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로운 공론장’이 될 거라던 인터넷은 점점 더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의 한구석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로 여겨졌던 증오와 폭력의 언어는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 제1야당 대선후보의 입을 통해 ‘정책’과 ‘목표’로 발화되고 있다. 우리는 혐오의 정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며 얼마든지 또다시 실제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를 통해 목격했다. 2021년 퇴임 이후에도 트럼프의 정치 생명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미국에서 2010년대에 부상한 혐오 정치의 배경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트럼프 당선으로 이어진 충격의 대선 국면에서 백인우월주의자와 반페미니스트 그리고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은 ‘대안우파’로 묶여 호명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결집하며 주류로 부상했는가 무엇이 이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내는가 문화연구자 앤절라 네이글은 2000년대 이후, 특히 오바마에서 트럼프 사이 2010년대에 일어난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인터넷문화와 하위문화의 관점으로 파고든다.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젠더 정체성, 인종차별주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의제가 분출하던 기간 동안 주류 매체들의 레이더망 바깥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진 온라인 문화전쟁을 추적한다.
목차
들어가며| 온라인 극우의 부상,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 혐오 세력이 권력을 잡다: 리더 없는 디지털 혁명의 역설
2 증오와 조롱을 합리화하는 법: 위반의 온라인 정치학
3 혐오로 뒤덮인 인터넷: 온라인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대안우파
4 정치가 사라졌다: 뷰캐넌에서 이아노풀로스까지, 보수주의자들의 문화전쟁
5 소환하고 낙인찍고 숙청하기: 텀블러에서 캠퍼스 전쟁까지, 분열하는 좌파
6 ‘페미니즘이 세상을 망친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의 연결고리
7 온라인 극우의 오래된 레토릭: 하위문화적 구별짓기와 ‘반항적 남성성’이라는 환상
나가며| 오프라인으로 번지는 문화전쟁
옮긴이의 말
작가
앤절라 네이글
출판사리뷰
인터넷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새로운 공론장’이 될 거라던 곳을 점령한 반동 극우의 목소리
키보드로 결집한 세대의 기이한 정치 감수성이
모니터를 넘어 거리로 번지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며 환희로 뒤덮였다. 버락 오바마가 전했던 ‘희망’의 메시지는 주류 매체를 통해 열띠게 보도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널리 공유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향한 열렬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리버럴 진영과 거리를 두는 민주당 내 좌파들도 ‘평등주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인 그 순간만은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이 같은 스펙터클을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그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라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시기, 오바마에서 트럼프 사이의 기간 동안 일어난 정치적 급변의 궤적을 기록한다. 성 혁명 이후 1990년대 미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사이에서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주의 등을 놓고 격렬하게 벌어졌던 문화전쟁은 소셜미디어 사용이 정점에 이른 2010년대를 전후해 인터넷을 전장으로 삼으며 다시 한번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쪽에는 백인민족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에서 극우의 셀러브리티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그리고 끝없이 밈(meme)을 생산하며 언제든 ‘온라인 전투’에 참여할 태세를 갖춘 ‘트롤 군단’이 하나로 결집한 ‘대안우파’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올바름 과시 행위’로 팔로워를 이끌며 정체성의 인정과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낙인과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는, 또 다른 면의 공격성을 표출하는 진영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앤절라 네이글은 문화정치비평 격월간지 《배플러》, 미국 최대 극좌 성향 매거진 《자코뱅》, 이십 대 젊은 필진이 모여 만든 정치 격월간지 《커런트어페어스》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좌파의 관점에서 우파와 리버럴의 문화정치학을 비판하고 민주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접합을 도모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문화연구자다. 그의 첫 저작인 이 책은 인터넷문화와 하위문화의 관점에서 2010년대 격렬하게 벌어진 온라인 문화전쟁을 추적한다. “한 세대의 정치적 감수성을 형성한 온라인 문화전쟁의 궤적을” 그림으로써 “컬트적이고 모호한 하위문화의 문화와 사상이 어떻게 일반 대중과 정치의 영역으로 주류화되었는지”를 이해하고자 시도한 이 책의 목표는 온라인에서 성장해 거리로 흘러나온 혐오주의 문화정치에 대응할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자고 촉구하는 데 있다.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과 ‘대안우파’의 관계
