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알리의 주먹, 조던의 무릎, 코마네치의 발목, 펠프스의 허파, 볼트의 근육,
조코비치의 엘보 그리고 태극궁사의 입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올림픽 영웅들의 유전자를 해부하다
올림픽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승패의 결과와 메달의 색깔에 모아진다면, 해부학자는 선수들의 몸에 주목한다. 알리의 주먹(1964년 올림픽), 코마네치의 발목(1976년 올림픽), 조던의 무릎(1992년 올림픽), 펠프스의 허파(2008년 올림픽), 볼트의 허벅지근육(2008년~2016년 올림픽), 태극궁사들의 입술(1984년~2020년 올림픽) 등 올림픽 영웅들의 뼈와 살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해부학적 코드가 숨어있다. 저자는 하계 올림픽 중에서 28개 종목을 선별하여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복싱편에서는 복서에게 치명적인 뇌세포손상증을 가져다주는 펀치 드렁크 신드롬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국제복싱협회가 헤드기어 착용을 폐지한 연유를 파헤친다. 유도편에서는 200가지가 넘는 기술 중에서 외십자조르기가 목동맥삼각에 위해를 끼쳐 산소부족 상태를 초래해 뇌 손상에 이르는 과정을 규명한다.
육상편에서는 우리 몸의 근육조직을 이루는 속근과 지근이 단거리와 장거리 경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및 마라톤선수의 스포츠심장과 발바닥 구조에 담긴 함의를 해부한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스핀)킥과 무회전킥에 얽힌 종아리근육의 구조를 해부도를 통해 풀어낸 대목에서는 우리 몸 곳곳을 다층적으로 탐사하는 해부학의 유니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스포츠를 의학의 카테고리에 가두지 않고 해당 종목의 역사적 연원과 과학기술 및 사회적 함의를 살피는 데도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수영선수의 전신수영복이 빚은 기술도핑, 사이클에서 불거진 스테로이드 오남용, 복싱과 사격 및 탁구에 담긴 정치외교적 속내, 자본의 논리에 함몰된 비인기종목에 숨겨진 가치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관점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향연은 그 자체가 다양성의 미학을 펼치는 올림픽과 닮았다.
목차
[프롤로그] ‘최선’이 남긴 상처의 통증유발점을 찾아서
CHAPTER 1 알리의 주먹
01 배고픈 전사의 리썰웨폰 _복싱
02 매트 위의 위대한 요다들 _레슬링
03 상대방의 힘을 유도하라 _유도
04 무적의 돌려차기에 얽힌 비밀 _태권도
05 검을 든 자여, 퇴화의 시간을 가르소서 _펜싱
CHAPTER 2 조던의 무릎
06 공은 둥글다. 고로 축구는 알 수 없다 _축구
07 밀어야 산다? 믿어야 산다! _럭비
08 그 시절 에어 조던의 무릎은 안전했을까 _농구
09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_핸드볼
10 주먹보다 강한 손바닥의 위력 _배구
CHAPTER 3 볼트의 근육
11 아프니까 스포츠다 _육상
12 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가 _체조
13 아틀라스의 정신을 들어올리다 _역도
14 말(言)이 통하지 않는 말(馬)과의 경이로운 교감 _승마
15 쓰러지지 않고 삶의 페달을 밟는 법 _사이클
CHAPTER 4 태극궁사의 입술
16 중국이 쏘아올린 작은 공 _탁구
17 코트 위 황제를 울린 팔꿈치 _테니스
18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깃털의 미학 _배드민턴
19 홀인원에 빠진 골프홀릭의 민낯 _골프
20 허리를 굽혀야 이기는 무사들 _필드하키
21 메달의 색을 포착하는 시선들 _ 사격
22 신궁의 입가에 깃든 미소 _양궁
CHAPTER 5 펠프스의 허파
23 물살에 가려진 편견과 차별 _수영
24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 _다이빙
25 수중 격투 속 승부의 참뜻 _수구
26 바람을 지배하는 욕망의 그림자 _요트
27 한 배를 탄 크루들의 뜨거운 눈물 _조정
28 물 위를 걷는 자들에 관하여 _ 서핑
저자소개
출판사리뷰
│저자의 한마디│
올림픽은 대표적인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현장이다. 어떤 종목이든 내로라하는 다수의 경쟁자가 오직 하나뿐인 금메달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다. 올림픽은 참가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쿠베르탱의 선언이 얼마나 허무한 미사여구인지 방증하는 대목이다. 치열한 경쟁원리는 소수의 승자만 각인할 뿐 다수의 패배자를 소멸시킨다. 최선이 남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아픈 통증유발점인 까닭이다. 아픔의 원인을 찾는 해부학자의 시선은 승자보단 패자의 상처로 모아진다.
_프롤로그 중에서
올림픽은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
해부학과 스포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해부학의 개념을 정립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는 한때 콜로세움에서 주치의로 일하며 치명상을 입은 검투사를 치료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검투사는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와의 격투도 피할 수 없었기에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다. 갈레노스는 검투사의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피부와 근육을 꿰매는 수술을 집도했는데, 이러한 기록은 현대 스포츠의학의 기원을 이룬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로 경기에 출전했다. 체조를 뜻하는 gymnastics는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os에서 유래했다. 해부학의 탐구대상도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다. 그렇게 올림픽과 해부학은 인간 본연의 몸이라는 근원적인 공통분모 위에서 진화해 왔다. 올림픽이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이라면,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이다.
