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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촌 박영석의 삶과 학문 (마스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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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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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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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스승이자 동학이었던 아버지 박영석

박영석은 경북 청도출신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의 1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학부논문으로 동학을, 석사논문으로 만보산 사건을, 경희대학교에서 만보산 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1930년대에 만주지역에서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한국사의 범주와 시대를 보다 확장하고 넓히는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를 둘러싼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깊이 있게 천착함으로써 한국사를 보다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 속에서 만주지역의 한인문제를 살펴봄으로써 더욱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박사학위를 한 뒤에는, 만주지역의 한인독립운동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미개척분야인 러시아, 미주 등 해외독립운동사를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1990년대 한국과 러시아, 중국과의 국교수교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중국본토, 만주,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 독립운동의 현장과 한인 디아스포라의 대표적인 지역들을 답사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해외지역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자료들을 수집하는 한편, 답사기를 작성하여 소개하고,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지금까지 잊혀졌던 홍범도장군의 사진을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는 등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만주지역의 농장, 한인마을, 대종교독립운동, 독립군 병사 이우석 연구, 석주 이상룡 연구, 토지상조권문제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그동안 등한시 하였던 잊혀진 독립운동의 토대와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였다. 특히 나철, 김교헌, 윤세복 등 대종교인의 독립운동사 및 석주 이상룡은 박영석에 의하여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연결고리로 서간도대표의 상해국민대표회의 참석, 석주 이상룡의 임시정부 국무령임명 등을 천착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다.

특히 학계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주,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미국, 멕시코 등 현지 답사를 진행하여 발로 뛰는 역사학자의 전범이 되었다. 아울러 생존 독립운동가들과의 구술작업도 개척적으로 진행하였고, 동북아시아 속에서 한국사를 바라보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자료로서 그동안 등한시 한 사진과 지도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중국사, 일본사 등 주변 국가들의 책자 및 지도, 녹음자료들이 다수 있음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박영석이 이처럼 독립운동사연구에 매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해답의 일부를 그의 저서 『민족사의 새 시각』(탐구당, 1986)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점차 끝나가고 일제가 한국에서 갖은 악랄한 수탈정책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을 무렵,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부일세력들에 대한 모든 죄악상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자라났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던 날, 전국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소리가 진동하였고, 온 국민들은 경사를 맞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였고, 곧 외세에 의하여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각각 미, 소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한민족 자체 내에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사상적 대립으로 인해 민족의 시련은 그칠 줄 모르고, 일층 더해갈 뿐이었다. 그리고 통일주체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가운데,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정리문제도 완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광복이후 우리 민족이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이 반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정리문제는 민족정기와 관련하여 볼 때, 특히 주목되는 것이었다.

조국의 광복과 아울러 민족의 해방은 한민족이 주체가 되어 전개한 민족독립운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한민족 전체가 가져야 하며 또 여기에 대한 강한 긍지가 있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독립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조국광복에 대한 인식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아직까지도 일제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것을 우리는 말끔히 청산해야 하며, 해방이후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정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식민사관의 극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민족 자체에 대한 자랑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깊은 자성,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 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절감하게 되었다.

한편 박영석은 영남대학교,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아울러 최장수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 한국사의 발전을 위하여도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 외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회발전을 위해서도 공헌하였다. 또한 자녀들도 다수 역사학자로 양성하여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

박영석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선친 박장현이 그의 나의 9세 때인 32세에 요절하였기 때문이다. 박영석의 어린 시절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그가 역사학도가 되게 하였다. 역사학도가 된 후 아버지의 글들을 정리하여 『중산전서』로 간행하였고, 이어 『국역중산전서』도 간행하였다.

한평생 아버지 박장현은 박영석의 생의 원천이자 열정의 원동력이었다. 박영석의 언행은 모두 아버지 박장현에서 출발하였다. 엮은이가 가까이서 지켜본 박영석은 아버지 박장현교의 신자였다.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학문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아버지의 못다한 뜻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박영석은 바로 박장현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박영석의 역사관은 아내 김외태의 조상인 탁영 김일손의 역사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생지인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동 뒷산에는 탁영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 인근에는 탁영을 추모하는 자계서원도 있어 항상 마음으로 탁영 선생의 역사정신을 흠모하였던 것이다.

