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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마스크제공)

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마스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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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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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대를 짊어지다.”

강평국을 다 정리하고 나의 머리 속에 엉기어 모인 문장이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연구하다 강평국까지 이르렀다.
행적을 찾아 치켜 좇아가 본 백여 년 전의 삶은,
불안하고 고단했음.
뒤따라 쫓아가 보는 근대 시대의 새로운 세상은
날마다 낯선 변화로 널뛰고 있었고,
가슴 설렘보다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희망은 분노와 뒤섞여 어슴푸레할 뿐이었다.
신념을 밀고 나아가게 하는 굳은 심지는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여기 강평국을 모아냄은
그대는 분명한 희망의 파란 불꽃이었음을
온 생을 불태운 그대의 바람 덕에
우리는 꽃밭 속임을
확인시켜 드리고 싶은 강렬한 존경의 모음이다.
그의 행적에 울컥하고 가슴이 떨림에도
우상화를 경계하며
기록을 근거로 건조하게 쓰려 애써야 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한다는 행동이다.
기억이나마 해주지 않으면 세상을 짊어졌던 그의 짐이 여전히 무거울 것이다.

목차

여는 글

제1장. 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Ⅰ. 강평국의 수학
1. 신성여학교
2.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본과
3.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4.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Ⅱ. 강평국의 사회 활동
1. 강평국의 독립 운동
2. 강평국의 교육 활동
3. 강평국의 여성 운동
4. 강평국의 재일본 노동 운동

제2장. 독립운동가 강평국, 민족의 자존을 외치다

제1절. 강평국의 3.1운동 참여
Ⅰ. 박희도의 비밀서클 활동 참여
Ⅱ. 강평국의 3.1운동 참여
1. 3월 1일 만세운동 참여 주도
2. 서울 시내 만세 행진 참여

Ⅲ. 강평국의 제2차 만세시위운동 참여와 수감
1. 제2차 만세시위운동
2. 강평국의 제2차 만세시위운동 참여와 수감

제2절. 강평국의 여성 비밀결사 백청단 활동 가능성 검토
Ⅰ. 여성 비밀결사 백청단
1. 백청단의 활동
2. 백청단 사건 수사

Ⅱ. 1930년대 초반 학생운동

Ⅲ. 강평국의 백청단 활동 가능성 검토
1. 제주도의 신여성
2. 강평국의 인맥
부록: 강평국의 3.1운동 관련 재판 자료

제3장. 제주도 최초 공립학교 여교사 강평국, 교육으로 조국의 번영을 선도하다

Ⅰ. 제주도 최초 공립학교 여교사 강평국
Ⅱ. 사립 교육기관에서 교육 활동
1. 여수원 교육 활동
2. 사립 명신학교 교사 활동

제4장. 여성운동가 강평국, 여성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실천하다

Ⅰ. 강평국의 글 〈여자해방의 잡감〉

Ⅱ. 유흥가 여성 구출 활동

Ⅲ. 제주여자청년회를 통한 강평국의 여성운동
1. 1920년대 한국 여성운동의 특징
2. 제주여자청년회의 성격
3. 제주여자청년회의 활동
4. 제주여자청년회 활동 주요 인물
Ⅳ. 근우회 동경지회 활동

제5장. 노동운동가 강평국, 경제적 자립으로 독립된 여성을 희망하다

Ⅰ. 강평국의 청년 단체 활동
1. 동경 조선여자청년동맹 활동
2. 동경 조선인단체협의회 활동
3. 총독정치반대동맹기성회 활동

Ⅱ. 강평국의 노동 단체 활동
1. 동경 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활동
2.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활동
3. 근우회 동경지회 노동 운동 활동

참고문헌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슬프다. 시대의 선각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딛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孤魂)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외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 살피소서.”

이는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세워져 있는 강평국(姜平國, 1900~1933) 지사의 추도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추도비에는 ‘아가다 강평국 선생 추도비’라는 글귀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아가다는 강평국 선생의 세례명이다.

강평국은 구한말,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불꽃처럼 살다간 한 시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1900년 6월 19일 나서 1933년 8월 12일 33세에 병으로 사망하였으니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생애동안 그녀는 ‘불꽃처럼’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치열하게 살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은 대중적 교양서는 아니다. 저자는 강평국에 대한 그동안 단편적인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녀의 생애를 추적해왔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강평국 연구에 대한 종합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연구과정에서 발굴한 문헌자료들과 사진자료들이 이 책에 자료로서 보강되어 있다. 근대시기 여성운동가의 활동을 연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다.

제주 출신인 강평국의 생애는 제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주, 한반도,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공간적 범위 내에서 망국과 항일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근대시기 지식인이자 여성 선구자로서의 다양한 면모가 그의 삶의 기록에 담겨 있다.

강평국은 제주도의 근대식 공립학교의 첫 여교사이다. 제주도 제주시 일도리 태생인 강평국은 1909년 제주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제1회로 졸업하였다. 신성여학교는 1909년 10월 천주교회에서 설립한 초등과정 학교다. 제1회 졸업 동기인 고수선, 최정숙이 강평국과 함께 1915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동기생들인 세 친구는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이기도 한다.

