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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마스크제공)

15,930 17,700
제조사
새움
원산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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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위의 문장은 출판사의 소개글이 아니다. 카뮈가 1958년에 『이방인』에 대해 한 말이다. 카뮈는 이 책의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파멸한 사람이 아니라, 가엾고 벌거벗은, 진실에 대한 열정으로 움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카뮈의 말에 기댄다면 『이방인』은 어렵게 읽힐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방인』을 쉽게,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떤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카뮈의 소설에 도전한 사람들도 읽고 나서는, 정말 재미있었다, 감동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려온 전보를 받고, 요양원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 불행하게도 해변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이야기다.

목차

작가의 말·5

1부 · 11
2부 · 83

역자 노트 : 『이방인』 불영한 번역 비교 ·156
알베르 카뮈 연보·319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뫼르소, 그를 바라보는 사회

결코 어렵지 않은 구도를 갖고 있는 이 소설의 핵심은 어떤 ‘사회적인 약속’ ‘종교’ ‘관습’에 편승하거나 굴복하지 않은 한 젊은이가,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 ‘법’에 짓눌려 타살당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토록 선명한 구도를 갖고 있는 『이방인』이 왜 어려울까. 아니, 정확하게는 왜 어렵게 ‘읽힐까’. 소설의 저간에는 ‘철학적인 질문’이 두텁게 깔려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번역’ 때문이었다.

그간 『이방인』은 ‘부조리 소설’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며, 그 틀에 갇혀 역자나 독자들을 억압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강렬한 햇빛’ 때문이었다는 뉘앙스가 강했고,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길을 잃었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가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인, 사제와 나누는 대화도 독자들이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 바탕에 흐르는 ‘뫼르소’의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대답이 ‘변명’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난해한 부조리 소설이 아닌,
가슴 깊은 울림의 새로운 『이방인』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에는 뫼르소의 살인이 햇빛 때문이 아닌, ‘정당방위’로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고, 또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카뮈가 왜 ‘뫼르소’를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라고 했는지, 그 맥락을 뚜렷이 짚어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법정에서 뫼르소가 한 말들, 그의 내면의 흐름, 신에 대한 생각들을 읽으며, 왜 이 소설이 세계적인 고전인지도 마음으로 분명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방인』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역자 해설에는 『이방인』에 대한 불어?영어?한국어 비교번역과 번역비평이 실려 있다. 지금껏 우리는 외서에 대한 한국어 번역을 비교해보기는 했지만, 외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영어 번역’들을 비교해보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시도는 지금껏 없었다.

프랑스어인 『이방인』을 영어로 번역한 두 번역문을 비교해서 읽다 보면, 원문에 가깝게 ‘직역’한 문장과 역자의 느낌이 과도하게 반영된 ‘의역’의 그 놀라운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다.

왜 번역가 이정서가 지금까지 그토록 원작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직역’을 주장해 왔는지, 설득력 있게 느낄 수 있다.

[편집자 리뷰]

수천만 세계인들이 번역해 읽는 최고의 소설, 그럼에도 새 번역서는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작품에 대한 오해는 그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L’ETRANGER』은 지금까지 수천만 세계인들이 읽어온 최고의 소설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번역서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기존에 널리 읽히고 있는 번역서의 역자 역시 여전히 개정판을 내고 있다.

왜일까? 그건 바로 완벽한 번역서가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아직까지 정확한 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번역자들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정확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 책의 역자이자 저자인 이정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불어문장에 대한 번역은 단순한 영어와 달리 한글로는 원래 문장의 서술구조 그대로 번역하면 정확한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정서는 우리말로 가장 잘 번역되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번역서 외에도, 메튜 워드(Matthew Ward)와 스튜어트 길버트(Stuart Gilbert)의 영어 번역서와의 대조를 통해 그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같은 영어로의 번역임에도 두 번역서가 보이는 큰 차이는 ‘의역’을 기본으로 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고전적인 명제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도 균열을 가져온다.

역자는 앞서도 직역(역자 임의로 해석하는 ‘의역’과 구분되는 원래 문장의 서술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줄곧 주장해온 바지만, 이번에 그의 주장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AI 번역의 발전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번역기의 수준은 시사문장의 경우는 거의 손을 댈게 없을 정도로 완벽해서 웬만한 ‘번역가’보다 훌륭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문학 문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이다.

