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박물관장을 역임한 박물관 전문가의 ‘좋은 박물관, 나쁜 박물관, 위험한 박물관’ 이야기
사람들은 나쁜 박물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런 시원찮은 박물관이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규모가 크고 시설 디자인이 화려하면 좋은 박물관, 작고 허름하면 시시한 박물관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분명 나쁜 박물관, 위험한 박물관도 꽤 있다.
무엇보다 좋은 박물관은 외형보다는 전시·교육 내용이 믿을 만하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 학계와 충분히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좋은 박물관은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앞날을 함께 고민한다.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모두를 위한 길을 찾아내고 만들어 가려고 애쓴다.
좋은 박물관에는 다양한 전문가 직원이 많다. 다양한 문화유산과 미래 유산을 직접 관리하고 조사·연구하고 전시·교육하기 때문이다.
목차
Ⅰ. 선진국에는 왜 박물관이 많을까?
1) 세계의 박물관 현황
2) 박물관 역사
어원과 유래 / 서양의 박물관 / 동양의 박물관 / 한국의 박물관
3)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 박물관의 종류 / 미술박물관(미술관) / 역사박물관
Ⅱ. 대한민국에는 왜 박물관이 적을까?
1) 한국 사회의 고민
능력주의 사회 / 불평등 / 사회갈등 / 사유 없는 교육
* 에피소드 : 학벌 / 누명 / 공감능력
2) 선진 경제, 후진 문화
한국의 박물관 현황 / 박물관이 왜 적을까? / 불로소득 박물관 / 복붙 박물관 : 천편일 률 / 과거만 있고 미래는 없다
* 에피소드 : 팀장과 팀원
Ⅲ. 국공립박물관이 해야 할 일
1) 전시
의의와 범위 / 상품진열과 자료전시 / 박물관 전시의 종류 / 나쁜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 에피소드 : 사고와 책임 / 리더십 멘토
2) 교육
전시해설 / 강좌 · 강연 / 체험학습 / 학교연계교육 / 찾아가는 박물관 / 특수교육
3) 자료관리
수장고 운영 / 자료등록관리 / 보존처리
4) 조사연구
* 에피소드 : 박물관에서 일할 때 신경 쓰면 복 받는 말들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선진국일수록 박물관이 많다는데, 한국은 왜 아직도 박물관이 부족할까?
- 물질문화가 정신문화를 압도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
- 박물관은 이해 폭을 넓히고 사회갈등을 줄이는 역할 담당
유엔 산하 기구인 유네스코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초 전 세계의 박물관은 총 104,000개이다. 그중 33,082개는 미국에 있다. 무려 33%에 달한다. 두 번째로 박물관이 많은 나라는 독일로서 6,741개이다. 세 번째 일본은 5,738개이다. 한국은 1,102개로서 18위에 해당했다. 조사 당시 미국 인구는 3억 3천5백만 명이었으니, 미국은 인구 1만 명 당 박물관을 1개씩 세운 셈이다. 독일 인구는 8천4백만 명이었으므로 1만 2천 명 당 박물관을 1개씩 세운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인구와 박물관 수를 대비시키면, 박물관 1개에 프랑스 1만 3천 명, 캐나다 1만 7천 명, 이탈리아 1만 8천 명, 영국 2만 1천 명, 일본 2만 1천 명꼴이었다.
이처럼 선진국의 대명사인 G7 국가에는 박물관이 많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박물관 1개당 4만 6천 명으로서, 여전히 신흥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저자는 선진국일수록 박물관 사회교육을 통해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 중심의 서구사회는 학교에서의 노골적인 이데올로기 교육 대신 사회교육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사회구성원의 공감대를 높여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해왔는데, 경험이 같을수록, 지식을 공유할수록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비슷해진다는 관점에서 박물관을 많이 지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박물관에서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 체험함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박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인류사회는 경쟁할 때보다 협력할 때 더욱 발전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으로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빈곤한 미성숙 사회이므로 박물관과 사회교육의 중요성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하였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 한국 사회를 능력주의, 불평등, 사회갈등, 사유 없는 교육 등의 후진적 수렁에 빠뜨렸으며,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져 공공의 이익과 무형의 가치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역사박물관과 미술박물관(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한다. 개인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비해 공동체의 역사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은 세대 간 공감대를 넓히려고 노력하는 곳인 만큼 보수적이고 이념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공동체의 가치관을 부담스러워하는 자유분방한 젊은이일수록 상대적으로 탈이념적인 미술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은 작가의 독특하거나 진취적이며 개척적인 미술작품에 더 환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영감을 계발할 수 있는 주관적 감상을 매우 중시한다. 전시품에 특별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작가와 관람객의 상호 소통을 중시하며 관람객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관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전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박물관은 앞선 시대의 자료를 통해 역사 흐름과 사회변화상을 이해하는 곳이므로 객관적 사실과 관람객의 공감대 형성을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전시방식도 관람객이 과거 사실에 대해 분석적, 논리적,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며, 관람객이 전시물을 통해 사실을 직시하고 통찰력을 배양함으로써 그 지역과 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가치관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 한국 국공립박물관들의 공적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박물관에서 전시·교육·자료관리·조사연구 등을 담당하는 학예사가 되려면 치열한 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경쟁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공정성을 높이려는 채용 방식의 한계 때문에 정작 박물관 학예사들의 전문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던 저자는 20년 전 서울시의 박물관 건립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학예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과장 및 관장,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일하는 동안 겪은 특별한 경험과 안타까운 실수, 후회 등을 에피소드 방식으로 책 곳곳에서 진솔하게 밝혀두었는데,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