본과를 졸업한 1918년, 다시 사범과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여 정식교원으로 발령받는다. 정규 교원으로 임명받은 제주의 첫 여교사다. 그 해 제주도의 대정공립보통학교, 1920년 전남 진도공립보통학교, 1925년 조천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공립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야간에는 가톨릭계의 여수원 야학소와 사립 명신학교 등에서도 교육 활동을 하였다.근대 시기 우리나라의 교육운동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부강한 조국을 위해 교육 활동으로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배워야 산다는 교육열이 모두를 사로잡던 시대였다.

강평국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 “수령급” 학생으로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었다.강평국은 사범과 수학 중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사망하자 대한문 곡반에 기숙사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여고보 학생으로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다시 1919년 3월 5일 제2차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수령급’으로 체포되었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3월 24일 풀려나 3월 25일 극적으로 졸업장을 받은 바 있다.

교사활동을 마치고 난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다니며 노동운동을 통한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다. 동경 조선여자청년동맹의 임원으로 청년 활동, 동경 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와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의 부인부 위원으로 노동현장에서의 민족차별에 대한 권익 보호와 여성의 노동 보호 활동을 주도하였다. 1926년에 8시간 노동, 주 48시간 제도의 실시, 최저임금제, 노동절 휴업 등을 주장하였다.또한 근우회 동경지회 설립 위원장으로 선임되는 등 근우회 활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일본 내에서 3.1운동과 국치기념일 등을 기념하는 활동과 총독의 폭압 정치 반대 활동 등 일본 내에서 발생하는 민족 관련 각종 사안에 강경한 노선으로 활동하였음이 확인된다.근우회 등의 단체 활동을 통해 3.1운동 기념행사, 국치일 기념행사, 조선총독 폭압정치 반대 투쟁, 삼총해금운동, 관동 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 활동, 재만 동포 탄압에 대한 항의 활동, 조선인 노동자 차별에 대한 항의 활동, 재일 조선인 노동자 추방 항의 활동 등으로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강평국은 여성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1925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여자해방의 잡감〉에서 “과거의 역사는 ‘여자가 남자의 노예이다’ 함을 의미한 것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도덕을 아니 법률을 작성하였다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닐까 합니다....형님! 우리 여자는 오늘날까지 남자에게 물건시(物件視)하여 왔으며 가축시(家畜視)하여 왔습니다.”라고 쓴 바 있다. 당대의 다른 누구보다도 여성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서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당대의 실천적 활동은 교사로서 항일운동가로서의 삶의 저변에 여성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강평국은 새로운 세상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역할을 다하는 여성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였다. 여성 스스로 바뀐 세상을 배울 것과 실력 있는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였다. 강평국은 제주여자청년회를 설립하여 “힘써 배우고 굳센 단결로 삶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야” 함을 주장하며 수해구제활동 등 제주 사회의 현안에 직접 참여하는 활동을 주도하였다. 전국 단체 활동에도 참여하여 만주에서 핍박받는 동포를 위한 재만동포옹동맹 활동, 관북수해제주구제회 활동 등의 연대 활동을 하였다. 또한, 야학을 통해 여성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여 실력 있는 여성을 위한 교육 활동을 하였다.

강평국은 또한 노동운동가였다. 강평국은 1926년 봄 이후 일본에서 민족운동을 하였다.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동경에서 생활하며 민족과 여성을 화두로 활동하며, 여성 노동의 차별과 조선인 노동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였다.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유학생 강평국은 일본에서 동경 조선여자청년동맹과 동경 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과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과 민족 해방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과 동경 조선인단체협의회에서 공동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강평국은 청년 단체 활동(동경 조선여자청년동맹 소속으로 활동하는 분야)과 노동 단체 활동(동경 조선노동조합,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활동 분야) 그리고 여성 단체 활동(근우회 동경지회)을 병행했다. 강평국은 여성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표로 활동하는 동경 조선여자청년동맹의 임원이었고, 동경 조선인단체협의회와 공동 활동도 하였다. 동경 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위원과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의 부인부 위원, 근우회 동경지회 임원 활동 등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은 물론이고 민족 차별에 대한 항의 활동 등을 하였다.

교육자 강평국은 교육자, 항일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 노동운동가로 살았다. 망국과 항일, 여성이라는 존재에서 오는 그 모든 치열한 시대적 과제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 그러나 일본에 건너간 뒤 늑막염이 심해지는 등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한 몸을 이끌고 학업에 정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를 창립하는 등 쉬지 않고 뛰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는 건강 때문에 아쉽게도 학업을 포기하고 귀향길에 올라야했다. 하지만 1933년 1월, 일본경찰에 의해 다시 광주로 끌려갔다. 조사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1933년 8월 12일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강평국 지사 나이 33살 때였다.

제주에서 강평국은 일종의 신화적 인물이었다. 베일 속에 가려진 근대시기 선각자이자 선구자였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은 파편화된 채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남아 있었는데, 저자의 단편적인 연구논문들이 발표되면서 하나 둘씩 베일을 벗는 모습이다. 이 책은 제주 출신 강평국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성과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강평국, 근대 제주를 짊어지다 (마스크제공)
저자/출판사
한금순 ,각
크기/전자책용량
153*210*30mm
쪽수
304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4-05-29
목차 또는 책소개
상품상세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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