박영석은 17년 반이라는 긴 세월 동안 투병생활을 하였다. 병석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저서인 중산전서의 국역과 교열에 열중하였다. 아울러 탁영 김일손의 역사정신과 도학정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제 박영석이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후손으로서 아버지의 신변을 정리하다 보니 선친이 자신의 책자에 담지 못한 글들이 산견되었다. 이에 한국사 전공자인 자녀 박주, 박환 등이 이를 정리하고 글을 보태고, 형제, 가족들의 자문과 도움을 얻어 책자 간행을 결심하였다. 다만 추모집 형태를 지양하고 100년을 이어온 역사가 집안답게 역사연구자, 특히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의 박영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이 책이 20세기를 살아간 한 역사학자를 사학사적으로 자리 매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목차

Prologue

제1부 역사가의 업(業), 학문적 성취와 기여

1. 박영석의 평생 화두 ‘만주한인독립운동사’
2. 1970년대, 학계 최초의 만주한인연구 성과: 『만보산사건연구』
3. 1980년대, 선구적인 만주한인독립운동사 연구
4. 1980·90년대, 독립운동사의 대중화를 위한 기틀 마련
5. 2000년대, 잊혀진 여성 혁명가와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

제2부 역사가의 직(職), 사회적 기여

1. 국사편찬위원회 시절의 회고
2. 회고 중 못다 한 이야기

제3부 역사가의 연(緣), 문중과 가계

1. 본가, 청도 밀양박씨 유생 집안
2. 외가, 청도 재령이씨 유생 집안
3. 처가, 청도 김해 김씨 탁영 김일손 집안
4. 아버지 박장현
5. 어머니 이병기
6. 조부 박재범에 대한 자료
7. 선친, 자존의 역사학자 박장현
8. 박장현의 역사의식

제4부 역사가의 생(生), 기억과 기록

1. 연구자의 길: 스승 남사 정재각 교수
2. 박영석 연보
3. 박영석의 저서 및 논문
4. 박영석의 유묵

Epilogue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스승이자 동학이었던 아버지 박영석

박영석은 경북 청도출신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의 1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학부논문으로 동학을, 석사논문으로 만보산 사건을, 경희대학교에서 만보산 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1930년대에 만주지역에서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연구함으로써. 한국사의 범주와 시대를 보다 확장하고 넓히는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를 둘러싼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깊이 있게 천착함으로써 한국사를 보다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 속에서 만주지역의 한인문제를 살펴봄으로써 더욱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박사학위를 한 뒤에는, 만주지역의 한인독립운동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미개척분야인 러시아, 미주 등 해외독립운동사를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1990년대 한국과 러시아, 중국과의 국교수교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중국본토, 만주,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 독립운동의 현장과 한인 디아스포라의 대표적인 지역들을 답사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해외지역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자료들을 수집하는 한편, 답사기를 작성하여 소개하고,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지금까지 잊혀졌던 홍범도장군의 사진을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는 등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만주지역의 농장, 한인마을, 대종교독립운동, 독립군 병사 이우석 연구, 석주 이상룡 연구, 토지상조권문제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그동안 등한시 하였던 잊혀진 독립운동의 토대와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였다. 특히 나철, 김교헌, 윤세복 등 대종교인의 독립운동사 및 석주 이상룡은 박영석에 의하여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연결고리로 서간도대표의 상해국민대표회의 참석, 석주 이상룡의 임시정부 국무령임명 등을 천착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다.

특히 학계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주,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미국, 멕시코 등 현지 답사를 진행하여 발로 뛰는 역사학자의 전범이 되었다. 아울러 생존 독립운동가들과의 구술작업도 개척적으로 진행하였고, 동북아시아 속에서 한국사를 바라보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자료로서 그동안 등한시 한 사진과 지도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중국사, 일본사 등 주변 국가들의 책자 및 지도, 녹음자료들이 다수 있음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박영석이 이처럼 독립운동사연구에 매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해답의 일부를 그의 저서 『민족사의 새 시각』(탐구당, 1986)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점차 끝나가고 일제가 한국에서 갖은 악랄한 수탈정책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을 무렵,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부일세력들에 대한 모든 죄악상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자라났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던 날, 전국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소리가 진동하였고, 온 국민들은 경사를 맞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였고, 곧 외세에 의하여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각각 미, 소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한민족 자체 내에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사상적 대립으로 인해 민족의 시련은 그칠 줄 모르고, 일층 더해갈 뿐이었다. 그리고 통일주체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가운데,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정리문제도 완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광복이후 우리 민족이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이 반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정리문제는 민족정기와 관련하여 볼 때, 특히 주목되는 것이었다.