앤절라 네이글은 2000년대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온라인 문화전쟁이 “1960년대나 1990년대의 문화전쟁과는 다르다”고 단언하며,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960년대와 1990년대의 문화전쟁은 젊은 세대가 일으키는 문화적 세속화와 자유화의 물결을 문화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기성세대가 가로막으려는 전쟁이었다. 지금의 온라인 백래시에는 십 대 게이머, 스와스티카[만자(卍) 모양]를 게시하는 익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 아이로니컬한 〈사우스 파크(South Park)〉 보수주의자, 반페미니즘 테러리스트, 사이버 추행꾼, 밈을 만드는 트롤(troll) 등으로 구성된 기이한 전위부대가 동원된다.” (9쪽)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의 한구석, 특정 집단의 하위문화 안에서 표출되던 혐오는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전후로 인터넷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캐릭터인 개구리 페페가 수십만 개의 밈으로 만들어지며 극우의 상징이 되었고, 유튜브에는 각종 陰모론과 반페미니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와 주로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인신공격성 콘텐츠가 넘쳐났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안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대안우파(alt-right)’는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온갖 증오의 메시지를 대량으로 흩뿌렸고, 이러한 메시지의 ‘얼굴’이자 그 자신이 곧 ‘밈’으로 기능하며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는 그들만의 ‘젊고 쿨한’ 셀러브리티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논리와 이성을 상실한 혐오의 목소리가 ‘팩트(fact)’를 운운하며 현실 세계에서까지 증폭되기 시작하자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트럼프의 경쟁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이들의 “개탄스러움”을 말하며 직접적으로 대안우파를 호명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스티브 배넌과 같은 기득권 백인민족주의자가 제도 정치를 통해 대표하는 게 ‘대안우파(alt-right)’라면,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같은 극우의 ‘셀럽’과 그를 추종하며 문화전쟁에 뛰어드는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알트라이트(alt-light)’로 구별한다. 저자가 보기에 알트라이트는 “대안우파의 가장 바깥 궤도”를 구성하지만 유머로 위장한 혐오 메시지를 끝없이 생산하고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트롤링의 장본인들이라는 점에서, 그것으로 대안우파가 ‘청년 집단’과 연결되도록 만들고 결국은 주류로 부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대안우파 내의 주류 세력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새로운 온라인 우익의 현상이 그 자체로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진지한 목적을 가진 이들, 즉 트럼프나 대안우파를 대표하는 스티브 배넌과 같은 인물들이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쓸모 있는 바보”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반도덕적 위반’과 ‘반문화적 전복’을 말하는
온라인의 극우주의자들
대안우파의 대표적인 주장은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으로, 이들은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 ‘문명의 쇠락’과 ‘문화적 퇴폐’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을 대체할 ‘대안’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안우파는 기독교적 윤리를 따르는 전통 보수주의를 좌파보다 더한 강도로 비난하며 명백히 선을 긋는다. 이에 따라 저자는 “새로운 우파의 감성을 여타의 우익 운동이나 보수주의”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과 거리를 두며, 그 대신 페페 밈을 올리는 인터넷 트롤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반도덕적 행위’를 합리화하는 이들의 감수성이 18세기 사드의 저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위반’의 전통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극우의 도덕적 감수성을 ‘위반’이 차지했다면, 문화적 감수성을 차지한 것은 ‘반문화’다. 