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불로소득’이라는 주제로 현대 자본주의 분석에 새 지평을 연 역작!
많은 국가에서 불평등이 확대되고 긴축정책의 효과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부자들의 부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는 상위 1퍼센트가 부동산과 자금을 통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불의하고 역기능적인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저명한 사회과학자인 앤드류 세이어는 전 세계 부자들이 어떻게 부채를 늘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능력을 강화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2015년 영국 아카데미 피터 타운센드상을 받은 이 중요한 책은 부자들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부의 창출자라는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또한 부자들이 어떻게 지속 불가능한 성장에 의존함으로써 지구를 위협하는지 폭로한다. 이 책은 경제를 지속 가능하고 공정하게 만들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제 부자들의 지배를 끝내야 할 때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완하는 유용한 책으로 부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퍼뜨리는 많은 주장을 강력하게 논박한다.―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
부자들과 슈퍼리치들이 어떻게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까지 파괴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 마이클 뷰러오이Michael Burawoy, UC 버클리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슈퍼리치들이 우리의 경제·사회 구조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폭로하고 급진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 모두에게 필독서다.
― 프랜시스 오그레이디Frances O’Grady, 전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 사무총장
우리가 왜 부자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기가 어려운지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 샘 피지가티Sam Piziggati, 미국 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세이어는 사적 부의 엄청난 축적을 용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투머치Too Much』
목차
그림 목록 | 옮긴이 서문 | 추천사
1장 도입부
1부 부의 추출에 대한 안내
2장 위험한 세 단어: ‘벌이’, ‘투자’, ‘부’
3장 노력소득과 불로소득
4장 지대,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5장 이자,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고리대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6장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 자본가와 불로소득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7장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다른 방법
8장 부자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가? 그 외 다른 반론들
2부 부자들을 제자리에 두기: 무엇이 사람들의 수입을 결정할까
9장 우리의 부는 어디서 나올까? 공유부의 중요성
10장 그러니까 무엇이 보수를 결정하는가?
11장 평평한 운동장의 신화
3부 부자는 어떻게 더 부유해지는가: 위기 발발에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12장 위기의 뿌리
13장 핵심 승자들
14장 요약: 경제위기와 불로소득자의 귀환
4부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지배
15장 부자들의 지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16장 숨기기
17장 법의 부패: 법 위에 군림하든지 아니면 법을 만들든지
18장 자선사업은 어떤가?
19장 계급: 전쟁을 말하지 말라!
5부 나쁘게 벌어서 나쁘게 쓴다: 소비에서 이산화탄소로
20장 부자들의 지출
21장 반전: 지구 온난화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22장 결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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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출판사리뷰
부자들의 부는 얼마나 정당한가?
많은 사람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슈퍼리치(억만장자)를 포함한 부자들은 그럴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으며,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부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아가 솔직히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인 게 현실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앤드류 세이어는 이 물음에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근대 자본주의의 아버지, 특히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다. 그 나라에서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에 흔히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1970년대를 보낸 세이어는 불같이 일어난 노조의 파업과 극심한 노조 탄압, 대처 행정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세이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그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글로벌’한 대다수 부자는 ‘불의의 정치’를 등에 업고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통해 지금의 부를 빨아들였으며 이 지구는 물론 민주주의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주범이므로 절대 그들을 부러워하면 안 될 뿐 아니라 더는 그들을 지원해서도 안 된다는 것!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의 과도한 소비를 부러워하면 모방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이 창출한 부를 추출하기 위해 자산을 지배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불의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451쪽)
“부자가 더 부유해진 것은, 상위 계층이 더 진취적이고 역동적으로 부를 창출했기 때문일까? 오늘날의 자본가들(또는 기업가라고 해도 좋다. 그들은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은 전후 호황기에 그들보다 적게 받고 일했던 선배들보다 경제발전을 훨씬 더 잘 이끌고 있을까? 경제 통계를 보면 그 반대가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은 전후 호황기 때보다 낮다. 부자들이 부유해진 것은 빠른 경제성장의 효과가 아니라 경제성장이 둔화했음에도 더 많은 몫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부자들은 국민총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가져갈 뿐 아니라 최고세율의 현격한 하락 덕분에 가져간 몫을 더 많이 지킬 수 있게 되었다.” (26~27쪽)
요즘 같은 금융화 시대에 너도나도 ‘투자’라는 ‘마술적 단어’ 앞에서 대중으로 하여금 부동산이냐 주식이냐 비트코인이냐를 놓고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은 확실히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개인의 시야를 ‘돈/부’에 묶어두는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술책이다. 지금 우리는 날마다 이 폐해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이어는 우리가 매우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기후위기까지 우리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중위기’를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워싱턴도 아니고 모스크바도 아니다!
세이어는 책의 앞부분에서 분명히 밝힌다. 자신은 현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이나 구소련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여기서 ‘기계적 중도’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돈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돈 모으는 데 바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설파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불로소득자의 안락사”라는 명제를 던진 케인스까지 비판적 학자들의 저작에 기대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겠다고. 그러므로 부자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인 이 책의 저자 세이어가 정치적으로 어느 편인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는 영국의 이름난 학자로서가 아니라 지구라는 하나뿐인 행성에서 사는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현재뿐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안내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것이므로.