조국의 광복과 아울러 민족의 해방은 한민족이 주체가 되어 전개한 민족독립운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한민족 전체가 가져야 하며 또 여기에 대한 강한 긍지가 있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독립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조국광복에 대한 인식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아직까지도 일제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것을 우리는 말끔히 청산해야 하며, 해방이후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정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식민사관의 극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민족 자체에 대한 자랑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사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깊은 자성,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 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절감하게 되었다.

한편 박영석은 영남대학교,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아울러 최장수 국사편찬위원장으로서 한국사의 발전을 위하여도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 외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회발전을 위해서도 공헌하였다. 또한 자녀들도 다수 역사학자로 양성하여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

박영석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선친 박장현이 그의 나의 9세 때인 32세에 요절하였기 때문이다. 박영석의 어린 시절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그가 역사학도가 되게 하였다. 역사학도가 된 후 아버지의 글들을 정리하여 『중산전서』로 간행하였고, 이어 『국역중산전서』도 간행하였다.

한평생 아버지 박장현은 박영석의 생의 원천이자 열정의 원동력이었다. 박영석의 언행은 모두 아버지 박장현에서 출발하였다. 엮은이가 가까이서 지켜본 박영석은 아버지 박장현교의 신자?였다.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학문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아버지의 못다한 뜻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박영석은 바로 박장현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박영석의 역사관은 아내 김외태의 조상인 탁영 김일손의 역사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생지인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동 뒷산에는 탁영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 인근에는 탁영을 추모하는 자계서원도 있어 항상 마음으로 탁영 선생의 역사정신을 흠모하였던 것이다.

박영석은 17년 반이라는 긴 세월 동안 투병생활을 하였다. 병석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저서인 중산전서의 국역과 교열에 열중하였다. 아울러 탁영 김일손의 역사정신과 도학정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제 박영석이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후손으로서 아버지의 신변을 정리하다 보니 선친이 자신의 책자에 담지 못한 글들이 산견되었다. 이에 한국사 전공자인 자녀 박주, 박환 등이 이를 정리하고 글을 보태고, 형제, 가족들의 자문과 도움을 얻어 책자 간행을 결심하였다. 다만 추모집 형태를 지양하고 100년을 이어온 역사가 집안답게 역사연구자, 특히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의 박영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이 책이 20세기를 살아간 한 역사학자를 사학사적으로 자리 매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는 박영석의 연구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 서술하고자 하였다. 2부에서는 대표적인 사회적 기여인 국사편찬위원회 활동을 회고를 중심으로 밝혀보고자 하였다. 3부에서는 역사학자가 되기까지의 원동력이 된 문중과 가계를, 4부에서는 삶의 자취를 연보, 저작, 사진, 유묵 등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였다.
책자간행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큰 자형 임문혁 교수, 큰 누나 박주교수께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두 분의 결단으로 아버님에 대한 저서 간행과 집안 자료 정리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박주교수는 엮은이의 한 사람으로 책자의 전체적인 틀과 모양새에 대한 지도편달과 아버지의 처가 탁영 김일손에 대한 원고를 제공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은 자형인 황종환 교수, 작은 누나 박옥 서양화가도 항상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서양사 전공자인 박단, 신행선 교수부부, 동양사 전공자인 박강, 서은미 교수부부 등도 원고의 제목, 목차, 내용 등에 대하여 질정과 교시를 하여 주었다. 박영석의 외손자인 임정균(부인 이한나), 외손녀인 임혜균, 황예영, 황서영, 손녀인 박경(남편 서완석), 박영, 박윤, 손자인 박찬, 박현, 박혁의 응원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할아버지의 뜻과 마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묵묵히 작업을 지켜 보아준 아내 김신영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남대학교 사학과 제자로 말벗이 되어주신 설재규 형님의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또한 원고의 큰 틀을 보아주신 유대성 대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출판을 쾌히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대표와 박애리 실장을 포함한 편집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어머니 김외태의 만수무강을 기원드리며, 이 책을 큰 누나 박주교수를 비롯한 여러 형제들, 가족과 후손들과 더불어 역사학자 박영석의 영전에 바칩니다.

2024. 5. 문화당에서
엮은이를 대표하여 박환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수촌 박영석의 삶과 학문 (마스크제공)
저자/출판사
박주, 박환 ,도서출판선인
크기/전자책용량
150*210*20mm
쪽수
256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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