저자는 광범위한 온라인 혐오 집단이 결집한 세력화가 ‘반문화의 공백을 극우주의가 차지한 결과’라고 본다. 1960년대와 1990년대 문화전쟁에서, 사실상 언제나 진보의 형식이었던 ‘반문화’가 이제 온라인 극우의 형식이 되었다고 보는 저자는 반문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형식일 뿐 그 내용은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진보가 반문화와 맺은 관계도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책 전체에서 ‘반문화적 위반의 기만’을 말하는 저자의 입장은 중요한 축으로 서 있으며, 앤절라 네이글의 온라인 문화전쟁 추적은 바로 이 반문화의 무원칙적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극단적 우익 정체성 정치로 발현되었는지를 파고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반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찬이 가져온 결과의 책임을 물으며 좌파의 성찰을 유도한다. 무원칙적 반문화라는 형식을 그 자체로 ‘혁명적인’ 무언가로 착각해온 탓에 그 내용이 정반대의 사상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는 데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문화에서 뚜렷하게 반문화적 양태를 띠었던 익명성의 커뮤니티 초기에 좌파의 많은 이들이 ‘우호적 편견’의 시선으로 ‘리더 없는 익명성의 네트워크’를 옹호하며 찬사를 쏟아냈다는 점을 공들여 지적한다. 앤절라 네이글은 “역사의 어느 순간에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반문화를 낭만화한 좌파의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반문화적 위반이라는 것은 지극히 공허하고 기만적인 개념이다. 이는 주류의 가치와 취향을 무시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공백을 만든다. 모든 끔찍한 것들 앞에 취약해져버린 문화를 진보파가 저항 헤게모니적 힘으로 낭만화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공백이었다.” (205쪽)
온라인 극우가 ‘반문화적 위반’의 형식을 차용한 데는 ‘반항적 남성성’과 ‘순응주의적 여성성’이라는 고루한 이분법과 ‘저급한’ 대중문화를 여성성과 연결하고 ‘고급의’ 엘리트문화를 남성성과 연결하는 아주 오래된 여성혐오 또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여성혐오가 현대 인터넷문화에서 하위문화적으로 발현될 때, ‘주류’와 ‘대중문화’의 자리를 차지한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이 ‘비주류적’ ‘하위문화’의 경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반항적 남성성’이라는 환상을 자극하고, 온라인의 남성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자신들의 경계를 수호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 현상으로 앤절라 네이글은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트롤링으로 유명한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풍자’로 설명하는 인터뷰, 수많은 남초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이 대중문화적 시금석으로 삼는 영화 <파이트 클럽>이 드러내는 반항적 남성성, 인종분리주의의 귀환을 ‘쿨하고 멋진’ 것이라 말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과 경멸을 담아 ‘인싸’로 지칭하고 비난하는 왕성한 극우 활동가 리처드 스펜서의 말 등을 언급하며,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억압에 저항하는 ‘반문화적 투사’로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혐오의 정치가 권력을 잡은 이후, 분열하는 좌파
대안우파라는 세력의 부상과 이에 힘입은 트럼프 당선 이후, 앤절라 네이글은 광의의 ‘좌파’가 “전례 없는 분열을 겪었다”고 서술한다. 미국 양당 정치에서 민주당을 광의의 좌파로 놓고 본다면,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로 나뉘는 지지자들 사이에 서로를 향한 모욕적 언사들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리버럴 좌파는]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에 원통해하며, ‘버니라면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브로셜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오만한 ‘백인놈들’이라 불렀고, 이에 맞서 [경제적] 좌파는 리버럴이 설교적이며 자신들이 ‘깨어 있음’을 과시하는 텀블러 스타일의 정체성 정치가 좌파를 망가뜨렸다고 비난했다.” (138쪽)
반페미니즘적이고 백인민족주의적인 온라인 남성-극우 커뮤니티 포챈(4chan) 이용자들을 온라인 우익 정체성 정치의 자리에 놓는 앤절라 네이글은 이들의 거울상으로 극단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며 정체성의 다양성 인정에 몰두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텀블러(tumblr) 이용자들을 배치한다. 젊은 세대로부터 출현한 온라인 우익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게 포챈이라면, 온라인 좌익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곳으로 텀블러를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해 온라인 좌익 정체성 정치의 문화적 얼개를 그리고, 이곳에서 나타난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위문화적 행위와 이들이 표출한 “극단적인 악랄함과 공격성”을 기록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비평가 마크 피셔가 〈뱀파이어 성에서 탈출하기〉라는 글을 통해 온라인 좌익 정체성 정치를 비판했을 때 나타난 공격성과 같이, 정체성의 인정과 정치적 올바름을 중심으로 ‘소환하고 낙인찍고 숙청하는’ 문화를 비판하며 이로 인해 젊은 세대 내의 좌파 감수성에 일어난 분열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망친다’
