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백두산정계비의 위치 논쟁에서부터 한중간의 국경선, 한중일간의 간도문제에 이르기까지 국경사의 문제들을 풍부한 자료와 현지 조사를 통해 해명한다!
이 책은 재외동포 연구자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이화자 교수가 한중일 간의 복잡한 문제인 백두산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 및 간도문제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저자 이화자 교수는 2003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조청 국경문제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중 양국에서 6종의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조선?청 간의 종번(宗藩)관계 하의 변경민의 월경(越境) 교섭, 1712년 백두산정계, 1885?1887년 조청간의 감계(勘界) 담판 및 1905~1907년 중일간의 ‘간도 문제’를 둘러싼 교섭 등이다. 이번에 새로 간행한 『백두산정계와 간도문제 연구』는 이들 연구의 연장선에서 나온 성과이다. 이 책은 총 세 편으로 나뉘어졌으며, 13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제1편은 고지도?지리지 연구, 제2편은 백두산정계 연구, 제3편은 간도문제 연구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편 고지도ㆍ지리지 연구
성경 상봉각의 ‘만문장백산도’에 대한 고증: 강희 『황여전람도』와의 관계
머리말
1. 나이토 고난과 ‘만문장백산도’
2. 목극등의 제1차 답사 노선
3. 목극등의 제2차 답사 노선
4. 해란강ㆍ가야하ㆍ부르하퉁하의 답사 노선
5. ‘만문장백산도’의 특징과 지명 분석
6. 맺는말
콜레주 드 프랑스 소장 『천하제국도』와 규장각 소장 『여지도』의 비교 연구
머리말
1. 『천하제국도』와 『여지도』의 비교 및 제작 시기
2. 『천하제국도』와 『여지도』 속의 『목극등정계도』
3. 『목극등정계도』와 청나라 화원이 그린 ‘백산도’와의 관계
4. ‘이비설’에 대한 분석
5. 맺는말
조선왕조의 『서북계도(西北界圖)』: 청나라 지도?지리지와의 관계
머리말
1. 『서북계도』의 중국도의 모본(母本)
2. 제기(題記)의 내용
3. 지도의 제작연대
4. 『서북계도』의 정계비 위치와 국경인식
5. 맺는말
조선시대 지리 명칭으로서의 장백산과 백두산
머리말
1. 조선 초기 장백산과 백두산의 지칭
2. 조선후기 경성장백산과 백두산에 대한 명확한 구분
3. 목극등 정계 시 조선에 속하지 않던 백두산이동ㆍ이남의 지리범위
4. 맺는말
제2편 백두산정계 연구
목극등이 정한 압록강 동원ㆍ서원과 후세 분수령에 대한 논쟁
머리말
1. 목극등이 찾아낸 압록강 동원과 서원
2. 후세 분수령에 대한 논쟁과 압록강 수원
3. 백두산 지역에 대한 북한ㆍ중국의 국경 획정 방안
4. 1958~1962년 천지를 둘러싼 국경담판 및 그 결과
5. 맺는말
정계비의 위치가 소백산이 아님을 논한다: 마맹룡(馬孟龍) 논문에 대한 토론
머리말
1. 『황여전람도』를 참고하여 소백산을 경계로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한 의문점
2. 목극등이 소백산에 주둔했는지 여부
3. 홍치중의 노정에 대한 분석
4. 1767년 비석이 소백산에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의문
5. 맺는말
목극등이 정한 압록강ㆍ두만강 분수령의 지리형세: 소백산설과 토론한다
머리말
1. ‘만문장백산도’를 통해 본 압ㆍ두 양강 분수령
2. 분수령 동쪽에서 송화강 물줄기를 배제할 수 없는 이유
3. ‘대홍단수상류’의 지칭 및 홍단수와 마주한 분수령
4. 맺는말
김지남의 『북정록』과 백두산정계
머리말
1. 역관 김지남과 『북정록』
2. 차사관ㆍ군관의 치보(馳報) 내용에 대한 분석
3. 목극등과 박권 사이 두만강 수원을 둘러싼 논쟁
4. 중국측이 지도를 제작하는 의도를 숨긴 이유
5. 맺는말
청과 조선의 국경 및 국경의식: 종번관계의 구축에서 붕괴까지
머리말
1. 청과 조선의 종번관계 성립 및 국경의식
2. 종번관계 하의 백두산정계
3. 종번관계 하의 국경분쟁 및 처리방식
4. 종번관계의 붕괴와 대한제국의 간도정책
5. 맺는말
제3편간도문제 연구
일본의 간도 지리 개념을 이용한 확장 시도: 사이토 스에지로의 『간도시찰보고서』를 중심으로
머리말
1. 『간도시찰보고서』의 작성 배경
2. 간도의 지리범위와 ‘고간도(古間島)’
3. 일본측이 간도 범위를 설정한 의도와 책략
4. 맺는말
간도 중립지대론에 대한 비판: 시노다 지사쿠의 『백두산정계비』의 내용 체계
머리말
1. 시노다 지사쿠와 간도문제
2. 간도 ‘중립지대론’
3. 1712년 백두산정계의 불성립에 관한 주장
4. 1887년 공동감계 결과의 불성립에 관한 주장
5. 맺는말
‘간도협약’ 부도(附圖)에 대한 고증
머리말
1. ‘도문강북잡거구역도’의 지리범위와 외형특징
2. ‘도문강북잡거구역도’의 지명 분석
3. ‘도문강북잡거구역도’에 관한 중일 교섭과 담판
4. 맺는말
한변외(韓邊外) 및 ‘간도문제’와의 관계에 대하여
머리말
1. 한변외의 자치 관할과 지리범위
2. 일본 신문매체의 한변외ㆍ간도에 대한 혼동 및 중국측 인사들의 반격
3. 일본정부의 간도 확장정책과 한변외
4. 맺는말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청대 이래 한중간의 국경문제는 1712년 백두산정계에서부터 유래하였다. 압록강ㆍ두만강을 경계로 함을 정계비에 명문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 지역의 국경을 정한 것에 국경사의 의미가 크다. 이는 그 이후 광서(緖) 감계담판(1885?1887), 1905~1907년 중일간의 ‘간도문제’ 담판 및 1958~1964년 중국ㆍ북한간의 국경문제 담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간 한중 양국 학계의 국경문제 주장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중국 학계의 주요 문제점은 정계비의 위치를 놓고 이른바 백두산설과 소백산설이 존재하는 것이며, 후자의 경우 정계비가 소백산(천지 동남쪽 30㎞에 있는 산)에 세워졌던 것을 백두산 천지 근처로 옮겨졌다는 이른바 ‘이비설(移碑說)’이 존재하였다.