역자는 이에 대해 우선 문학 문장은 은유나 직유, 비유, 문장의 뉘앙스를 사람처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다음으로는 기본적으로 앞서 학습했을 번역 데이터들이 원천적으로 잘못되어 있기에 정확한 문장의 번역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찬탄을 금치 못하는 번역기지만, 실제 고전 문학의 번역 수준이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번역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자 임의로 하는 ‘의역’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작가는 역자노트를 통해 이런 말을 한다.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 내게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전부가 이상해 보였다. 합리적인 사유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모두 뫼르소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검사나 재판장 역시도. 그러나 그것이 번역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무엇보다,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 사내를 죽였다는 사실에 대해. 그런 우연성만으로 살인을 하고 후회나 뉘우침도 없는 이가 주인공이라면 그건 그냥 ‘엽기 소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_ 역자노트 중에서

원문으로 보니, 이전 읽은 번역서와는 내용 자체가 틀리더라는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뫼르소의 정당방위론’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우리 번역서를 읽은 독자들은 그말 자체를 황당하게 받아들이더라는 것이다.

과연 그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그는 그에 대한 근거를 원저자인 카뮈가 영국인들에게 써준 영어판 번역서 서문에서 찾기도 한다.

“따라서 『이방인』을 어떤 영웅적 태도도 없이,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서 읽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또한 언제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믿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를 캐릭터로 끌어들이려 애썼다고 말한 바 있다. 내 설명을 듣고 나면 어떤 신성모독의 의도 없이, 단지 예술가가 자신이 창조해 낸 인물에 대해 느끼는 권리로서 다소 아이러니한 애정으로 한 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_ 알베르 카뮈, 『Preface a l’edition americaine』,1955년

이 서문이 쓰여지기에 앞서 『이방인L’ETRANGER』은 영국의 스튜어트 길버트(Stuart Gilbert)에 의해 1946년에 『THE STRANGER』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었는데, 카뮈가 보기에 책을 읽은 영미권의 기자들, 독자들이 작품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해명의 성격으로 쓰여졌다. 실제 이 글은 첫 영어 번역서가 나오고 나서 10년이 더 지난 1958년 영문판 『이방인The Stranger』에 소개된 글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정서 자신의 새로운 개정판이기도 하면서, 인공지능의 번역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현 시점(2024)의 AI 번역기 수준을 가늠해보는 가늠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정서는 자신의 새로운 개정판이기도 한 이 책 출간의 의미에 대해 본문 속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번역이 힘든 것은 단어 하나, 쉼표 하나로도 그 사람의 캐릭터를 다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은유이기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부족한 게 번역이다. 당연히 100% 완벽한 번역은 없다. 그럼에도 남의 번역을 비교해 보는 것은, 가능한 제대로 읽자는 의미에서다. _ 역자노트 중에서

[역자 노트]

** ≪ Mme Meursault est entree ici il y a trois ans. Vous etiez son seul soutien.≫

위의 문장을 영역자들은 이렇게 번역했다.
“Madame Meursault came to us three years ago. You were her sole support.”(메튜 워드)

“Madame Meursault entered the Home three years ago. She had no private means and depended entirely on you.”(스튜어트 길버트)

“뫼르소 부인은 3년 전 이곳에 들어왔군요. 당신이 유일한 부양자였고.”(이정서, 본문p.14)

“뫼르소 부인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에 이곳에 들어오셨군. 의지할 사람은 자네밖에 없었고.”(김화영)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영어로는 불어를 제대로 번역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 이유는 존칭어 때문이라고. 문학작품에서는 치명적인 차이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는 아예 그 개념조차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뉘앙스를 살릴 수 있는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도 우리는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당장 가장 많이 읽히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조차 여전히 그랬다. 162쪽

** ≪Tu m’as manque, tu m’as manque.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 ≫

위 문장은 뫼르소가 써준 편지를 받고 집에 온 여자에게 레몽이 하는 말을 벽 너머 뫼르소와 마리가 듣게 되는 대목이다. 나는 이것을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를 가르쳐주지.”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이것을 예전의 김화영 교수는 ‘네년이 나를 골려 먹으려고 했겠다. 나를 골려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지.”라고 했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가능한 걸까? ~ (중략) ~ 영역자들은 이렇게 번역했다.

“You let me down, you bitch! I’ll learn you to let me down!”(스튜어트 길버트)

“You used me, you used me. I’ll teach you to use me.”(메튜 워드) -201쪽

많은 쉼표로 이루어진 복문도 실상, 번역을 하기는 어렵지만, 직역을 해놓고 나면 결코 어려운 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를 의심하지 말고, 서술구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문장을 옮기려 애쓰면 누구라도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한마디로, “의역은 의미는 비슷한 듯해도, 사실은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312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이방인 (양장) (마스크제공)
저자/출판사
알베르 카뮈 , 이정서 ,새움
크기/전자책용량
129*187*30mm
쪽수
320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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