: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의 연결고리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대안우파’라는 보다 진지한 정치 세력과 연결되며 그것의 가장 바깥 궤도를 구성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반페미니즘이었다. 온라인에서의 페미니즘 번성 이후, 미국에서는 기이한 ‘남성 운동’의 목소리들이 온라인 백래시를 주도했다. 다양한 남초 커뮤니티를 관통하는 여성혐오와는 또 다르게, ‘남성 인권’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여성에 대한 적대를 선동하는 것으로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는 이러한 백래시는 한국에서도 ‘신남성연대’와 같은 단체를 통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온라인 문화전쟁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온라인에서 번성한 반페미니즘과 ‘남성 운동’의 전개를 다루며, 여성과 함께 전통적 성 역할에 저항하고자 시작되었던 초기의 남성 운동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적대를 선동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남성 운동 내에 “전통적이고 제한적인 남성의 성 역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와 함께 그러한 비판은 “남성성 자체의 찬양으로 변질”됐고, 이에 따라 페미니즘은 정치적 적대 세력이 되었다. 진보적이면서도 성찰적인 시각으로 여성 운동과 발을 맞췄던 남성 운동은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한 백래시 아래 다양한 분파로 갈라졌고, 그 이후 과격파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때부터 “남성 특권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남성 운동이 공식화되며 반페미니즘을 선동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이전 시기의 가장 전투적이었던 남성 운동조차 오늘날 온라인에서 부상한 반페미니즘에 비하면 지극히 온건해 보일 정도라며 현재의 심각성을 역설한다.
앞서 포챈과 텀블러 등 온라인 문화전쟁의 전초기지로 깊숙이 들어갔던 저자는 이번에도 반페미니즘 재부상에 영향을 미친 온라인의 곳곳을 파고든다. 대안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을 외치며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자신들의 궤도로 흡수한 상황, 즉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의 교류가 이토록 활발해진 상황에서 어떤 남초 커뮤니티든 여성혐오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노출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종종 ‘실생활’의 비극적인 사건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포챈 이용자였던 엘리엇 로저가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의 여학생 기숙사 주변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은 ‘베타메일’과 ‘알파메일’을 구분하는 남초 커뮤니티의 지배적인 정서와 여성혐오가 현실 세계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오프라인으로 번지는 문화전쟁
온라인에서 시작된 문화전쟁은 이제 오프라인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충격을 경험했고, 한국은 제1야당 대선후보가 남초 커뮤니티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해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두 번째 저서로 《급진의 20대》를 펴내기도 한 이 책의 역자 김내훈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경유해 한국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총기난사만 없을 뿐 현재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혐오와 범죄와 퇴행은 이 책에 나열된 망동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앤절라 네이글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온라인 문화전쟁은 우리의 상상 범위 이상으로 끔찍해졌고, 그것이 도래케 한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며 절망감을 내비치지만, 그럼에도 이 혼란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정치라고 믿고 있다.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트롤을 트롤링’하려는 시도로 이러한 새로운 우익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거나 그들의 온라인문화를 모방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 우리는 훨씬 더 깊숙한 곳의 무언가를, 온라인 우익이 드러내고 있는 그것을 거부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23쪽)
‘새로운 공론장’이 될 거라던 인터넷을 점령한 반동 극우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들이 성장하고 세를 키운 그곳을 ‘공론장’으로 되돌리기 위해 애쓰는 대신 ‘표심’으로 계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정치의 문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온라인 극우주의가 드러내는 혐오와 증오와 차별과 배제를, 한국 사회와 정치가 부디 거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그 거부에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