신자유주의가 감추고 있는 더러운 비밀
주택 소유자들은 자기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투자’로 간주하도록 권유받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모기지 부채를 ‘투자’로 여기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기 힘으로 불로소득자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한 단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고 자동차나 중고 자전거를 살 때는 원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가? 왜 주택은 그렇지 않을까? 혹자는 집값 상승 덕분에 보통의 주택 소유자가 국가의 경제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로 이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가끔은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필요에 기반을 둔 이전지출처럼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진 잉여의 분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일부 계층이 사유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56쪽)
많은 사람이 집값 인플레이션 덕에 불로소득을 얻었다는 점에 비추어, 피고용인이면서 동시에 영세 불로소득자인 사람들이 많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불로소득 게임에서 단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대대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지대 추구를 소득원으로 삼으며, 부자들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만들어지고, 부유한 불로소득자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착각이 생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문의 경제면은 지대 추구를 신중하고 현명한 행동으로 여기도록 평범한 사람들을 부추긴다. 마치 신중함과 현명함만이 불로소득을 정당화하는 듯 말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의 재산이 탐욕스러운 금융기관의 전략에 묶여버린다는 점도 중요하다. 금융기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저축을 이용하고 수수료와 비용을 챙기면서도 그들의 연금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180쪽)
세이어는 이와 같은 금융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으로 생산적 자본에서 불로소득자에게로 권력이 크게 이동했다고 밝힌다. 또한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물가 안정을 바라는 소비자의 이해를 지원함으로써 은밀하게 불로소득자를 도왔는데, 바로 이 자산 인플레이션이 신자유주의가 감추고 있는 더러운 비밀이라고 폭로한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자산이 없어서 노력소득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산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로 부를 재분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지갑이 투표용지를 이긴다.”
경제가 사람을 지원해야지, 그 반대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는 경제적으로 극심한 불황에 직면했다. 이때 달러라는 막강한 뒷배를 가진 미국은 무한정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했고, 그 영향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자 대출금리를 가파르게 높이며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이 와중에 다른 나라들은 황새 쫓아가기 바쁜 뱁새들이 되어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의 슈퍼리치들은 이 위기를 활용해 ‘공유부’에서 더 많은 부를 빨아들이고 있다!
부자들이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추출한다extract고 주장하면, 반드시 반론이 제기된다. 그와 같은 반론에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최대 과제이며, 따라서 책의 상당 부분은 그런 내용으로 채워진다. 물론 다른 반론에 대한 답도 들어 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은 질투의 정치가 아니라 불의의 정치the politics of injustice를 다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사실 질투의 정치라는 말은 논리와 증거를 회피하고자 하는 자들이 입에 올리는 값싼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부자들을 시기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런 시기심을 완전히 엉터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부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추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불의한 체제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이 체제는 불의할 뿐 아니라 심각하게 고장 나 있고 비효율적이다. 그 결과 극심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 (19~20쪽)
세이어는 작금의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꼼꼼하게 짚어준다. “상위 1퍼센트와 99퍼센트 간의 불평등보다는 상위 1퍼센트 내의 불평등이 훨씬 더 심하다.” 그리고 “자산(개인이 축적한 재산에서 부채를 뺀 값)의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하다.” 한마디로 자산 분배는 소득 분배보다 훨씬 불평등하다! 이 책의 번역자 전강수 교수는 세이어가 불평등 확대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준 공로가 크다며 다음과 같이 평한다.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심화했음은 토마 피케티의 방대한 연구로 밝혀졌지만, 그것이 주로 부자들의 불로소득 취득에 따른 것임을 논증한 것은 세이어가 처음이다. 이 책이 출간된 다음 현대 자본주의를 불로소득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작들이 이어졌다.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불로소득 자본주의』(여문책, 2019),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민음사, 2020), 브렛 크리스토퍼스의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여문책, 2024)가 대표적이다. 바야흐로 ‘불로소득 자본주의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를 현대 자본주의 분석에 새 지평이 열린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7~8쪽)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경제위기’는 경제적 불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대, 이자, 부채, 신용, 부동산, 주식?채권 등의 금융상품, 분업, 민영화, 조세회피와 탈세, 불로소득과 노력소득, 시장 자유화, 자본 이동,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최고임금,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단순한 ‘혜택’이 아닌 ‘필요’를 기반으로 한 복지 등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
거대 기업이 파산하는 경제위기 때마다 구제금융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독차지하는 와중에도 CEO와 임원들이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는 현실은 크게 잘못되었다. 다수 국민의 세금으로 극히 일부의 경제(경제인)를 떠받치기보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서민이 많은 지금 같은 때는 경제가 사람을 지원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모든 악의 근원도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치체제는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를 희생시킴으로써 불로소득자의 이해를 옹호한다. 그러므로 이 체제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제 우리는 그동안 주류 경제학이 주입해온 ‘능력주의 사회’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보수?분업?자산?인종?젠더 등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왜 부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가?: ‘녹색’ 관점의 자본주의 비판
세이어는 우리가 지금 같은 삶을 지속하려면 지구가 세 개는 필요하며,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미국식 삶을 살려면 지구 같은 행성이 다섯 개는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 우리가 더 평등하고 공정하며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부자들뿐만 아니라 불평등과 무한한 복합성장에 토대를 둔 경제체제도 감당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다고 여기는 ‘녹색성장’의 꿈은 평화를 위해 총을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이 아니라 충분함을 토대로 작동하는 경제가 필요하다. 사회가 평등하면 평등할수록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상호 존중과 공공선?연대?배려 등의 감각을 개발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회는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매우 불평등한 지위들을 놓고 경쟁해야만 하는 압박을 계속 받는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일부의 사람들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자유를 누린다면, 다른 사람들이 좀 더 검소한 소비 수준을 받아들이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488쪽)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부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멈추고 새로운 ‘경제정의’를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