한국 학계의 경우, 비문의 이른바 ‘동위토문’에 대한 해석에 착오가 발견되며, 식민지시대 일본 학자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토문이 두만이 아니라 송화강 상류라는 2강설이 존재하였다. 이는 두만강 이북에 위치한 간도(오늘날 중국 연변의 일부) 지역의 영토귀속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다. 저자는 위와 같은 정계비 이비설과 토문ㆍ두만 2강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료를 확보하게 된 것이 이번 책의 큰 성과로 들고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천하제국도(天下諸國圖)』에 수록된 『목극등정계도』는 한국측 정계 지도이고, 나이토 코난(內藤湖南)이 성경(盛京) 상봉각(祥鳳閣)에서 발견한 ‘만문장백산도’는 중국측 관련 지도이다. 저자는 자료에 대한 발견 또는 재발견을 통하여 백두산정계 연구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백두산설의 사료적 근거를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었다.
책의 제1편은 고지도ㆍ지리지에 대한 연구이다. 중국측의 ‘만문장백산도’, 한국측의 『목극등정계도』ㆍ『서북계도』 등에 대한 고증을 통하여, 지도의 제작 연대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정계 연구에서의 높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재천명하였다. 또한 관찬 지리지를 통하여, 조선시대 지리명칭으로서의 ‘장백산’과 ‘백두산’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목극등 정계 이전 조선의 범위에 속하지 않던 백두산 이남 지리범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제2편은 백두산정계 연구이다. 한중 양측 고지도ㆍ지리지 및 조선측 일기자료, 예컨대 역관 김지남의 『북정록』 등을 통하여, 목극등이 비석을 세운 입비처의 위치, 그가 정한 두만강 수원ㆍ압록강 수원 및 그의 하산 노선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른바 ‘소백산설’에 대해 비판하였다. 아울러 청과 조선의 국경의식과 국경분쟁에 대한 처리 방식을 종번관계의 구축에서 붕괴까지의 서로 다른 양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제3편은 중일간 간도문제에 대한 연구이다. 일본의 ‘간도(間島)’지리 개념을 통한 확장 시도를 사이토 스에지로(齋藤季治郞)가 조선통감부에 올린 『간도시찰보고서』를 통해 살펴보았으며, 해방 후 한국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의 『백두산정계비』의 이른바 간도 ‘중립지대론’의 학술적 근거를 분석함으로써, 그가 두만강 경계를 극구 부정하고 ‘중립지대’론을 펼친 것은 일본 정부의 간도확장 정책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침략성에 대한 비판이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이 밖에 ‘간도협약’의 부도인 ‘도문강북잡거구역도’의 모본과 중일간의 담판 및 중국 산동(山東) 이민이 위주가 된 ‘한변외(韓邊外)’와 간도문제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 책의 학술적 성과는 소백산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백두산정계에 대한 자료를 재발견함으로써 연구의 영역을 넓힌 것을 꼽을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이토 코난이 1905년 성경 상봉각에서 발견한 ‘만문장백산도’에 대한 재발견으로써, 이를 조선측 지도 자료 예컨대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천하제국도』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여지도』 속의 『목극등정계도』 및 김지남의 『북정록』 등과 비교 분석하여, ‘만문장백산도’의 사료적 가치를 재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설의 근거를 더욱 확고히 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중국 학계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백산 이비설’에 대한 비판으로 이비설의 근거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착오의 원인이 서로 다른 판본 자료에 대한 오해, 예컨대 어윤강(서두수임)에서 백두산까지 300리를 5일(승정원일기)에 도착하였음을 5리(숙종실록)로 착각한 데 따른 문제점, 목극등이 두만강을 따라 내려갔는데, “그 물이 남증산 근처에 와서 합쳤다.”(『북정록』의 국편 필사본)라는 어구를 그 반대로, “그 물이 남증산 근처에 와서 합치지 않았다”(『북정록』의 백산문화본)로 착각한데 따른 문제점, 그리고 백두산 지역의 산과 하천의 지리위치에 대한 착각 등에 있음을 들어, 이비설이 성립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끝으로, 중일간의 ‘간도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한 것도 이 책의 성과이다. 특히 한국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일본 학자인 시노다 지사쿠의 간도 ‘중립지대론’의 학술적 근거가 잘못되었음을 분석함과 동시에 ‘간도협약’의 부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속에 숨어 있는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해 폭로하였다. 아울러 중국측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간도협약’ 부도에 ‘간도’ 명칭이 사라진 점, 토문ㆍ두만 2강설이 극복되고 중국측 정식 명칭인 ‘도문강(圖們江)’으로 표기된 점 등에 대해 논술하였다. 이 책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 수립으로부터 한중 국경사 및 간도문제 등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사료를 종합적으로 이용하고 저자의 현지답사 성과를 결합하여, 국경사의 연구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킨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