 ‘나’. 그는 교도소 생활 수칙이 적힌 패널 뒷면에 신문에서 오려낸 20여 명의 살인자 사진을 간수들에게 보이지 않게 붙여두고, 밤이면 그들을 하나하나 몽상으로 불러내 자신만의 왕국을 펼친다. 주네는 교도소에서 이 첫 소설을 쓰면서, 모리스 필로르주에게 헌사를 바쳤다.(첫 장시 『사형수』 헌사에도 등장하는 이 인물은 애인을 살해하고 푼돈을 훔치다 법정에서 재판부를 조롱하며 이십대 때 처형된 실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그들 모두의 범죄 행각을 기리기 위함이다”라고 밝힌바, 여기서 ‘그들’은 살인과 반역죄로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감금되었다가 법정 단두대에서 처형된 범죄자들, 제도권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낙오자들로, 소설 초반부터 “이미 죽은 몸들”이다. 데리다로부터 사사하고 주네 연구를 하기도 한 우카이 사토시는 주네의 작품세계의 핵심이자 시원이 “사자死者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했다. 공포에 떨며 재판과 형을 기다리는 죄수 주네는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자처럼 제 사랑의 운명을 의탁한 디빈이라는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내세워, 그들 죽음의 제단에 바치는 희생제물처럼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선의를 제거한 채 신에 쉬이 호명당하지 못할 무의미 또는 반의미로서) 그녀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장례식에 모두 모인 ‘그들’은 디빈의 삶과 사랑의 비극을 수놓았던 인물들로, 죽은 디빈의 삶의 행적을 따라가며 이 살인자들(미뇽, 알베르토, 고르기, 가브리엘 등) 하나하나와의 만남이 그려진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의 별칭과 실명 사이의 간극이 자아내는 시적 긴장이다. 어쩌면 여기 나오는 모든 별명이 이 땅에서 더이상 죄인으로 호명당하지 못하도록, 이름하지 못하도록 신성의 화환을 둘러놓은 셈. 그는 머릿속에서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어떻게 그들이 관계하고 서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를 독자에게도 상상해보라 건네면서, 자신이 쓰는 이야기 전개 과정과 독자가 읽는 행위의 흐름을 동시적으로 상호적으로 자극하며 서사를 짜나간다. 독자와 저자의 눈을 하나씩 달고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텅 빈 하늘의 왕좌를 악의 에너지로써 찬탈해나가는 주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매달린 그의 상상 속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황홀과 공포, 가장 밑바닥에 있는 벌거숭이 ‘인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선악의 세계 저편에 있는 존재의 자유이기에, 주네는 결박당한 자신을 대신해 디빈의 어깨에 자신의 운명을 올린 것이다. “오직 그만을 위해 작성된 시, 다른 어느 누구도 열쇠를 소지할 리 없는 난해한 시”로써.
한편 이 책의 표제로 내세운 ‘꽃피는 노트르담’은 마약 딜러이자 살인자로, 디빈의 연인인 기둥서방 미뇽과의 사이에 연적으로 등장하며 그를 본 모든 이를 황홀한 매혹으로 이끄는 자다. 주네는 이 인물을 통해 디빈의 고독한 사랑을 파국으로, 무한과 교류하는 존재의 가능성으로, ‘존재의 관능’ 그 자체로 이끈다. 주네가 “필로르주를 향한 나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고백한 인물 ‘꽃피는 노트르담’은, 사방에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어리밖에 없는 감방의 한계상황에서, 디빈과 ‘나’의 운명을 짊어지고 세계의 저편으로 나아가게 하는 돛인 셈이다.
주네의 자전적 작품이 녹아든 국내 초역의 무삭제 완역판
“주네가 걸어온 어두운 삶의 궤적을 넘어 『꽃피는 노트르담』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갇힌 자의 글쓰기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네의 정신세계에서 범죄는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하여 완벽한 고독을 창출하는 조건이다.” _옮긴이 성귀수
장 주네는 평생 ‘낮고 부도덕하고 추한 것들’ 편에서 시대의 편견과 금기에 맞서온 작가이자, 말년에는 68혁명부터 난민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 흑인민권운동, 성소수자운동, 팔레스타인해방운동 등 정치적 사회문제에도 활발히 참여한 운동가다. 혼외자로 태어나 절도와 부랑과 매춘으로 연명하면서 열여섯부터 삼십대 후반까지 교도소를 수없이 들락거리다 계속된 범죄로 종신형과 유배형에 처하기도 했으나 장 콕토, 사르트르, 피카소, 자코메티 등 문화예술가들의 탄원으로 사면된 그는 작가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또한 이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매춘부, 범죄자, 흑인, 군인, 동성애자 등 대부분 제도권이나 문학사에서 배제된 인물들이다. 이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사회가 죄악시하거나 지배체제의 질서 유지에 위배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서 새로운 자유의 신성함, 진실의 미를 구현하려 한 그의 세계관과 궤를 같이한다.
사르트르는 그를 ‘성聖 주네, 악의 성자’로 칭하며 평전 『배우이자 순교자, 성 주네』를 썼다. 미시마 유키오, 아니 에르노, 디디에 에리봉 등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예술인에 영향을 끼친 주네. 수전 손택은 프랑스문학사에서 그를 ‘다시없을 작가’로 꼽았고, 데이비드 보위는 이 소설 속 ‘디빈’ 역할에 관심을 보인데다 장 주네 이름을 패러디한 곡 [진 지니]를 발표하는가 하면,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패티 스미스 등 미술계 작가들도 그로부터 받은 충격과 영향을 진진한 태도로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 대학로에서 그의 연극은 매년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토드 헤인즈의 [포이즌],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케렐] 등 영화계 역시 주네의 자장하에 만들어진 영화들로, 그가 끼친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프랑스에서 비용, 로트레아몽, 보들레르, 사드, 랭보, 아르토 등 속칭 ‘저주받은 작가’ 계보로 이어지는 악에 대한 시적 형이상학을 탐구한 주네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로 문학사에서 새로운 서정을 일깨운 작가다. 문학계에 폭발과도 같이 등장한 그는 사회의 율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괴물 같은 이단아로 취급받았지만, 고독한 감방에서 펜을 든 그는 어떤 신성함을 갈망하는 ‘세계의 저편’을 드러내는 새로운 왕국의 수호자다. ‘독방 감금’ ‘유배형’ ‘강제노동’ ‘사형’ ‘극형’ 등이 적힌 감옥 복도에서, 간절한 작별인사 또는 억눌린 진실이 적힌 감방 벽의 낙서들에서, 주네는 저속한 것과 순수한 것을 뒤섞어낸 자신만의 문법으로 고독과 자유의 펜을 들어 탈주하는 몽상의 서사시를 써냈다. “나의 내밀한 삶의 한 조각”이라고 말한 이 책 『꽃피는 노트르담』은 초판 발표 당시의 무삭제판을 완역한 것으로, 주네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풍성하고 급진적인 재발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