알리의 뇌,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
타이슨의 핵주먹, 배고픈 전사의 리썰웨폰!
이 책은 1964년 로마 올림픽 복싱 종목에 미국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무하마드 알리와 복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15쪽). 폭력과 스포츠를 나누는 경계인 ‘사각(四角)의 링’이 복서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사각(死角)의 링’이 된 사연(19쪽)을 ‘펀치 드렁크’라 불리는 만성외상성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이하 ‘CTE’)을 통해 의학적으로 풀어낸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프로복서 알리가 노후에 파킨슨병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사연과 함께 CTE가 복서뿐 아니라 미식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규명한다(22쪽). 특히 국제복싱연맹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헤드기어 착용을 의무화했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다시 헤드기어를 벗도록 규정을 바꾼 석연치 않은 조치를 의학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23쪽). 아울러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을 통해 해부학에서 ‘복서의 날개뼈’라 불리는 앞톱니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타격의 메커니즘도 함께 소개한다(29쪽).
호날두의 종아리근육과 무회전킥, 조던의 무릎연골과 슬램덩크 등
스포츠의학의 원리를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로 풀어내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킥(스핀킥)과 무회전킥의 원리를 다룬 대목에서는 ‘마그누스 효과’ 및 ‘카르만 소용돌이’ 등 물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100쪽, 103쪽).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회전킥이 어떻게 종아리근육에서 비롯되는지를 해부도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종아리근육 중에서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함으로써 무회전킥이 종아리근육에서 비롯하는 원리가 한눈에 읽힌다(106쪽). 이처럼 책에 수록된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는 각 종목마다 다룬 신체 부위에 대한 의학적 이해를 돕는다.
코트 위를 영원히 평정할 것 같았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순간 해부학자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 찬 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는다. 무릎에 물이 찬다는 것은 무릎 주변을 덮고 있는 활막에서 나오는 끈적한 액체인 활액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증상을 의미한다. 무릎에 외상이 나타나면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이때 무릎의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활액의 분비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무릎 주변이 심하게 붓게 되는 것이다(135쪽). 아울러 저자는 조던의 신체를 통해 전성기 시절 ‘에어(air)’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출중했던 점프력의 비결을 규명한다(133쪽).
인간의 뼈와 근육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의 원천이 되었나?
저자는 속근과 지근으로 나뉘는 인간의 근육이 올림픽 종목에 따라 발달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목조목 밝혀낸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육상의 경우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등 세부종목에 따라 근육의 발달 정도에 차이가 있다. 속근은 수축 속도가 빠른 근육으로 순간적으로 힘을 낼 때 사용되는 만큼 100미터와 200미터 등 단거리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 반면 지근은 수축 속도가 느린 근육이므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장거리와 마라톤 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168쪽).
이를테면 아주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해 엄청난 무게의 바벨을 들어야 하는 역도는 달리기에 비유하면 100미터보다도 짧은 최단거리 경주에 해당한다. 역도선수들에게서 순발력에 유리한 속근이 강조되는 이유다(203쪽).
저자는 속근과 지근의 속성상 우리 몸의 근육이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속근과 지근이 골고루 발달해야 하는 중거리(800미터, 1500미터)가 육상에서 가장 어려운 종목으로 꼽히는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171쪽).
기술도핑 논란, 스테로이드 오남용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다
이 책은 최근 스포츠계에 불거진 기술도핑 및 스테로이드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스포츠과학의 진화와 성취는 눈이 부실만큼 경이롭지만, 기록 갱신에 함몰된 과학은 공허하다고 일갈한다. 기록의 주인공이 인간인지 과학인지 모호해질수록 스포츠는 길을 잃고 만다는 얘기다.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입은 전신수영복은 기술도핑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그는 스판덱스 소재의 전신수영복을 입고 마이클 펠프스와 이언 소프의 세계신기록을 가라치웠다. 전신수영복이 기록 단축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입증되자 많은 선수들이 전신수영복을 입고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 해에만 수십 개의 세계신기록을 쏟아냈다. 저자는 물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전신수영복의 원리를 통해 수영복 제조사의 ‘기술’이 선수들의 ‘기량’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규명한다(344쪽).
마라토너를 괴롭히는 족저근막염이 2시간대 벽을 깨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다. 케냐의 마라톤 영웅 킵초게는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나이키가 특수제작한 러닝화를 신고 세계기록 갱신에 나섰다. 운동화 무게를 100그램 줄이면 57초를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운동화 밑창에 탄소섬유 4장을 부착해 제작한 런닝화를 신은 킵초게는 1시간59분40.2초만에 완주했다. 당시 킵초게 곁에는 5명의 페이스메이커가 V자 형태로 달리며 맞바람의 공기저항마저 줄여줬다. 하지만 세계육상연맹은 기술도핑 등을 이유로 킵초게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79쪽).
아울러 이 책은 사이클이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으로 올림픽에서 퇴출위기를 겪어야 했던 사연(230쪽) 및 체지방 감소를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REDs(Relative Energy Deficiency in Sports) 증후군에 시달리는 어린 체조선수들의 인권 문제(197쪽)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스포츠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소상히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