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3년 전의 일본소설이
2024년 영국 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르다
세계 최대의 책방 거리로 꼽히는 도쿄 간다의 진보초 고서점 거리. 2024년 현재, 이곳으로 미국과 영국 등지로부터 건너온 서양인 관광객들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어를 읽지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기어코 책방 거리를 찾아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 권의 소설 때문이다. 이곳 진보초 거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영미권 제목: Days at the Morisaki Bookshop)이 해당 국가들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일명 ‘성지순례’를 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이 영미권에 번역되는 일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 책이 예외적인 인기를 끌게 된 주된 이유는 젊은 세대 독서가들의 호응에 있었다. 틱톡이나 유튜브 등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젊은 독자들이 이 먼 나라의 소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이 작품은 전 세계 30개국에 수출되었고, 2024년에는 영국에서 책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영국 도서상’ 소설 데뷔작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을 둘러싸고 또 하나의 재미난 사실은,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3년 전이라는 점이다. 2010년에 처음 선보인 이 소설은 출간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를 끌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었으나, 몇 년이 지난 후로는 사실상 묻혀 있던 책이었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한국어판도 진작 절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도 해당 책의 일본어판은 현재 종이책으로 유통되지 않고 있다. 뒤늦게 작품을 접한 해외 에이전트가 “반드시 이 책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간행하고 싶다”는 의지를 품었고, 그 바람대로 13년 만에 새로이 출간된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헌책방 한 켠에서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귀중한 책과 같은, ‘헌책방’을 소재로 한 이 소설과 더없이 어울리는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모든 독서가에겐
‘잊을 수 없는 그날 밤’이 하나씩 있다
스물다섯 살 다카코의 인생에 책이라고는 없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절대다수처럼. 그리고 거기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소설은 평화롭던 날을 보내던 다카코가 1년 동안 사내연애를 해온 남자친구에게서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별의 충격으로 회사마저 그만두고 폐인이 되어 집에 틀어박혔는데, 어느 날 왕래가 뜸했던 외삼촌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진보초 거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여기 머물며 일을 도와달라고. 책이라고는 학교 수업 때 읽은 게 전부인데 갑자기 헌책방에서 일을 하라니. 그러나 돈도 떨어지고 더 이상 머물 곳도 없는 상황에 처한 다카코는 마지못해 삼촌을 따라 곰팡내 나는 서점 2층의 작은 방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의 오래된 책들과 느릿느릿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상처를 치유해가고 다시 삶을 일으킬 동력을 얻어간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힐링 소설의 줄거리를 띤 이 작품이 세계 독서가의 마음을 울린 것은 ‘책과의 만남’을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낸 데 있다.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독서가에게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사건, ‘책과 만나게 된 그날 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고 마음이 심란했던 어느 밤, 다카코는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눈을 감은 채 헌책방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든다. 일본의 옛 문인 무로 사이세이의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라는 문고본이었다.
머리맡에 스탠드 조명만 켜놓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는 이불 속에 누운 채 특별히 이거다 싶은 감흥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지루해서 바로 잠들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한 시간 후에 나는 그 책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어려운 말로 쓰인 문장도 있었지만,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주제로 삼고 있어 내 마음 속으로도 수월하게 스며들어 왔다.
그날 밤 다카코는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으로 문학의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세상 수많은 독서가들이 세월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각각의 순간들처럼. 후에 다카코는 역시 책을 사랑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며 깨달은 바를 말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책을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이 독서가가 되는 거구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분명히 있었던 책과 만난 그날의 밤을 되새겨보게 하며, 그럼으로써 다시금 책을 향한 사랑을 다잡게 만드는 소설이다.
손 뻗으면 수많은 책이 잡히는 오래된 헌책방에서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건네는 인생의 휴가
가벼운 내용으로 위로를 안기는 요즘의 여타 힐링 소설들이 판타지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무대로 하고 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헌책 축제’도 진보초 거리에서 60년째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진짜로 벌어지는 일이다. 도쿄 간다에는 진보초 역을 중심으로 150개가 넘는 서점들이 있다. 가히,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서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저자 야기사와 사토시는 회사원 시절에 고서점가를 지나다가 이 거리를 무대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이 작품이 2009년 제3회 치요다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소설은 헌책방의 오늘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2000년 이후 인구 감소와 활자기피 현상이 일본에 들이닥치면서 진보초 고서점가도 이 격랑을 피해 가지 못했다. 또한 일본의 대형 중고서점 프랜차이즈 북오프(Book-off)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 고객이 크게 줄었다. 이에 헌책방 상인들은 조합을 조직하여 필요한 책을 매입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했고 인터넷으로 책을 판매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는데, 소설 안에도 이러한 변화의 흔적이 담겨 있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세계를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나름의 치열한 분투를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응원은 현재 일본 서점가의 위기 속에서 방일 외국인 관광객의 늘어난 발길로 진보초가 의외의 선전을 하고 있는 데 실제로 기여했다.
자극적인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책은 진보초 고서점가만큼이나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책이다. 세계 곳곳의 독자에게 가닿는 데에 13년의 오랜 시간이 필요했듯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헌책 같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모리사키 서점과 헌책방 거리가 다카코에게 인생의 휴가를 주었던 것처럼, 이 책은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독자에게 안락하고 여유로운 휴가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